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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비고 지옥처럼 추운 저 땅으로 노동자들은 함께 간다 - 체르노빌, 미안해요, 리키 등에 담긴 노동계급의 자부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6월호 [문화로 읽는 노동] 코너에 연재한 글입니다.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53060
by 강남규 posted Jun 21, 2021 Views 801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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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점에서 재난은 한 사회의 총체다. 그 사회의 민낯이 낱낱이 쌓여 하나의 재난을 이룬다. 그래서 하나의 재난을 자세히 해부하는 일은 곧 한 사회를 들여다보는 일과 같다. 그런 의미에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를 다룬 미국 드라마 <체르노빌>(2019)을 본다는 것은 당대 1980년대 후반 소련의 실상을 들여다보는 일인 셈이다. 원전 폭발이라는 전대미문의 재난은 소련 사회의 모순과 허술함을 빈틈없이 폭로했고, <체르노빌>은 그것들을 천천히 그리고 깊게 조명한다.

그러나 재난은 또한 동시에 한 사회의 선한 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레베카 솔닛의 말을 빌리자면, 재난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뒷문"도 함께 연다. <체르노빌>의 한 장면이 그 '뒷문'이다. 발전소에서 한참 떨어진 툴라 광산의 쉼터에서 광부들이 휴식하며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는다. 소련제 기계의 부정확성에 관한 농담이다. 그때 파란색 양복을 입고 머리를 잘 빗어 넘긴 한 남자가 찾아온다. 그의 양옆으로는 총을 든 군인 두 사람이 있다. 그의 등장을 알아차린 광부들이 밖으로 나와 앞에 도열한다. 찾아온 남자는 소련 석탄산업부 장관 샤도프, 석탄산업을 관장하는 최고 공무원이다.

 

머뭇거리며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현장에 투입을 요청하는 당간부와 아무 말 없이 이에 응하며 그의 어깨를 탄가루 묻은 손으로 툭 만져주고 가는 탄광노동자들.

<체르노빌>


그가 간단한 자기소개를 마친 뒤 광부들에게 다짜고짜 지시한다. "장비를 들고, 트럭에 타라." 작업반장이 대표로 대답한다. "왜요? 어디로 가는데요?" 기밀이라 말할 수 없다는 장관. 그러자 작업반장은 호기롭게 대답한다. "그럼 우릴 다 쏴 죽이쇼. 여긴 툴라고, 이곳은 우리 광산이에요. 이유를 알기 전엔 안 움직입니다." 당황한 장관이 솔직하게 말한다. 체르노빌로 간다고. 격앙됐던 광부들의 표정이 굳는다. 장관이 덧붙인다. 원자로 원료가 가라앉고 있다고, 그걸 못 막으면 모두가 위험해질 거라고. "당은 동무들이 그걸 막아줬으면 좋겠어." 이제 광부들은 더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석탄에 뒤덮인 몸 그대로 트럭으로 향해 간다.

드라마 전체를 통틀어 비중이 큰 장면은 아니지만, 노동계급 특유의 '스웨그'가 강렬한 인상을 남겨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장면이다. 노동계급의 자부심이랄까. 광부들은 장관이라는 '권위'에 굴복하지 않았다. 군인이라는 '폭력'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무언가에 굴복하는 대신, 스스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선택했다. 그들 자신의 기술과 존엄이 저들의 권위에 앞선다는 데에, 그리고 동료들도 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데에 본능적인 확신이 없었다면 이 장면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계를 진일보시키는 힘, 노동계급의 자부심


하지만 많은 경우 노동자들의 자부심은 그 자체로 노동자들의 세계를 한 단계 진보시키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남성 동료들에게 일상적으로 성폭력에 시달리는 여성 광부가 광산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한 실화를 다룬 <노스 컨츄리>(2005)에는 주인공은 조시가 노동조합 집회에 조합원으로서 참석해 성차별에 대해 발언하려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남성 조합원들은 야유하고 성희롱적인 발언을 쏟아내는데, 조시는 굴하지 않고 차분하게 노동조합 내규를 읽는다. "내규에는 남성이나 여성(her)이나 모두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고 되어 있어요." 이제 남성 조합원들은 더이상 발언을 막지 못한다. 노동조합이 민주적으로 만들었으며 조합원이라면 그에 따르기로 약속한 내규이므로. 내규를 부정하는 일은 곧 계급을 부정하는 일이므로. 이렇게 조직은 개인을 앞서가기도 한다. 


특히 서구사회에서 '노동계급의 자부심'이라는 주제는 흥미롭다. 그것은 생각지도 못한 장면에서 불쑥 튀어나와 이야기의 개연성을 무너뜨린다. 어떤 노동자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 그 배경에는 종종 계급적 자부심이 있다. 물론 자부심이 늘 좋은 방향으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예컨대, <미안해요, 리키>(2019)의 초반부, 일자리를 잃은 리키가 택배기사 면접을 보러 간 자리에서 면접관이 이렇게 묻는 장면이 있다. "실업급여 받은 적은?" 리키는 고민도 없이 답한다. "없어요, 자존심이 있지. 차라리 굶는 게 낫죠." 아아, 이토록 당당하면서도 갑갑한 자부심이라니.

 

<미안해요 리키>의 한 장면

<미안해요, 리키>


마거릿 대처 시절 광부파업에 나선 노동자의 아들인 빌리 엘리어트가 발레를 배워가는 이야기를 그린 <빌리 엘리어트>(2000)에서 계급적 자부심은 좀 더 양면적으로 그려진다. 노동자들에게 발레는 '저쪽 세계'의 문화이고, '여성적'인 취향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노동자의 아들이, 딸도 아니고 아들이, 발레를 배우겠다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빌리는 계속 발레를 배운다. 그리고 도시의 발레 학교로 진학할 기회까지 얻는다. 하지만 돈이 없다. 파업 중이기에 버는 것도 없는 마당에 아이의 비싼 등록금을 내줄 돈이 있을 턱이 없다. 그때 광부들이 나선다. 어쨌거나 저 아이는 '우리의 마을'에서 자란 '우리의 아이'다, 우리의 아이가 좌절하는 꼴은 볼 수 없다는 듯이.

이야기는 광부들이 없는 돈을 모아 만들어 낸 돈으로 빌리가 발레 학교에 진학하면서 마무리된다. 영화판에서는 그려지지 않는데, 2005년에 초연된 뮤지컬에서는 광부들이 빌리를 떠나보내고 다시 광산으로 내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광산으로 내려가면서 노동자들은 당당하게 정면을 바라보며 이렇게 노래한다. "저 땅은 텅 비고 지옥처럼 춥지만, 갈 때는 우리 모두 함께 간다." 그게 바로 노동계급의 문화이고 자부심이다.

다시 만난 노동의 세계

'노동계급의 자부심'을 얘기하자고 <체르노빌>과 <미안해요, 리키>, 그리고 <노스 컨츄리>와 <빌리 엘리어트>까지 경유했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는 워낙 낯선 개념이다. 그들의 자부심의 작동방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를 다룬 여러 콘텐츠를 경유하면서 감정의 편린들을 수집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선 노동계급이 하나의 유의미한 정체성으로 자리 잡지 못했고, 노동자는 '불쌍한 사람'으로, 노동조합은 '조직이기주의'로 여겨진다. 노동계급의 자부심이라는 주제를 들여다보고 싶어지는 것은 그래서다. 그 자부심은 리키가 그랬던 것처럼 정당한 혜택조차 스스로 거부하게 만들고, 조시가 그랬던 것처럼 여성을 차별하게 만들고, 빌리가 그랬던 것처럼 소중한 꿈을 모욕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또한 조시가 발언할 수 있게 만들고, 빌리가 꿈을 찾아 떠나갈 수 있도록 만들기도 한다. 

개인들이 어떠한 동질성도 없이 파편적으로 흩어져 각자도생하는 사회보다는 이처럼 노동자들이 자부심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회가 좀 더 건강한 사회 아닐까. 노동자들이 공유하는 것이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뿐이라면 우리 사회에서 노동은 언제나 오해받고 소외된 개념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듯 노동계급의 자부심이라는 문제를 경유하면, 오늘날 'MZ세대 노동담론'에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주는 만큼만 일한다"라는 말로 요약되는 담론에 대한 질문이다. 일은 일일 뿐이고 자아실현은 퇴근 이후에 한다든지, 회사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인 시대는 끝났다든지. 이런 주장들은 물론 대체로 옳은 말이지만, 이런 말들이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해체하고 각각의 개인으로 원자화되는 현상을 가속하고 있는 것 같다는 근심을 지우기가 어렵다.

적어도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나의 관심사는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받아내는 방법'보다는 '더 좋은 사회를 향해가는 방법'에 기울어져 있다. 노동계급의 자부심이 표현되는 장면들에 시선을 주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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