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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을지로라는 거대한 공장이자 시장: 서일엔지니어링과 만물제작소로 보는 생산 네트워크

이 글은 다음과 같은 인터뷰 영상에 대한 배경적인 상황들을 설명하는 글로 쓰여졌습니다. [을지로는기술대학 네트워크코스] 온라인토크쇼 만물제작소, 서일ENG 편.
(출처: 세운맵 칼럼|도심제조업 가로지르기 https://map.sewoon.org/?post=21773)
by 최혁규 posted Apr 04, 2021 Views 196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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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산림동에 위치한 서일엔지니어링 입문 ⓒ최혁규

 

 

최근 방영을 개시한 드라마 <스위트홈>(2020)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어느 골방 기술자가 위기에 처한 아이들을 구하고 싶지만 별다른 무기가 없는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청계천에서 좀 날렸거든. 알지? 설계도만 있으면 탱크도 조립해준다는… 네가 들고 있는 그 작대기를 더 쓸모 있는 것으로 개조해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재료와 도구만 있으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진 사람. 이런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해 영화는 청계천 일대 기술자의 기술력을 소개하는 관행적인 표현을 차용했고, 한국적인 맥락 안에서는 이 대사가 큰 이견 없이 이해됐을 테다. 아마도 이 문화적 맥락을 이해 못하는 해외 시청자라면 도대체 청계천이 뭐하는 곳인지 궁금하겠지만.

청계천의 기술력에 대한 일종의 신화처럼 떠도는 “청계천은 설계도만 있으면 탱크도 조립해준다”는 이 진술은 절반만 참이다. ‘탱크’라는 표상이 제작 난이도가 높은 어떤 사물을 의미한다고 했을 때, 이 말은 “청계천은 설계도만 있으면 무엇이든 만들어줄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여기서 청계천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기술적 잠재력이 있다는 말은 참이다. 하지만 설계도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은 필수가 아니다. 왜냐하면 설계도가 없더라도 어떤 것을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청계천의 기술적 조건에 맞춰서 설계하고 제작하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굳이 제작물을 정밀하게 설계한 도면이 없더라도 무엇이든 만들어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청계천에서 이러한 생산은 어떻게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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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서일엔지니어링 김승현 대표 ⓒ최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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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만물제작소 김준희 대표 ⓒ만물제작소

 

서일엔지니어링과 만물제작소는 ‘제작’을 한다

 

공업사들이 밀집되어 있는 청계천 일대를 ‘거대한 공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히,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에는 공업용품을 생산하거나 유통하는 여러 공업사들이 밀집해 있는데, 을지로3가와 을지로4가 사이 입정동과 산림동 인근에는 선반, 밀링머신, 드릴링머신, 호빙머신, 벤치레스, 스피닝선반, 프레스, 절단기, 절곡기, 그라인더, 용접기 등의 공작기계들을 이용해서 제품과 작품을 만들어내는 소규모 제작소들이 모여 있다. 점점 상승하는 도심의 높은 지대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공업 집적지가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각 업체들이 자신의 작업장 내에서 모든 생산라인을 수행하기 위해 큰 규모의 공간을 점유하고 있기보다는, 전문화된 개별 제작 공정만을 수행하는 소규모의 작업장을 운영하면서 생산을 위한 광범위한 분업 체계 혹은 유연한 생산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이 지역은 개별 업체들이 집적되어 있지만 동시에 개별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계되어 생산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거대한 공장이다. 이는 도심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집단적인 생존 전략이자 집적의 결과이기도 하다. 

 

서일엔지니어링과 만물제작소도 이 거대한 공장의 구성원이다. 서일엔지니어링은 선반과 밀링머신을 이용해 금속 등의 재료를 정밀하게 가공하는 공정을 주로 수행하는 업체이다. 이는 청계상가와 대림상가가 만나는 경계에 있는 산림동 쪽에 위치해 있는데, 항상 밤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는 몇 안 되는 작업장 중 하나이다. 그런 만큼 맡긴 일을 기한에 맞춰 꼼꼼하게 작업해주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곳이다. 세운상가 6층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만물제작소는 공업용 기계, 시제품, 학생작품, 예술작품 등의 제작을 의뢰받아 주문자와 상담을 하면서 도면을 설계하고 그에 맞게 제작 과정을 진행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사무실은 말 그대로 사무 업무를 하는 곳이고, 제작물을 다룬다거나 선반이나 밀링머신 같은 기계를 사용한다거나 할 때는 서일엔지니어링 작업장을 이용한다. 

 

무엇보다 서일엔지니어링과 만물제작소는 주로 제작 일을 하고 있고, 이 대부분의 작업들을 함께 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청계천·을지로 일대 공업사들은 대부분 생산 네트워크 하에서 전문적인 단일 공정을 중심으로 작업장을 운영한다. 금속이나 플라스틱을 가공하거나 성형해서 어떤 기계나 제품에 들어가는 부속품이나 반제품을 만든다거나, 금속 재료들을 자르고 붙여 인테리어 등에 필요한 구조물 혹은 골조를 만드는 일들을 한다. 그런데 이중에서 ‘제작’까지 하는 업체들도 있다. 여기서 ‘제작’이라고 하는 작업은 특정 공정을 중심으로 해서 부속품이나 반제품 혹은 구조물이나 골조를 만드는 게 아니라, 지역의 생산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개별 공정들을 조직하고 각 부품들을 조립하여 완성된 기계를 만드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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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 서일엔지니어링과 만물제작소가 제작한 전시용 키네틱 아트 ⓒ만물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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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4 서일엔지니어링과 만물제작소가 제작한 북어포 절삭기 ⓒ만물제작소

 

청계천 일대 생산 네트워크의 작동방식: 서일엔지니어링과 만물제작소의 사례

 

서일엔지니어링과 만물제작소는 제작 일을 맡으면 서로의 전문성과 노하우를 토대로 일을 분담한다. 주문자가 주로 만들고 싶은 작업물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만물제작소는 이를 도면으로 설계한다. 도면을 단순히 스케치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도를 3D로 구현하여 구석구석 점검해본다. 최종 완성품이 구조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가공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충돌은 없는지 등을 검토하면서 도면을 수정한다. 동시에 서일엔지니어링은 이 작업에 적절한 재료는 무엇인지, 이를 청계천·을지로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는지, 이 공정을 청계천·을지로 일대의 어느 업체에 맡기면 되는지, 여기에 없다면 지역 외부의 어떤 업체에 맡겨야 되는지, 그렇게 한다면 어느 정도 단가에 어느 정도 기간에 어떤 품질로 나올 수 있는지를 현실적으로 계산해본다. 그리고 주문자의 가용한 예산과 시간 안에서 제작물의 최종적인 생산 과정을 조율한다. 

 

이런 선가공 혹은 사전제작 단계를 마치면 이들은 자신들이 자주 거래하고 있는 생산 네트워크를 활용해 주문받은 물품을 제작한다. 금속 판재를 필요한 크기에 맞게 절단하는 작업은 남양주에 있는 <성진레이저>에 주문을 넣고, 알루미늄 같은 비철금속 봉재 등의 자재는 <성진금속>에서 산다. 그리고 대부분의 가공은 <서일엔지니어링> 작업장에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외의 해결하기 어려운 가공만 외주를 준다. 봉재를 가공하는 로구로 같은 공정은 <대일정밀로구로>에 맡기고, 프레스로 타공이 필요한 경우는 <대신정밀>을 이용한다. 원판을 원통이나 원뿔 모양으로 성형하는 시보리 작업이 필요할 때는 <동경시보리>에 요청한다. 용접 같은 경우는 필요할 때마다 가능한 곳에 맡기기 때문에 정해진 곳이 없다. 마지막으로 표면을 정돈하기 위해 연마 작업은 <승진빠우>에, 작업물에 색을 입히는 도장은 <시대칠>을 이용한다. 그리고 항상 있는 일은 아니지만, 동력이 필요한 기계를 만들 때는 장사동 전자골목으로 넘어와 모터나 벨트를 구매한다. 이러한 개별 공정들의 부품들은 서일엔지니어링 작업장을 거쳐 최종적으로 조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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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5 서일엔지니어링-만물제작소의 생산 네트워크 ⓒ최혁규

 

이러한 제작 일을 하기 위해서는 개별 공정을 완성도 있게 수행하는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제작 과정에서 지역 내외의 생산 네트워크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는 감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자재와 부품을 파는 자재상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그리고 작업을 위해 필요한 공정을 할 수 있는 공업사가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이는 조금 완성도가 떨어지더라도 단시간 안에 저렴한 가격으로 작업을 해주는 업체부터, 작업물의 품질은 뛰어나지만 오랜 시간이 걸리고 단가가 높은 업체까지 지역의 업체 스펙트럼이 다양하기 때문에 지역 생산 네트워크의 상황을 잘 간파하고 있어야 상황에 맞춘 작업이 가능하다. 심지어 한 업체가 모든 공구를 가지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급하게 필요할 때 빌려 쓸 수 있을 정도로 주변 작업장들이 어떤 공구를 가지고 있는지도 알고 있어야 작업 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는다. 청계천·을지로 일대 생산 네트워크는 이러한 조건 하에서 작동한다.

 

 

거대한 시장으로서 청계천·을지로

 

서일엔지니어링과 만물제작소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청계천·을지로라는 ‘거대한 공장’은 단일한 생산라인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작업물이 만들어지는 전체 제작 과정을 항상 염두에 두면서 이 생산 네트워크를 조직한다. 그리고 공간적 분업 체계를 기반으로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실질적으로 구현 가능한 제작 과정으로 조직하는 이 유연한 생산 방식은 청계천 일대 제작소들의 일반적인 작업 방식이다.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고 하는 말은 청계천 일대 공업사들의 전문적인 공정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며, 설계도가 없어도 된다는 말은 지역의 생산 네트워크에 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실제 주어진 조건 안에서 작업물을 제작할 수 있는 도면 또한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계천·을지로에 있는 공업사들은 개별 업체로는 규모가 작은 소상공업체일지라도, 이들이 함께 모여 산업 집적지로서 기능하면서 가질 수 있는 생산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이는 청계천·을지로 일대가 설계도 없이도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거대한 공장’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거대한 공장을 가동시키는 유연한 생산 네트워크의 실질적인 토대가 서로 긴밀한 거래망을 이루고 있는 다종다양한 업체들이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계천·을지로 일대는 하나의 거대한 공장이기 이전에, 전문적인 공정을 수행하는 기술력과 주문 생산을 통한 물품 그리고 다종다양한 산업용재 등을 판매하고 구매할 수 있는 일종의 ‘거대한 시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계천 일대의 생산방식을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 거대한 시장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유지하고 지속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을지로는기술대학 네트워크코스] 온라인토크쇼 만물제작소, 서일ENG 편

 

글쓴이최혁규

청계천 일대 상공업 공간의 역사적 형성과 상공인의 일과 삶을 조사하고 사진 기록을 하면서 재개발 반대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메이커운동과 국내 제작문화의 형성, 도심제조업 소공인의 구술생애사, 입정동 기술자들의 기술 숙련 과정과 생산네트워크, 청계천-을지로 산업생태계 보존을 위한 도시사회운동 등에 대한 연구를 했다. 더 이상 이 도심 상공업 공간이 파괴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여러 활동들을 모색하고 있다.

Who's 최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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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회연구소와 청계천기술문화연구실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화이론과 미디어이론 그리고 과학기술학을 공부했고, 기술사와 영상문화,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현재 동료들과 청계천·을지로 일대 기술자들의 기술-지식의 역사와 현재를 조사하면서 재개발 반대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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