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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또는 포이어바흐의 유령

by 김성윤 posted Sep 20, 2015 Views 1306 Likes 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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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질이란 사회적 관계들의 앙상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는 가능할까. 확실한 것은 이 같은 이념적 기대의 바탕에 인간성과 도덕성에 대한 신념, 그리고 이 둘이 사실상 동일하다는 확신이 깔려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이들 분야의 종사자들한테서 공통적으로 듣는 이야기가 바로 사람에 대한 믿음이다. 그래서 그들의 언술에선 종종 ‘사람 냄새’라든가 ‘사람이니까’ 같이 인간주의와 규범주의가 공고하게 접합되어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그들에 따르면, 우리는 사람이니까 어울려야 하고 사람이니까 나눠야 한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믿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에 비례해서 배신감도 커진다. 종종 협동조합 조합원이라든가 마을 주민 등등과의 관계 속에서 실망감을 호소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그들이 기대했던 인간의 얼굴과 실제로 마주하게 되는 인간의 얼굴이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상상과 달리, 현존하는 인간은 냉소적이고 기회를 엿보다가 무임승차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공동체에 참여하는 유일한 동기는 (사람이 아니라) 돈인 경우가 허다하다. 공동체가 붕괴되었다고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사실상 화폐공동체에 살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이러이러 해야 하는데 저들은 대체 왜 저렇단 말인가. 이러한 인지 부조화는 기실 홉스적 세계에 대한 포이어바흐적 이상과 마르크스적 현실의 괴리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인간성을 규범적으로 전제하는 이념은 인간을 유(類)적 존재로 규정하며, 시장의 파멸적 효과로 인해 인간성이 파괴되었다고 간주하는 분석은 그 유적인 본질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환기하기 마련이다.

 

물론 이런 논리 체계가 적지 않은 시민들을 동원할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유적 본질을 사랑과 연대로 규정하든 자연적 노동으로 규정하든, 이와 같은 강력한 인간주의적 언술들은 종종 문제 상황들을 도덕적 차원으로 환원시키면서 인민들 사이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이상적 감각을 자극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인간은 정말 유적인 존재인 걸까. 유적 본질이란 정말 있는 것일까.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덧씌워 놓은 신비의 외피를 벗겨내면 거기서 합리적 핵심을 추출할 수 있을까. 달리 말해, 유적 존재의 소외를 다시금 전도시켜 인간 본연의 주체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는 가능할까.

 

쟁점이 되는 것은 규범주의적 이해방식으로 환원될 수 없는 자본주의적 주체성 및 관계성이 현대인의 정신과 육체에 스며들어 이미 형질전환을 일으켰다는 데 있을 것이다. 도시적 라이프스타일로 ‘단속’된 사람들이 전통적인 공동체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지불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윤리적 소비의 삶을 향유할 수 있을까.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은 비조합원들에게도 호혜적인 관계를 제안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소외 극복을 통해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 것이란 공식은 마르크스에 의해 일찌감치 이론적으로 폐기된 바 있다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도덕적 심성이 인간의 본질이며  각각의 개체 내에 존재한다는 식의 신비주의적인 직권 상정은 역사의 전개 과정을 간과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고립된 개체들의 유적 결속이라는 다분히 기계적이고 편의주의적인 발상으로 떨어질 뿐이다.

 

요컨대, 인간은 (단순한) 유적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들의 앙상블’이라는 점, 따라서 인간의 본질에는 언제나-이미 세속적인 자기 분열과 자기 모순이라는 원리가 내포되어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같은 양립가능성 또는 모순성으로부터 시작하지 않는 한,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라는 고민은 철학적 기초가 허물어지고 종교적 신념 체계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것은 공산주의의 유령도 마르크스의 유령도 아닌, 포이어바흐의 유령이다.

 

 

[글 소개] 중앙대 대학원신문에 4회에 걸쳐 연재하는 짧은 학술시평 "사회적인, 너무나 사회적인" 중 1 회. 모든 글들은 각각 다음의 질문들로 이뤄진다. ① 유적 존재로부터의 소외는 극복가능한가 ② 사회지향적 실천의 중간계급 편향성은 어떻게 그리고 왜 나타나는가 ③ 시장 착근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인가 ④ 좌파와 우파는 어째서 대립하지 않는가. 첫 번째 글은 사회적경제와 도시재생 등에 자리잡은 철학적 기초에 의문을 제기하는 글이다.

[편집자 주] ‘사회적인 것’을 중심으로 하나의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CSR(기업의사회적책임)이나 CSV(공유가치창출)를 경영 윤리 삼아,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 같은 기업 조직들이 가동되고, 공정무역과 윤리적 소비로 물류가 순환되며, 사회책임투자와 사회혁신채권을 통해 자금이 조달된다. 일상생활은 마을만들기를 통해 공동체 지향적으로 재조직되며, 나아가 도시적 삶 역시 도시재생을 통해 부흥된다. 본 기획은 4회에 걸쳐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맞설 거의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보이는 ‘사회적인 것’의 관행들에 이론적·정치적 쟁점들을 제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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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및 운영위원입니다. 주전공은 사회학을 하고 있고 최근에는 플랫폼 자본주의, 도시재생과 민주주의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시간이 나는대로 연구소 홈페이지에 들러서 이용자 여러분들과 교감하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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