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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이자 일터’라는 실험에 관한 어느 사회적 기업 이야기

출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2021년 10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 영화 <길모퉁이 가게>(2018)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http://omn.kr/1vnpo
by 김성윤 posted Nov 01, 2021 Views 134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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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들이 스스로 도시락 배달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며 실험해 나아가는 시간에 대한 다큐멘터리, <길모퉁이 가게> ⓒ 오소리필름

 

 

<길모퉁이 가게>(2018). 제목만 보면 어딘가 낭만적이고 따뜻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이 영화, 생각보다 차갑고 진중하다. 배경은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도시락 배달 사회적 기업 '소풍가는 고양이', 일명 '소고'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소고에서의 5년을 담았는데, 초반부의 좁은 가게 공간과 역광 프레임이 어딘가 조마조마하고 불안한 느낌마저 자아낸다. '길모퉁이'라는 표현은 이 가게가 사실은 어떤 길과 어떤 길의 마주침이며 둘 이상의 기로에 서 있음을 가리키는 비유에 가깝다. 그런 까닭에 초반부의 모호함은 점차 첨예해지고 이내 위태로움으로 이어진다.

 

'소고'는 다양한 이력(은둔형 외톨이, 데스메탈 매니아 등)을 가진 고졸 미만 비진학 청(소)년들에게 노동 경험을 제공한다는 취지를 표방하기도 했다. 여느 사회적 기업들처럼 영리 사업도 하고 이른바 취약층의 자립도 돕는 곳이다. 바로 이 지점이 첫 번째 '길모퉁이'를 형성한다. '일터'라는 길과 '학교'라는 길이 만나는 공간이다. 가게에서 일하는 청(소)년은 (일 자체뿐 아니라) 일에 관한 경험을 배우면서 성장하도록 되어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노동자가 된다는 것이고, 노동자가 된다는 것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 즉 자기를 배려하고 통제할 수 있는 주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 조건이 있다. 우리 시대에 일에 관한 사회적 감각은 자본주의적 노동과 언제나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일은 자율적이되 타율적이어야 하며, 타율적이더라도 동시에 자율적이어야 한다. 피곤하고 불편한 사실이지만, 정답 없는 평형감각을 가져야 한다는 규칙이 언제나 그렇듯 사람을 곤경에 빠뜨린다.

 

소고에서의 첫 2년 동안 감독은 사실상 어떤 결착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영화의 초반부는 묘한 불안감이 지배한다. 이곳의 젊은이들은 정말 경험하고 성장하고 있는 것일까. 이들의 길잡이가 되는 대표 씩씩이, 그리고 홍아를 비롯한 청(소)년의 관계는 더없이 돈독해보이고 곳곳에는 작업장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듯한 순간들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일터로서도 학교로서도 이 공간이 제 기능을 다하고 있었던 것인지는 확신을 갖기 어렵다. 마냥 설렜을 출발의 행복감과 달리 월 매출은 400만 원에 불과했고 그것으로 임대료와 급여를 충당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게다가 느슨한 작업장 규율로는 이들의 성장은커녕 기업으로서의 생존도 어려워 보인다.

 

학교와 가게, 배움터와 일터의 경계

 

이런 늘어짐이 절대 오래 갈 수는 없다. 공적 지원을 받는다면 어느 정도 버틸 수야 있겠지만 그마저도 마감 시한이 다가오면 이 분야의 종사자들은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기업으로서 경쟁력을 갖추든지 아니면 깔끔하게 폐업을 하든지. 대표 씩씩이의 결단은 전자였다. 새로 이사를 가게 된 만큼 규모를 키우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 결단은 이 가게가 '길모퉁이'에 서있음을 인지할 수 있는 첫 계기이기도 하다. 문제는 노동 규율, 노동 조건이 잡혀 있지 않은 청(소)년 직원들이었다. 전날 주문을 받아놓고도 늦잠을 자서 출근을 못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차비가 없어서 출근을 못하기도 한다.

 

창업 초창기에 숙련성이 없어서 헤매는 일이야 부지기수지만 이건 최소한의 숙련조차 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렇게 기업으로서 경쟁력 없음이 드러난 마당에 급기야 메르스 사태까지 터져 '어설프고 느림'에 대한 유예는 끝내 시효를 다하게 된다.

 

더 전문적일 필요가 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미루고 미뤄오긴 했지만 자본주의적 경영 테크닉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고서야 사회적 '기업'이 어떻게 버틸 수가 있을까. 존폐의 기로 위에서 소고는 전문 셰프를 채용하고 대표이사는 영업을 뛰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들 청(소)년에게 어떤 경험과 계기를 제공해줄 수 있을까.

 

다행이라면 다행인 걸까. 이런 노력들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면서 대반전이 시작된다. 400여만 원에 불과하던 월매출이 늘기 시작해 무려 5000만 원에 이르게 된다. 일반적이라면 이대로 해피엔딩이겠지만, 감독은 여기서 이전보다 훨씬 더 심각한 진동을 감지한다. 또 하나의 '길모퉁이'에 다다른 셈인데, (단순히 일을 열심히 하도록 독려하는 수준을 넘어) 노동을 수량화하고 낭비와 효율의 요소를 판별함으로써 돈벌이 노동, 자본주의적 노동을 요구하는 또 다른 국면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학교와 가게, 배움터와 일터의 경계가 마침내 허물어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등장인물도, 인물들의 관계도, 결국엔 영화마저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자본의 회전과 더불어 그런 시간들이 누적적으로 반복된다. 길잡이 교사였던 대표이사는 운동가와 사업가 사이에서 정체성 갈등을 경험한다. 경영적 셈법의 결과 누구의 역량이 떨어지는지도 분명해진다. 공동 운명을 짊어진 직원들은 물량을 감당하기 위해 서로를 채근하기에 이른다.

 

사업은 성공했는데 그래서 행복해지는 걸까. 감독의 카메라는 공교롭게도 이제부터 이들 청(소)년들의 출퇴근길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뭔가 영화로서 실마리를 찾아냈다는 듯 말이다. 역시나 그 길은 여느 노동자들의 그것과 크게 다를 게 없다. 피곤과 권태로움의 반복. 노동 강도는 점점 커지고 내적 긴장은 걷잡을 수가 없다.

 

성장은 단절과 함께 온다

 

나쁘게 보면 한없이 나쁘게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공동창업자로서 동지이자 동료인 어른과 청소년 사이에는 균열마저 감지된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소망하던 자율노동이고 작업장 민주주의인 것일까. 오히려 86세대와 청년세대 사이의 갈등으로, 정치의식으로 단련된 운동권과 소박한 활동가 사이의 갈등으로, 심지어 관리자와 노동자 사이의 갈등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물론 그 어떤 언어로도 이들이 겪어내는 분투를 손쉽게 재단할 수는 없다.

 

왜냐면 그 누구도 이런 식의 긴장과 진통을 의도하거나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싸워야 할 대상은 서로의 상대가 아니라, 운동가이면서 사업가여야 한다는 현실, 그리고 활동가이면서 노동자여야 한다는 현실 같은 오늘날의 아이러니한 역사적 조건들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무리는 따라서 그 처음과 마찬가지로 절대 훈훈할 수 없으며 차라리 절박하다.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청년들의 부고 소식이 심심치 않게 타전되는 세상. 오늘날 우리에게 출구라는 게 있을까.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를 상상할 수 있을까. 사회적 경제나 공유 경제,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같은 것들이 그 출구가 될 수 있을까. 실제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런 공간들에서 우리가 그토록 염원했던 경제민주화, 작업장 민주주의 같은 이념들이 실현될 수 있기를 소망하기도 한다.

 

그곳에서는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삶을 추구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꿈꿔볼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섞으면서 말이다. <길모퉁이 가게>는 그런 소망과 기대들에 몇 가지 질문을 남긴다.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일까. 자본주의 안에서 비자본주의적 삶의 형식을 생성하고 지속해서 나아가 체계를 변형시킨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일까.

 

2018년 영화 상영 이후로 소고는 일련의 절충적 시도를 했던 것 같다. 목표 매출을 내려서 노동 강도를 낮추고, 초창기 멤버로서 사업 수완이 생긴 홍아가 경영을 맡아 가게 규모를 적정선으로 제어하는 쪽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런 '절충'마저도 여의치 않았는지 2020년 1월 소고는 '학교이자 일터'라는 방법론의 유효기간이 다했음을 고하고 겸허하고도 담담하게 해산을 알렸다. 영화가 던졌던 질문은 영화 이후에도 유효했던 셈이다. 그 누구도 점증적으로 성장하지는 않는 것 같다. 성장은 단절과 함께 온다.

Who's 김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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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및 운영위원입니다. 주전공은 사회학을 하고 있고 최근에는 플랫폼 자본주의, 도시재생과 민주주의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시간이 나는대로 연구소 홈페이지에 들러서 이용자 여러분들과 교감하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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