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블로거 파리, 영화의 수도(1)

2009.06.16 00:42

유디트 조회 수:5325

파리, 영화의 수도

프랑스의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파리의 동네 곳곳을 지나가면 항상 마주치는 곳 가운데 하나는 카페다. 프랑스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카페의 구조를 보면 커다란 유리창과 밖을 향해 배열되어진 자리 배치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이 같은 구조는 카페에서 바라보는 거리의 풍경과 사람들을 스펙타클로 이미지화한다.

「파리, 19세기의 수도」라는 글을 통해 벤야민은 새로운 상점과 통로(Passage)의 출현으로 파리는 하나의 파노라마가 되고, 이 같은 거리를 배회하는 산책자의 시선을 통해 파리는 시적인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파리가 19세기의 벤야민의 산책자의 시선을 통해 대상화됐다면 20세기와 21세기의 파리는 영화를 보는 관객의 시선을 통해 판타지를 제공하는 대상이 된다.

 에릭 로샹의 <동정 없는 거리>에서 보여주는 에펠탑의 조명과 레오 카락스 감독의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보여주는 세느강의 아름다운 불빛, 감독들의 상상력과 파리 동네가 어우러진 <사랑해 파리> 그리고 그 많은 건축물을 짓기 위해 많은 돌을 어떻게 구했을까라는 다소 엉뚱맞은 대사가 우릴 웃게 했던 홍상수 감독의 <밤과 낮> 까지 영화 속 파리는 .우리의 상상력과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영화와 뗄 수 없는 파리, 그러나 파리는 단순히 영화의 이미지속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라프와 세계 최초의 영화 상영 등 영화 역사를 간직한 공간이면서  매주 300편의 다양한 영화들이 동네 곳곳의 크고 작은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다양성이 숨쉬는 곳이고  세계 영화인들이 선호하는 촬영지이기도 하다.

  1. 영화의 탄생도시 파리


영화를 탄생시킨 뤼미에르 형제는 리용 출신이었다. 그들은 시네마토그라프를 발명한 후 이에 대한 재정적 투자를 얻기 위해 파리로 상경한다. 19121228,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영화가 상영된다. 파리 오페라 근처의 '그랑 카페'의 지하에서 마련된 영화 상영회는 총 33명의 관객들에게 1 프랑의 입장료를 받았다. 이 상영회를 도와줬던 조르주 멜리어스는 1896년부터 찰스 파테와 레옹 고몽과 함께 영화 작업을 시작했다. 영화의 요람기였던 이때 파리는 생동감있는 도시로서 영화의 특별한 주제로 자리잡았다.

18973월 처음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전용 극장이 탄생했다.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라프를 위한 상영회가 생 드니에서 열렸는데 이때 극장요금은 50상팀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극장에 불이 나 121명이 희생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하면서 잠시 위기를 맞기도 한다.

그러나 멜리어스의 영화에 대한 열정을 잠재울 순 없었다. 그는 다양한 실험을 시도하다 마침내 특수효과를 통한 영화를 선보였다. 그의 작품들은 파리 근교인 몽트레일의 스튜디오에서 작업된 것이다.

한편 1905년 파테 형제가 운영하는 공장은 뱅센느에 10km의 필름을 일상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스튜디오에서 벗어나 파리 곳곳에서 전쟁 영화, 감성 영화 등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파리는 스크린의 배경으로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1906년부터 1908년가지 첫 번째 영화 황금기, 코믹영화 인기와 함께 처음으로 2명의 스크린 스타가 탄생했다. 막스 린더와 루이 페일라드. 두 사람은 멜리어스의 특수효과를 사용한 영화에 출현해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파리는 본격적인 영화의 수도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세계에서 가장 큰 스튜디오를 소유한 고몽사가 극장을 설립했다. 당시 파테, 고몽, 에클레르는 미국의 이스트만, 고닥사와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의 황금기와 상관없이 조르주 멜리어스는 몽파르나스 역 부근에서 어린이 장난감을 팔면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1908년 영화는  연극을 영화화하면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파테는 영화사를 설립하고 유명한 소설을 각색, 영화화하는데 이때 '파리의 노틀담'과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이 영화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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