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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세대’가 아닌 신자유주의의 특징을 묻다

<오늘의 교육> 60호에 게재된 『커밍 업 쇼트』 서평 원고입니다.
https://communebut.com/magazine/?idx=5887754&bmode=view
by 강남규 posted Mar 31, 2021 Views 42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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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내어 발음해보라, 밀레니얼. 울림소리 자음인 ‘ㄴ, ㄹ, ㅁ, ㅇ’만으로 구성된 이 단어는 평탄하고 부드럽게 발음된다. 미디어가 바라보는 밀레니얼 세대의 삶이 꼭 그런 느낌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회사에서도 당당하다.” “밀레니얼 세대는 윤리적 가치를 좇는다.” “밀레니얼 세대는 능력주의적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결혼과 출산 대신 자기 삶을 가꾼다.” 전반적으로 주체적이고 당당한 이미지다. 이 세대가 이 같은 특성을 공유하는 이유를 분석하려는 시도들 역시 참 매끄럽다. ‘디지털 네이티브’라서 그렇다든지, ‘공동체주의에서 개인주의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라든지.

밀레니얼 세대와 청년 세대는 그 구성이 상당히 겹치는 편이지만, 청년세대 담론은 밀레니얼 세대 담론의 정반대다. 청년세대 담론의 이미지를 떠올려볼까. 비관, 좌절, 박탈감 같은 키워드들이 떠오른다. 부모보다 더 배웠지만 덜 버는 최초의 세대, 임금노동으로는 전망을 찾을 수 없어 ‘영끌 투자’에 몰두하는 세대. 청년 세대가 이렇게 된 이유를 분석하는 시도들은 대체로 구조적 관점으로 접근한다.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사회 개편과 그에 따른 고착화된 경제적 불평등 같은 사회구조적 접근으로 청년 세대가 처한 현실을 분석하는 식이다.

요컨대 우리에겐 같은 세대에 대한 두 가지 개념이 있는 셈이다. 그리고 각각의 개념에 대한 담론은 서로 정반대의 관점에서 한 세대를 바라보고 분석한다. 잠깐 생각해봐도 괴상한 일이지만, 어쨌거나 최근의 담론 지형은 대체로 그렇게 구성돼 왔다. 밀레니얼 세대 담론은 한없이 긍정적이고, 청년 세대 담론은 한없이 부정적이다.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이자 노동계급인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저작 『커밍 업 쇼트』는 이 괴상한 담론 지형 사이에서 솟아났다. 한국 담론 지형을 빗대 표현하자면 청년 세대 담론의 렌즈를 통해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을 이해하려는 저작이다. 다시 말해 밀레니얼 세대의 ‘주체적이고 당당한’ 특성들을 사회구조적인 결과로 재해석한다는 뜻이다.

미국에서 2013년에 출간된 『커밍 업 쇼트』는 사회학 연구자인 제니퍼 M. 실바가 2008년 10월부터 2010년 2월까지 약 17개월간 24세에서 34세 사이의 노동계급 청년 100명을 인터뷰한 연구결과물이다. 연구의 출발점이 된 질문은 비교적 간단하다. “오늘날 미국의 청년들은 왜 안정적인 성인기로 이행하지 못하는가?” 과거에 성인이 되었다는 사회적 기준으로 활용돼 온 것들, 예컨대 취업과 결혼, 출산과 승진 같은 것들로부터 청년들이 멀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진단과 그러한 현실에 대한 청년들의 반응 혹은 대응이 이 책이 답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이다.

커밍 업 쇼트 - YES24

 

그 대응 양상은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 담론과 닮아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능력주의적이다.” 한국의 담론 지형에서 이 명제는 능력주의 옹호자들에게 단지 긍정적으로 이해되거나, 혹은 능력주의 비판자들에게 세대 비판을 위한 명제로 쓰인다. 하지만 실바는 이 두 가지 길을 단호하게 배제하고, 미국 청년들이 어떻게 능력주의자가 되는지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많은 이가 부당한 상황을 참고 견디며, 자립과 원자화된 개인주의를 자기 가치나 존엄과 동일시한다. 자기가 혼자 힘으로 살아남았으니 남들도 그래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단기 유연성, 끝없는 유동성, 공허한 제도들의 시대에 성인기로의 이행은 뒤집혀 왔다. 성인이 된다는 건 사회 집단이나 제도로의 진입이 아니라 그것들로부터의 노골적인 배제를 수반하는 과정이다.”(160~161p)

“사회 집단이나 제도로의 진입”이 불가능한 시대에 태어나 자란 이들에게는 달리 의지할 무엇이 없었으며, 오직 “혼자 힘으로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이 명확하다는 얘기다. 사회적 안전망이 완전히 해체돼버린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능력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경합의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실바는 이 지점을 청년들의 말과 경험을 통해 분명하게 보여준다.

“밀레니얼 세대는 결혼과 출산 대신 자기 삶을 가꾼다.” 이 세련된 명제는 또 어떤가. 연애 자체를 포기했거나, 혹은 동거하고 있지만 결혼은 보류하고 있거나, 결혼했지만 아이를 낳고 싶지는 않은 청년들을 두루 인터뷰한 실바는 이렇게 정리한다.

“남성과 여성 모두 결국에는 실패할 관계에 시간과 감정, 에너지를 쏟을까 봐 극도로 두려워한다. 불안정한 노동 시장에서 자신을 돌봐야 하는 데다가 의미 있는 미래 계획을 세울 여력도 없어 큰 부담을 느끼는 이들에게 헌신하는 관계는 또 하나의 리스크가 된다.”(153p)

기존의 ‘n포세대’ 같은 담론과 얼핏 유사한 논의이지만, 『커밍 업 쇼트』의 논의방식은 약간 더 복잡하다. 이 책의 핵심 키워드인 ‘치료서사’가 그 고리다. 요컨대 신자유주의는 개인의 성장을 개인의 자력에 일임하게 하는데, 고통조차도 스스로 극복하고 이겨내야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식의 이데올로기다. 이러한 치료서사를 내면화한 청년들은 연애나 결혼, 출산과 같은 관계적 친밀함에 대하여 치료에 이를 수 있는 관계인지에 따라, 즉 “리스크”의 정도에 따라 진입을 결정(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회사에서도 당당하다”는 명제는 아마 가장 유명할 것이다. 『90년생이 온다』, 『밀레니얼과 함께 일하는 법』 따위의 ‘밀레니얼 세대의 일 태도’를 다룬 저작들이 쏟아질 정도다. 실바는 직장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려던 청년들이 끝내 실망하고 고꾸라진 경험과 애써 잡은 직장에서 너무나 쉽게 해고당한 경험을 언급하면서, 이들이 “자신을 사로잡은 감정들이 고통이 되어 짓누르지 않도록 기대나 행동을 재빨리 조절”(181p)하는 법을 배운다고 말한다. “고용주나 동료에게 헌신과 충실함, 공정함을 기대”(180p)하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실바에 따르면 이러한 태도는 직장이 성장의 거점이 되어주지 못하는 현실에서 ‘치료서사’를 통해 성장하려는 청년들의 자연스러운 선택이라는 얘기다.

90년생과 일하는 방법 (밀레니얼세대의 새로운 가치관을 이해하는 26가지 소통의 기술) - 리디북스 | 책 디자인, 해리포터 책, 책  표지 디자인

 

이처럼 『커밍 업 쇼트』는 밀레니얼 세대의 세대적 특성으로 이야기돼 온 것들을 신자유주의 사회구조에 따른 구조적 특성으로 재해석한다. 청년 세대 담론을 흔한 세대론의 함정에서 구해내서 신자유주의 사회변동이라는 보편적 논의의 장으로 위치시킨다는 점에 이 책의 의의가 있다. 한편 실바는 청년 세대를 손쉽게 ‘동일집단’으로 묶는 함정에서도 담론을 구해냈다. 인터뷰한 청년들을 연령·성별·인종·계층으로 세밀하게 나누어 파악한 뒤 각각의 정체성에 따라 한 세대의 청년들이 어떻게 다른 감각을 갖게 되는가를 꼼꼼하게 분석했다. 이 책의 주요 주제는 노동계급 밀레니얼 세대의 삶을 이해하는 데 있지만, 이 같은 지점들 때문에 세대 담론에 대한 메타 비평으로도 읽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커밍 업 쇼트』의 미국 초판이 2013년에 출간되었고 한국에서 밀레니얼 세대 담론이 주류화된 것이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한국의 담론이 이토록 평탄하고 부드럽다는 사실 자체도 하나의 문제적 현상이 아닐까. 이 책이 노동계급에 주목한 것과 달리 한국은 중산층 청년만 ‘밀레니얼 세대’의 상징으로 주목했다는 얘기다. 학술 담론장에서 반성할 일이다. 그래도 차면 넘치는 법인지, 비교적 최근에는 밀레니얼 세대 담론의 사각지대를 비추는 저작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 같다. 천주희 작가의 『회사가 괜찮으면 누가 퇴사해』(2019) 같은 저작이 대표적이다. 퇴사 담론 역시 중산층 밀레니얼 세대의 관점에 편중해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 위해 퇴사합니다”라는 식으로 낭만화된 측면이 있는데, 천주희 작가의 저작은 노동자 청년들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퇴사 담론을 재구성한다.

앞서 능력주의에 관한 인용에서 밀레니얼 청년들의 성인기란 “사회 집단이나 제도로의 진입이 아니라 그것들로부터의 노골적인 배제를 수반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 진단에서 출발한 저자의 결론이 흥미롭다. 『커밍 업 쇼트』의 말미에는 다른 청년들과 비슷하게 “실망과 실패”를 경험한 윌리라는 청년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그의 말은 다른 청년들과 다르게 무척 밝다. 그는 지역 내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사람이다. 세상이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면서,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윌리는 동등한 기회, 리스크 풀링, 시장으로부터의 사회적 보호 같은 정치적 목표에 여전히 헌신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라는 감각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280p)

‘개인’이 아니라 ‘우리’라는 감각. 치료 서사가 아니라 사회적 보호. 이 책이 2008년부터 2010년 사이에 연구되어 2013년에 처음 출간했음을 다시 생각해보자. 계급에 기초한 사회운동을 대안으로 제시한 저자의 제언은 2016년 ‘버니 샌더스 열풍’을 계기로 현실화됐다. 급진적 사회운동단체인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 그룹의 회원수는 2015년 5,000명에서 2020년 현재 80,000명까지 늘었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로 상징되는 밀레니얼 청년들이 의회에서 목소리를 내면서 ‘우리’라는 감각을 연일 일깨우고 있다. 치료서사에 골몰하던 100명의 청년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혹은 새로이 24~34세가 된 오늘날의 청년들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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