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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케이블 TV의 문법, ABC

by 김성윤 posted Oct 17, 2009 Views 6637 Likes 0 Replie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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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중음악은 왜 3~4분 정도의 길이로 만들어지고 있을까. 만약 이런 질문을 던져봤다면 여러분은 이미 문화연구에 대한 '촉'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일단 너무 천편일률적이지 않은가. 왜 우리는 20~30분짜리 대중음악을 상상하지 못하게 되었을까. 감각적이고 유흥 위주의 대중 취향에 맞춰서 그렇게 된 걸까. 그렇게 볼 수도 있다. 대중음악이 대중소비를 겨냥하는 한 대중의 취향과 정서구조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산업적 이해관계와 기술 수준 때문에 그렇게 됐을 수도 있다. LP판이 등장한 이래로 작곡가들은 작품의 길이를 레코드의 길이(4분 30초)에 맞춰야만 했다. 이런 식으로 체계화된 대중음악은 이후 기술 발달에도 불구하고 5분을 넘지 못하게 됐다. 게다가 최근 디지털 음원 시장의 출현은 음악의 소장보다는 음악의 접속에 초점이 맞춰 있기 때문에 또 한 번 대중음악의 길이를 단축시키고 있다. 이제는 4분의 시대가 아니라 3분의 시대다.


요컨대, 우리가 대중문화를 이해할 때는 우선 생산-소비-생산의 회로의 변증법적 구도를 명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대중음악뿐만 아니라 영화, TV 등 미디어 문화의 여타 장르들 역시 양식화된 문법에 따라서 상업적 기획 시스템에 고도로 성문화되어(codified) 있다. 그러나 문법이 대중정서를 포획하는 동안 대중들 몇몇은 그 문법으로부터 일탈하고, 문법은 대중을 매혹하기 위해 자기 변신을 시도한다. 따돌리기와 따라잡기의 향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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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6'ⓒtvN


케이블 TV 역시 마찬가지다. 케이블 TV의 출현은 바로 이 ‘문법’에 중대한 변화가 나타난다는 점을 함축한다. 문화적 코드라는 것은 사회변화에 따라 통상적으로(때로는 극적으로) 변화하기 마련이다. 예컨대 1980년대 일일드라마의 여주인공이 한복 차림에 앞치마를 입은 고분고분한 며느리였다면, 2000년대의 새색시는 아침 식사 준비를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남편과 함께 출근하는 당당한 커리어우먼이다.


미디어 문화가 다양화되고 코드들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사람들은 이제 권선징악이니 칠거지악이니 하는 구도를 의심하는 것이 보편적이게 되었다. 경찰은 착한 사람이고 범인은 나쁜 사람이라는 예의 <수사반장>류 정서는 경찰도 때로는 나쁜 사람일 수 있고 범인의 악행에도 나름의 근거가 있다는 식으로 해체된다. 극단적으로는 <살인의 추억>에서처럼 진짜 범인은 영원히 잡을 수 없는 게 세상의 이치라는 게 폭로되기도 한다.


1990년대에 도입되고 2000년대에 본격화된 케이블 TV는 이러한 코드 변화의 속도를 가속화한다. 일차적으로는 점점 늘어가는 케이블 채널과 신기술로 인해 시청자를 향한 경쟁이 증대한다. 이차적으로는 보다 많은 시청자들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의 풍속과 관습을 하나둘씩 깨뜨리기 시작한다.


공중파 TV는 미디어의 속성상 (몇 년 전 카우치의 하반신 노출 사건에서처럼) 기존 풍속에 대한 제약이 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풍속에 끊임없이 반기를 들고 자꾸만 딴 길로 이탈하기도 한다. 그게 대중의 이치 아니겠는가. 케이블 TV는 바로 이 틈새시장을 겨냥한다. <개콘>에 나오곤 했던 진부한 드라마의 패러디를 보면서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린다면, 케이블 TV는 그들이 느끼는 진부함을 과감히 혁신한다. 그리하여 케이블 TV의 주인공은 재벌 2세 실장님과 삼각관계에 빠지는 신데렐라가 더 이상 아니다. 말 그대로 <막 돼먹은 영애씨>가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이로써 지배적인 재현 코드와는 다른 코드들이 등장하게 된다. 고정관념과도 같은 지배적 통념이 깨져나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금기를 건드리는 범죄 드라마가 출현한다. 성폭력 범죄 전담반에 대한 드라마가 나올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동성애자들이 주인공인 드라마도 나온다. 세상에 동성애라니! 위기에 몰린 주부들, 된장녀 같은 뉴요커들…. 일상의 것과는 전혀 다른 대안적 라이프스타일들이 출현하는 것이다. 케이블 TV의 문법은 이른바 ‘코드 깨드리기’에 있다!

그럼, ‘케이블 만세’ 라고 외쳐야 할 시점인가. 물론 아니다. 케이블 TV 문화가 퇴행적일 가능성은 더 크다. 코드를 깨뜨린다는 게 언제나 관철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케이블 TV의 파파라치식 연예뉴스 보도는 지배적인 코드를 공고하게 만들기도 한다. 공중파에 비해 케이블이 더 말초적일 가능성은 보편적인 상수로서 존재한다.


또한 케이블 TV 문화가 이전 시기의 아방가르드들이 노렸던 문화예술적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도 섣부르다. 케이블 TV의 코드 깨뜨리기는 언제나 가장 위험한 금기는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상업 기획 시스템이라는 제약 하에서, 지루해하는 시청자의 안목에 맞춰 갈증을 해소하는 데 목적이 있을 뿐이지, 지배질서의 코드를 해체하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자본주의라는 코드는 언제나 난공불락 아니던가. 물론 대중들이 코뮤니즘을 갈망하는 정서라면? 케이블 TV에겐 그것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개구쟁이 스머프> 시즌2를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


<미디어스> 2009년 10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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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및 운영위원입니다. 주전공은 사회학을 하고 있고 최근에는 플랫폼 자본주의, 도시재생과 민주주의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시간이 나는대로 연구소 홈페이지에 들러서 이용자 여러분들과 교감하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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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
  • 나는
    나는야 2019.04.28 00:42
    오래전 글이긴 하지만 된장녀.. 워딩이 고쳐졌으면 좋겠네요
  • profile
    김성윤 2019.05.01 20:01
    된장녀 스타일의 전복적 가능성을 가리키는 맥락인데 아쉽게도 잘 전달되지 않았는가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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