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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이 아름다운 세상

by 권경우 posted Sep 04, 2009 Views 2061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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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수퍼마켓 상인들이 뿔났다. 대형마트가 들어설 때마다 빼앗긴 손님과 줄어드는 매출 때문에 속앓이를 했지만 실력행사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근 대형마트를 운영하는 대기업이 소형 수퍼마켓 브랜드까지 내세우면서 소위 ‘골목 상권’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겨우 운영을 하던 이들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생각에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대기업 혹은 대형점포와 소규모 점포의 싸움은 다양한 업종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서점’일 것이다. 과거 집 근처에서 작은 서점 구경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학교 근처에는 몇 개의 서점이 ‘공존’하기도 했지만, 이제 동네 서점을 찾기는 매우 힘들어졌으며 서점에 직접 갈 일도 많지 않다. 인터넷서점이라는 커다란 환경 변화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지만, 대형서점들은 그나마 남아 있는 지역 서점의 거점까지도 노리고 있다. 실제로 대학 구내서점에 대형서점들이 속속 진출하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극장 역시 몇몇 대기업이 독점함으로써 ‘멀티플렉스’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멀티’라는 이름과는 정반대로 영화 제작과 유통, 배급 과정에서 영화의 다양성은 점차 사라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비슷한 예는 주거문화에서도 나타나는데,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를 중심으로 마을과 동네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건 ‘아파트 단지’이다. 우리의 아파트문화는 브랜드를 앞세운다는 점이다. 브랜드가 곧 마을이고 동네가 되는 셈인데, 문제는 브랜드만 다를 뿐 전체적인 구조와 느낌이 수도권이나 지방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아파트 단지 내에 다양한 계층과 세대의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격차에 따라 특정 계층 혹은 세대가 집중적으로 몰려 산다는 점이다. 결국 비슷한 인간들끼리 모여살게 됨으로써 사회의 다양성을 경험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결국 단순해지지 않겠는가. 이명박 정부의 고소영 혹은 강부자 논란은 구조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작금 한국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은 크고 강한 것들만 살아남아야 하며, 작고 힘없는 것들은 사라져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다. 최근 노사협상으로 일단락된 평택 쌍용자동차 사태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정리해고 대상자 혹은 공장을 점거하고 있는 소수의 노동자들에 대해 ‘살아남은’ 노동자들과 그의 가족들은 그 소수 때문에 우리까지 죽어야 하느냐고 항변했다. 물론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현재 소수에 해당되는 정리해고를 그대로 수용하게 되면 지금은 살아남았다고 안도하는 이들도 언젠가는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본의 논리에서는 결국 똑같은 소모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쌍용자동차의 사측에서 살아남은 노동자들을 과거의 구사대처럼 이용한 것은 최소한의 인간성마저도 포기하도록 하는 처사였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쌍용자동차 사태와 용산참사, 미디어법을 비롯한 수많은 MB악법 등이 결코 서로 별개가 아님을. 그 바탕에는 모두 작은 것들을 무시하는 자본의 논리, 영웅신화의 논리, 성공신화의 논리가 자리잡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논리는 우리가 서로서로 아무 관련 없음을 부각시킨다. 그렇다면, 그 논리대로 한다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혹은 누구 때문에 인간에 대한 사랑을 외치는 것일까? 한국사회에서 우리는 지금 인간과 괴물의 갈림길에 서 있다.

권경우(문화평론가, 문화사회연구소
연구기획실장/nomad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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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구성주의자에 가깝다. 내가 직접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도 하지만 타자에 의해, 그리고 외부에 의해 나는 만들어지고, 나아간다. 그런 점에서 이 공간은 나를 만들어가는 또 하나의 자극이 되고 있다. 만남이 곧 촉발이고, 그러한 촉발이 희열로 이어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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