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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두 얼굴 - 바디우의 『사도 바울』과 니체의 『안티크리스트』

by 김성윤 posted Jan 15, 2014 Views 4370 Likes 1 Replies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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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Paul_ElGreco.jpg


바울은 세 가지 얼굴로 기억된다. 하나는 신약성경에서 재현되는 종교인으로서의 바울이고, 다른 하나는 현대적 데카당스의 기원이라고 힐난 받는 바울이며, 마지막은 보편종교를 위한 헌신에 찬사 받는 바울이다. 그중에서도 니체의 바울과 바디우의 바울이라는 쟁점은 자못 흥미롭다.


혁명가로서의 바울: 바디우의 관점


여러분은 바울에게서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 근래 들어 알튀세르 제자 3인방(바디우, 랑시에르, 발리바르)이 인기를 끌면서, 최근에는 바디우의 『사도 바울』이 꽤 읽혔던 듯싶다. 거기서 바울은 주어진 보편성을 가로지르며 새로운 도약을 가능하게 했던 투사로서 기려진다. 율법에 소홀한 그리스도교인들을 색출하던 바울은 어느 날 신의 계시를 받음으로써 거꾸로 율법의 형해화를 비판하는 종교적 투사로 변모한다.


StPaul_by_Badiou.jpg 업그레이드된 그리스도교의 전파자로서 그는 안디옥의 다른 유대인 율법주의자들과 맞서야 했다. 율법 자체가 물신화되면 그것은 인간을 옥죄는 속박에 지나지 않는다. 신이 인간을 선택했다는 논리는 반대급부적으로 인간들에게는 자율성의 공간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바울의 사상은 ‘선민’ 사상에 기반한 이스라엘의 특수종교에 근본적으로 도전하는 것이었으며, 아울러 다른 이방인들에게는 사랑과 윤리의 새로운 보편종교를 가능케 하는 것이었다.


그의 싸움은 급진적이었기에 수많은 이들과 등을 져야 했다. 따라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바울은 로마제국의 정치권력과 당대의 이데올로그들 그리고 널리 펴져 있던 공동체주의적 신앙을 모두 표적으로 삼아야만 했다. 그는 전투적인 혁명가였던 것이다. 바로 여기까지가 바디우적 관점에서 보는 바울의 얼굴이다.


이데올로그로서의 바울: 니체의 관점


그런데 바디우가 이론적 상대로 삼았던 니체의 경우는 좀 색다르다. 니체는 바울을 혁명적 투사로 간주하기보다는 혁명의 종교를 사랑의 종교로 순치시킨 결정적 이데올로그로서 읽어내기 때문이다. 니체는 질문을 던진다. 왜 현대인들은 초인(superman)은커녕 맥 빠진 인간 이하의 인간(underman)이 되었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사랑과 도덕이라는 보편적 언어가 사람들을 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Anti-Christ_by_Nietzsche.jpg 구래의 격식을 타파하고 제국의 통치에 반했던 혁명적 예수는 어째서 진리의 비답을 주는 신적 존재로만 기억되는 것일까. 그리고 로마제국은 이 위험한 종교를 어떻게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자신들의 종교로 삼게 된 것일까. 니체적 관점에 따르자면 바울의 전도는 이스라엘의 신을 만인의 신으로 개방시킨 것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이스라엘 민족의 나약하고 고약한 근성을 만천하에 퍼뜨린 것이기도 했다.


게다가 묵시록과 맞물리면서, 인민들의 현세적 ‘원한’(resentment)을 표상했던 예수는 종말의 징벌자이자 구원자로서 도상화된다. 바울 자신은 투사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부터 사람들은 현세에서 싸우기보다는 내세에 대한 ‘공포’를 면하고 구원을 얻기 위해 기꺼이 ‘노예’의 길을 택한다. 서구 기독교문명 역사에 존재했던 모든 성직자들을 겨냥한 비판이지만 그 정점에 바울이 있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바디우가 바울로 표징되는 ‘내재적 예외’를 통해 특수종교가 보편종교로 확장된 것을 봤다면, 니체는 바울을 기점으로 하는 ‘이데올로기적 지배’를 통해 현세의 종교가 내세의 종교로 변모한 것을 봤던 셈이다.


이데올로기와 비판의 문제


지배와 저항은 형식이 상동적인 걸까. 바울은 지배 논리가 함유하고 있던 모순을 사유함으로써 저항의 단초를 찾았고, 다른 한편 저항 논리가 함유하고 있던 모호성을 전유함으로써 지배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와 같은 역설은 마치 구조기능주의론과 이데올로기론의 상동성을 재연하는 것만 같다. 사회화가 주체화고, 사회화 기관이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이듯 말이다.


여기서 어떤 사람들은 ‘내재적 예외를 통해 이데올로기적 지배가 가능해지고 반대로 이데올로기적 지배는 필연적으로 내재적 예외를 발생시킨다’는 순환논리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바울의 두 얼굴’을 관조하면서 적어도 두 가지 인식 정도는 더 가져갈 필요가 있겠다.


하나는 지배 이데올로기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인 것이 아니라 (니체의 놀라운 발견에서 드러나듯) 언제나 피지배계급의 보편적 사유와 감각들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같이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덕목들을 통해서 말이다. 오늘날의 ‘경제민주화’와 ‘정상화’처럼.


다른 하나는 기묘한 상동 형식에도 불구하고 지배와 저항을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은 비판에 있다는 것이다. 바울의 역설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 저항 담론이 헤게모니를 가지게 되면 그 자체로 지배 담론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저항 담론이란 어떻게 해야 비로소 가능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그 시작은 내재적 예외로부터 하되, 끝은 무한한 자기 비판과 정정이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바디우와 니체는 바로 그 지점에서야 화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Who's 김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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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및 운영위원입니다. 주전공은 사회학을 하고 있고 최근에는 플랫폼 자본주의, 도시재생과 민주주의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시간이 나는대로 연구소 홈페이지에 들러서 이용자 여러분들과 교감하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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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6'
  • o_
    o_solemio 2014.01.21 16:02
    멋져요
  • profile
    김성윤 2014.01.25 08:51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ㅎㅎ
  • 뎡야
    뎡야핑 2014.03.05 17:49
    아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최근에 [바울의 정치신학]을 읽다가 말았는데 =ㅅ=;; 빠른 시일 내로 다 읽고 니체랑 바디우의 바울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공부욕을 돋과 주는 글이라능..
  • profile
    김성윤 2014.03.05 19:19
    무한한 뎡야로군요. 무뎡이라 해야 하나 ㅋ 언젠가 한번은 멋들어지게 써보겠다고 마음만 먹었던 주젠데, 연구소 뉴스레터 준비하면서 아이디어만 스윽 적어본 거예요. 아아... 나도 공부가 하고 싶어요. 이 놈의 논무뉴ㅠ
  • 에리
    에리 2014.03.05 18:12
    재미있는 내용이라 잘 읽었습니다. 다만 두번째 문단에서 '율법에 소홀한 그리스도교인들을 색출하던'은 오해의 여지가 있는 표현 같아요 그리스도를 따르던 신흥 세력이 기존 유대교의 율법에 반하는 행동을 하기 시작해서 바울이 그런 사람들을 잡으러 다녔던건데 그 문장은 원래 있던 그리스도교라는 종교의 율법에 소홀한 사람들에게 그랬다는 식으로 읽힐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나가다 끄적여봤는데 실례가 아니었길 바랍니다.
  • profile
    김성윤 2014.03.05 19:22
    아! 분명 오해의 소지가 있네요. 교회사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정말 그렇게 볼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따로 수정하진 않겠습니다. 대신 에리님 댓글을 교훈 삼아 다음부턴 좀 더 명확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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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_
    멋져요
    뎡야
    아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최근에 [바울의 정치신학]을 읽다가 말았는데 =ㅅ=;; 빠른 시일 내로 다 읽고 니체랑 바디우의 바울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공부욕을 돋과 주는 글이라능..
    에리
    재미있는 내용이라 잘 읽었습니다. 다만 두번째 문단에서 '율법에 소홀한 그리스도교인들을 색출하던'은 오해의 여지가 있는 표현 같아요 그리스도를 따르던 신흥 세력이 기존 유대교의 율법에 반하는 행동을 하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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