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사단법인 문화사회연구소사단법인 문화사회연구소

정치사회

안녕 프레임의 ‘포텐’

by 김성윤 posted Jan 22, 2014 Views 2195 Likes 1 Replies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Extra Form

역사는 언제나 청년이라는 순수한 형상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정작 그 청년은 불가능하게 된 지 오래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대학생들이 청년의 얼굴로 ‘안녕들 못하다’고 말을 걸고 있다. 이 현상은 대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기존 운동의 문법을 혁파하는 청년 메시아가 강림했으니 세상이 더 나아질 것 같아서? 속된 말로 우리 사회가 ‘골’로 가지만은 않을 것 같으니 안도할 수 있어서? 아니면 그들과 함께 무엇이라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이제 막 대자보가 붙고 학생들이 모이고 있는 상황이다. 흐름을 예단해 평가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지금은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 지난 10여 년간 그래왔던 것처럼 몇몇 질문들을 남긴 채 사라지고 마는 이벤트가 될 수도 있고, 그 어떤 한계치를 넘어 ‘새판’을 짜는 대안이 될 수도 있다.




그중에서도 ‘안녕’이란 말이 모든 가능성의 시발점이 됐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말 그대로 안녕치 못한 사람이 넘쳐나는 까닭에 이 말은 수많은 사람을 불러낼 수 있다. 대자보 종이로, 웹사이트 게시판으로, 그리고 거리로. 이 프레임에선 보수 성향인 일베나 자유대학생연합조차도 (비록 다른 이유이기는 하지만) 안녕치 못하다며 대답할 정도다. 우리 중 누가 안녕하고 싶지 않겠는가.


‘안녕들’ 대자보가 철도노조의 파업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조직화된 대학생이 아닌 이들이 노동과 공공성 의제에 참여했다. 2008년 촛불 정국에서 노동운동 진영이 참여하자 군중이 흩어지기 시작했던 것과는 분명히 다른 양상이다. 또한 괴담 내지 유사 과학에 의존했던 당시와는 달리, 민영화 문제에 대한 분석적 판단을 갖추고 있다. 민영화가 아니라는 정부·여당과 보수 언론의 이데올로기적 방어에 꿋꿋하게 맞서는 모양새다.


어떤 언어가 보편적이고 적합하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이 한데 모이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바로 그 사실로 인해 발목이 잡힐 가능성도 없진 않다. 안녕이라는 모호한 언어 아래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안녕들’ 대자보는 현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본질에 점점 다가가고 있다. 하지만 그 자체가 한계가 될 수도 있다. 지금의 사회 체제를 유지하는 근간인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구조적인 문제를 직접 목격하는 순간이 도래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까. 그래서 이 흐름은 언제 어떻게 ‘포텐’(잠재력)을 터뜨릴지 모르지만, 딱 그만큼 언제 어떻게 휘발될지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확실히 칼자루는 안녕하지 못한 그들이 쥐었다. 물론 이 칼자루를 얼마나 날카롭게 벼릴지 우리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안녕하지 못하다고 외치며, 지금 젊은 그들이 묻는다.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아직은 그 칼날이 어떤 아버지를 겨눌지도 알 수 없다.


--- 《시사저널》1262호(2013.12.24)에 실렸으며, 해당잡지에는 「‘안녕 못한’ 그들이 칼자루 쥐었다 -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말이 대중 결집시켜」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습니다.

Who's 김성윤

profile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및 운영위원입니다. 주전공은 사회학을 하고 있고 최근에는 플랫폼 자본주의, 도시재생과 민주주의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시간이 나는대로 연구소 홈페이지에 들러서 이용자 여러분들과 교감하도록 하겠습니다. :)

Atachment
첨부파일

팀 블로그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들의 연합 블로그입니다

  1. 산업/정책/운동
    profile

    EXO, 아이돌 4세대 출현?!

    과잉과 침체 일로에 있던 아이돌 문화에 EXO의 등장은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종합선물세트와도 같은 12명의 ‘역대급’ 군무와 퍼포먼스, 중국과 한국을 아우르는 철저한 마케팅, 오랜만에 보는 10~20대 여...
    Date2014.01.22 Category산업/정책/운동 By김성윤 Reply8 Votes2
    디오
    사랑해요. 엑소
    48
    김성윤 연구원님의 한겨례 블로그 내용이 다 지워져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신장한 이곳 홈피와 저서 출간을 위한 준비 단계였군요!? 연구원님의 글은 잘 읽고 있어요... 그리고 피력하신 의견에도 항상 공감...
    홍남
    안녕하세요 선생님! 예전에서 홍대에서 강의를 하실때, 수업을 들었던 학생입니다. 대체 어디로 연락을 드려야할지 모르겠어서 이렇게 글을 남겨요.ㅠㅠ 우선 제 메일주소와 페북주소 (dangmu7722@naver.com) (https:...
    Read More
  2. 정치사회
    profile

    안녕 프레임의 ‘포텐’

    역사는 언제나 청년이라는 순수한 형상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정작 그 청년은 불가능하게 된 지 오래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대학생들이 청년의 얼굴로 ‘안녕들 못하다’고 말을 걸고 있다....
    Date2014.01.22 Category정치사회 By김성윤 Votes1
    Read More
  3. profile

    바울의 두 얼굴 - 바디우의 『사도 바울』과 니체의 『안티크리스트』

    바울은 세 가지 얼굴로 기억된다. 하나는 신약성경에서 재현되는 종교인으로서의 바울이고, 다른 하나는 현대적 데카당스의 기원이라고 힐난 받는 바울이며, 마지막은 보편종교를 위한 헌신에 찬사 받는 바울이다. 그...
    Date2014.01.15 Category By김성윤 Reply6 Votes1
    o_
    멋져요
    뎡야
    아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최근에 [바울의 정치신학]을 읽다가 말았는데 =ㅅ=;; 빠른 시일 내로 다 읽고 니체랑 바디우의 바울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공부욕을 돋과 주는 글이라능..
    에리
    재미있는 내용이라 잘 읽었습니다. 다만 두번째 문단에서 '율법에 소홀한 그리스도교인들을 색출하던'은 오해의 여지가 있는 표현 같아요 그리스도를 따르던 신흥 세력이 기존 유대교의 율법에 반하는 행동을 하기 시...
    Read More
  4. 에세이
    profile

    첫차...

    어느 날 술로 떡이 돼서 첫차를 타고 집에 가던 길. 집에 가려면 버스를 두 번 타야 하거든. 서울역에서 갈아타야 하는데, 놀랍더라고. 시내로 가는 첫차에는 아줌마들이 가득하고, 변두리로 가는 첫차에는 아저씨들...
    Date2008.11.13 Category에세이 By김성윤 Reply3
    그 시간의 그 공간에는 모두 평등했다는 거네.당신을 포함해서 말이지.......^^다만 누구는 고난을 이기기 위해 일을 하러 나가는 중이었고,누구는 고통을 잊기 위해 술로 떡을 빚었을 뿐이고....
    Read More
  5. 에세이
    profile

    어느 날 롯데리아

    세운상가 답사를 마치고 잠시 들른 롯데리아 충무로점. 패스트푸드점 실내 공간 배치의 곡선화 과정은 자못 흥미롭다. 굳이 맥도널드에 관련 서적들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패스트푸드점은 빨리 먹고 빨리 사람을 내보...
    Date2008.11.13 Category에세이 By김성윤
    Read More
  6. 에세이
    profile

    프레이저 수츠와 낙원 상가

    몇몇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아파트는 1960년대 후반에 세워진 세운상가라고 한다. 낙원상가는 그 직후에 세워진 주상복합건물이다. 세운상가에 비해 낙원상가는 건물 1층을 필로티로 세워 도심교통 ...
    Date2008.11.13 Category에세이 By김성윤
    Read More
Prev 1 ...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 61 Next
/ 61

@ 각 저작물에 대한 권리 또는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Developed and Published by APORIA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