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다시 박정희인가.
얼마전 택시를 탔다. 대개의 기사들이란 신호 체계, 교통 흐름, 차량 성능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면 반색을 하면서 술술 말을 꺼내곤 한다. 그 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동안 침묵이 계속되다가 버스전용차선 얘기와 함께 물꼬를 텄다. 그러다 보면 대화는 이명박으로 귀결되곤 한다. 버스전용중앙차로를 만든 사람, 그래서 택시가 씽씽 나가지 못하게 만든 사람. 나아가서는 빈부 격차를 심화시켜 사회갈등을 증폭시키는 사람, 경제를 회복시키는 데 있어 무능력한 사람.
'어쩔 수 없는' 한나라당 지지자인 택시 기사는 이명박이 아니라 박근혜가 됐어야 한다고 말했다. 적어도 박근혜라면 챙길 사적인 가족이 없기 때문에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박근혜라면 자기 아버지의 명예를 실추시킬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그는 다음 대통령은 박근혜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민주당이 기본적으로 지지율 10%를 오르내리는 데 불과하다면, 한나라당에서도 별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면, 다음 대선은 그의 말대로 뻔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도로를 질주하면서 나는 무섭다고 생각했다. 이 거침 없는 질주가 결국에는 이미 익숙한 또 다른 실패로 치닫을 생각을 하니 잠시 울화가 치밀기도 했다. 촛불정국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왜 사람들의 요구가 안티MB로 표상되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나를 포함하여 사람들은 자기자신의 건강한 몸을 요구했고, 어떠한 제도적 위협으로부터도 굳건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자 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대개의 사람들은 공교롭게도 이명박이 물러나면 될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다. 그것은 결코 오늘날 우리를 옥죄고 있는 불편한 관계, 즉 신자유주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택시 기사가 이명박의 대안으로 박정희의 형상을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두 가지 문제 때문이다. 잘 살아야 한다. 그리고 답은 이미 알고 있다. 잘 살아야 한다는 욕망은 그것이 사적 소유라는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 한, 자본-기계가 될 수밖에 없는 욕망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를 둘러싼 삶의 악조건을 해결할 답은 비교적 명약관화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민주당도 아니고, 진보신당도 아니고, 민노당도 아닌 어떤 것. 그들이 이미 알고 있지만 알지 못하는 어떤 것.
향수는 그래서 무섭다. 그 자체로 알지 못하는 어떤 것으로 나아갈 수 없는 단단한 철책이기 때문이다. 마치 연인과 문제가 생기거나 헤어진 이후에, 예전에 헤어졌던 연인의 안부가 갑자기 궁금해지는 것처럼. 첫사랑 박정희는 머리와 가슴을 떠나지 않고 있다.
이명박의 잇단 실정은 두 가지 방식으로 퇴행할 가능성이 있다. 노무현을 추억하는 퇴행으로, 박정희를 소환하는 퇴행으로. 실제로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우리의 '집단지능'이 노무현 시절의 나쁘지만은 않은 경제지표를 거론함으로써, 권위와는 거리가 먼 이미지들을 게시함으로써 말이다. 이명박과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같은 몸통을 하고 있는 그를 추억하다니!
이제는 잠시 봉인되었던 박정희의 향수만이 남았다. 한나라당 계열의 균열은 그 지형 자체만으로도 향수를 생산하는 장치이다. 가끔씩 한두마디씩 던지면서 기억을 자극하는 이회창. 때를 기다리면서 암약하고 있는 박근혜. 그들의 존재는 일차적으로 지배계급의 균열을 명시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매개 없는 정치로 나아갈 가능성을 제약하는 지형이기도 하다.
주어진 선택지에서 골라보라.
(1)이명박 (2)박근혜/이회창 (3)민주당 (4)민노당/진보신당 (5)문국현
해답은 오지선다 바깥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어진 한계를 걷어차버리지 못하고 있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민주당/민노당/진보신당/창조한국당의 공조가 힘을 얻는다 하더라도, 대다수의 정서는 냉소 이외의 것이 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예컨대 민주당과 창조한국당 따위는 이미 오답임을 알고 있고, 민노당과 진보신당은 어쩐지 틀릴 것 같은 겁이 나는 답이기 때문이다. 빨갱이, 경험부재, 낯설음 등등의 생각이 용기를 내지 못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내가 만났던 택시 기사처럼 '이명박이 아니라 박근혜가 됐어야 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순리에 적합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들에게 박정희는 한때 정답이었기 때문이다.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았던 연인. 간혹 그가 다른 여자를 만나도 나는 절대 바람 필 생각도 하지 않게 했던 연인. 그 정도로 내가 사랑했던 차가운 사람. 하지만 나에게만큼은 따뜻했던.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새로운 인식을 향한 돌파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진보정당이 제자리를 잡는 곳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것도 아닌 다른 곳에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곳에는 어떻게 가야하는 것일까. 우리 스스로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 아닌 길. 다행인지 불행인지, 택시 기사는 신호 정도는 가볍게 어겨가면서 질주하고 있었다. 박정희라는 유령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