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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노동과 사회적 낙인에 대한 우회적 질문 - 영화 이리나 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2월호 '문화로 읽는 노동' 칼럼에 연재한 글입니다.
오마이뉴스 http://omn.kr/1s3o7 에도 실렸습니다.
by 어떤화두 posted Feb 17, 2021 Views 25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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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병에 걸린 손자, 병원에서 희소식을 알려준다. 호주의 병원에서 치료해주겠다는 것. 그러나 영국에서 호주까지 항공권, 숙박, 입원비 등의 경비가 없다. 이미 손자의 병원비를 위해 집도 팔고 많은 부채에 아들과 며느리도 변변찮은 수입으로 벅차다. 집도 수입도 저축도 없어 거부당하고 기술경력도 자격도 없어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다. 그렇게 낙심하며 길을 걷다가 '호스티스 구함'이라는 손으로 쓴 전단지를 보고 매기는 구멍이 뚫린 벽에 들어온 남성의 성기를 자위시켜주는 윤락업소에서 자발적으로 성노동자가 된다.

매춘 혹은 성노동은 늘 사회적 빈곤의 서사와 함께한다. 가용할 자원이라곤 육체밖에 없는 사람들이 이르게 되는 막다른 곳에서 수행된다. 아마도 수많은 노동 중 유일하게 이 노동만이 매우 강력한 도덕적 잣대로 평가받는 게 아닐까 싶다. 더럽고 추하고 부끄러운 노동, 능력 없고 게으른 자들의 노동 말이다. 다른 한편에선 성노동을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가 만든 여성 착취로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것으로 바라본다. 이 관점에서 성산업 종사자는 남성과 사회구조의 폭력과 착취의 피해자로 인식된다. 이러한 두 시선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성산업에 대한 인식을 대표해왔다. 그러나 둘 다 성노동이 생존을 위한 '노동'이라는 관점을 놓치고 있으며, 이 노동에 대한 경멸적 낙인이 가져오는 문제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

영화 <이리나 팜>은 가족과 주변 사람의 인식속에서 성노동자가 된 주인공 매기의 불안과 갈등을 다룬다. 윤락 업소가 등장한다고 해서 영화의 내용이 더럽거나 추하거나 부끄럽진 않다. 손자를 살리기 위한 소명이나 휴머니즘으로 성노동을 덧칠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주인공 매기의 자기인식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영화는 우회적으로 성노동에 겨누어진 도덕적 잣대의 정당성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한다.
 

 영화 <이리나 팜>의 한국 포스터.
▲  영화 <이리나 팜>의 한국 포스터.
ⓒ 영화 이리나 팜

 

 
성노동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라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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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영화에 대해 얘기하기에 앞서, '성노동'이란 단어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성노동은 페미니즘 진영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되는 쟁점이다. 하나는 매춘과 같은 성산업이 여성을 성적, 사회경제적으로 종속하고 있기에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는 근절주의의 입장이다. 박혜정은 성노동 운동을 성착취 근절 운동이 확산되자, 위기를 느낀 남성지배체제가 종속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발동시킨 것, 즉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반동이라고 주장한다.1) 다른 하나는 자발성을 중심에 두고서 매춘을 성노동으로 개념화하고 성노동권과 노동조합운동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박이은실은 성거래를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억압으로만 보는 전통적 성별억압구조에서 벗어나, 성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받아 스스로 노동환경과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는 것을 강조한다.2)

근절주의의 경우, 성산업이 가진 폭력성과 착취의 문제를 제기해 페미니즘의 문제를 확대해왔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성노동으로 개념화하는 입장이 섹슈얼리티의 위계를 고려하고 여러 성적 소수자 운동과의 연대를 지향하는 데 있어, 현재 성노동 운동의 방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영화와 관련해서도 주인공 매기의 자기인식의 변화와 갈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매춘 혹은 성노동을 소재로 다룬 이른바 상 좀 받았다 하는 영화들을 보면 주인공을 모순적인 거대한 사회의 희생양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 <부르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가 트랄랄라를 내세워 1950년대 한국전쟁과 파업으로 인한 미국사회의 하층민의 삶을 그려냈다면 <노는 계집 창>은 영은을 통해 70년대 말에서 90년대에 이르는 왜곡된 한국의 성산업을 보여준 바 있다. 이와 같은 영화들은 남성중심의 불평등한 사회가 여성에 행사하는 부당한 폭력성을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근절주의의 입장에서의 접근이 용이하다.

그러나 <이리나 팜>은 많은 성노동 관련 영화에서 자주 차용하는 가난과 빈곤의 배경이 등장하긴 하지만, 암울한 사회상을 영화의 중심에 배치하진 않는다. 돈이 필요해 애나가 성산업에 종사하기로 결단한 이후 주변 사람과 가족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들을 통해, 성산업의 폭력성이 아닌 성노동에 대한 도덕적 잣대, 사회적 낙인의 문제를 엿볼 수 있다. 장소와 직업의 특수성으로 인해 몇몇 노출 장면이 등장하지만, 인신매매나 강간 등의 폭력성을 배제하고서, 영화는 인물들 간의 관계에 주목한다.

불안과 공포, 경멸과 조롱을 불러내는 낙인찍기

성산업 종사자들은 자신들에 대한 사회와 타인들의 부정적인 사회적 낙인을 피할 수 없다. 이는 영화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한 축을 이룬다. 일하게 되면서 애나는 주변의 지인들과의 모임에 소홀해지게 되고, 우연히 지하철 승강장에서 만나 어디 가느냐고 묻는 지인을 무시하고 서둘러 지하철에 오른다. 손자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자발적으로 선택한 직업이지만, 성노동에 종사하는 것을 가족과 주변 사람이 알게 될까봐 매기는 늘 불안해한다.

근절주의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점에서 몸을 파는 사람은 피해자로 보호해야 하지만, 사는 사람과 알선하는 사람은 범죄자로 취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3) 즉 낙인은 성노동이 아니라 구매하고 알선하는 범죄자에게 내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접근은 왜 성노동에 대한 강력한 낙인찍기가 일어나는지 설명하지 못하며, 낙인으로부터 비롯되는 불안과 공포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있다.

박이은실은 이러한 낙인찍기를 섹슈얼리티의 위계로 설명한다. 성노동자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낙인은 이성애 남성중심적 질서에 의해 위계화된 구조 안에서 발생하며, 성노동자 여성은 이성애 이외의 다양한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위계의 하부에 위치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 위계의 상부는 남성과 '처'로서의 여성이 위치하는데, '처'의 위치가 보장되고 사회적 자원을 분배받을 수 있는 이유는 처의 '성'을 남편만이 독점함으로써 생식과 관련되어 높은 위계 속에서 보호받고 통제받음으로써 가부장제를 유지4)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용인된 이성애와 결혼제도 안의 성만을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가 공식적으로 용인하면서 성적 소수자나 성노동자는 금지 또는 범죄의 영역으로 내몰린다. 바로 여기서 낙인이 작동하는 것이다. 애나가 죽어가는 손자를 살리기 위한 노동을 꽁꽁 숨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영화에서 어머니의 직업을 알게 된 아들은 매기에게 창녀라 비난하며 모든 돈을 돌려주고 하던 짓을 씻을 수 있게 하겠다고 소리친다. 집에서 나온 매기는 친목 모임을 함께하는 지인들과 만나게 되고 지인의 집에 차를 마시며 자신의 직업을 말하게 된다. 그리고 집을 나가는 매기를 따라온 한 여성이 조롱하며 묻는다. "당신의 남편이 살아있었다면 이야기하지 않았겠지?" 이후 상점에서 마주친 매기에게 "너의 새 직업을 고려할 때, 나는 더 적절한 친구를 원해"라며 여러 사람 앞에서 망신을 주려 한다. 이러한 장면은 정상가족으로 표상되는 이성애 중심의 가부장사회가 축조한 비정상성, 부도덕성이라는 성노동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드러낸다.
 

 영화 <이리나 팜>의 한 장면.
▲  영화 <이리나 팜>의 한 장면.
ⓒ 영화 <이리나 팜>

 

 
사회적 낙인을 해체하는 것은 가능할까?

창녀, 성매매 종사자라는 아들의 비난에 매기는 자신은 창녀가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후회하지 않으며 다시는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당부한다. 사회적 낙인은 성산업 내의 다양한 모습들이 존재함에도, 성산업 노동자들을 모두 창녀로 호명한다. 이러한 호명에서 매기 역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매기가 집에서 가져간 그림과 작은 꽃으로 자신이 일하는 공간을 장식하는 장면은 자기 일에 대한 긍정적 인식으로의 전환을 보여준다. 이 인식의 전환은 친구의 조롱과 멸시에 당당히 맞서는 힘으로 드러난다.

그렇다면, 창녀, 매춘부, 갈보에서 성노동자라는 인식 전환, 이른바 새로운 호명은 사회적 낙인을 무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가부장적 위계 속에서 배제되고 주변화되었던 자신들을 '노동자성'을 통해 새롭게 호명하고, 그럼으로써 범죄와 부도덕이라는 낙인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나아가 성산업에 내재한 착취구조를 스스로의 힘으로 무너뜨리는 미래에 대한 상상도 실현가능한 것이 되지 않을까?

[각주]
1) 박혜정(2020), <성노동, 성매매가 아니라 성착취>, 열다, p.111
2) 박이은실(2007), <섹슈얼리티의 위계와 낙인의 문제> <성노동>, 여이연, p. 88
3) 박혜정(2020), 위의 글, p. 142
4) 박이은실(2007), 위의 글, p.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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