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다. 원그리기 시위


파리 시청앞에는 매일 원을 그리며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그들을 만나기 위해 파리 시청앞으로 갔다. 비록 바캉스 기간이었지만 수십여 명의 교수, 연구원 등 교육 공무원들이 원을 그리며 시위를 하고 있었다.


멈추지 않고 고집스럽게 돈다는 원그리기 시위는 낮이나 밤이나 날씨에 관계없이 계속된다. 자발적으로 조직된 이 시위는 한 명이든 100명이든 멈추지 않고 원을 그리며 지속해야 한다. 한 바퀴만 돌 수도 8시간을 돌 수도 있다. 천천히 걷든 빠르게 걷든 상관 없다.


원그리기 시위는 평화적이면서 흥겨운 시위다. 철학적인 논쟁을 하듯 심각하게 토론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수다를 떨며 도는 젊은 친구들도 눈에 띤다. 책을 읽으면서 도는 학구파도 있다. 어떤 이는 깃발을 들기도 하고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단 매 시간 마다 참가자들은 일렬로 원그리기 시위 경과 시간을 알린다. 그 뒤 다시 원 그리기는 이어지는데 자연스럽게 앞으로 투쟁에 대해 논의를 하거나 즉석 토론회가 열리기도 한다.


원그리기 시위는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다. 지나가는 이들 가운데 잠시 원을 그리며 걷다 다시 자신의 목적지를 향하기도 한다. 또 시위 가족들 또는 교원 은퇴자들 가운데도 시위에 참여하는 이들도 있다.


대학자율화는 곧 대학 기업화


원그리기 시위에 참여하는 이들은 사르코지의 대학 자율화를 위한 법개정(LRU )에 반대하는 교수, 학생, 연구자들이다. 그들 가운데 책을 읽으며 원그리기 시위에 동참하는 클로딘 기틀레씨(파리 7대학 화학과 전임 강사) 를 만났다. 그녀는 학교가 아닌 이곳에 매일 출근한다고 한다. 올해로 5년째 대학에서 강의하는 신참교수 기틀레씨는 사르코지의 대학 자율화 정책이 곧 교수로서의 자신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사르코지는 현재 경제위기를 빌미로 대학개혁법 등 악법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어쩜 우리나라와 프랑스의 정치상황은 이래저래 닮은 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프랑스 대학은 평준화
, 정부지원에 의한 무상교육이 실시되고 있다.(내가 프랑스로 유학을 올 수 있었던  학비가 안 든다는 점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르코지는 현재 평준화된 대학에 경쟁을 도입, 미국식 대학 시스템으로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즉 대학의 자율성이라는 미명아래 국가의 대학지원을 없앨려는 것. 이렇게 되면 등록금은 인상되고 교수 및 공무원 역시 대학 총장의 권한에 의해 임명과 해임이 될 수 있다. 대학 총장 중심으로의 권력이동과 함께 대학의 공공기능은 사라질 것이다. 이것은 대학의 기업화라는 신자유주의적 발상을 내포하고 있다.

프랑스 공교육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이 법안에 반대해 지난
2월부터 프랑스 대학 교수 및 학생들은 파업을 하고 있다. '원그리기 시위'는 대학개혁법에 저항하기 위해 처음으로 선보인 시위다.

파리의 원그리기 시위는 지방으로까지 확산되었다. 몽펠리에, , 쁘와띠에 등 각 지방 대학이 중심이 되어 원그리기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323일부터 시작된 이 시위는 지금까지 700여 시간 정도 지속되고 있다. 53일 새벽 51000시간 원그리기에 도달하면 이를 기념하는 축제를 벌일 것이라고 한다.

대학의 미래를 바꿔 놓을 대학개혁법에 맞선 프랑스 대학가의 원그리기 시위는 엄중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창의적이고 발랄한 시위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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