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총선에 처음 적용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꾸준히 주장해왔던 하승수 변호사가 최근 <개방명부 비례대표제를 제안한다>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위성정당 없는 진짜 비례대표제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달렸다. 말하자면 제21대 총선에 적용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위성정당을 만드는 가짜 비례대표제’였고, 그 같은 부작용을 넘어서서 좋은 정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방명부 비례대표제라는 새로운 대안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치를 더 낫게 만들려는 고민과 대안적 모델을 모색하는 시도는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지금껏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하던 사람이 갑자기 전혀 다른 선거제도를 들고나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별로 반갑지 않다. 이것이 진보진영이 종종 발목 잡히는 자기검열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다.
진보진영의 선거제도 개혁론은 우회적인 방식으로 이뤄진다. 진보정치의 확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표를 막기 위해서라거나 위성정당을 막기 위해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식이다. 밥그릇 챙기기 아니냐는 냉소를 피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함이다. 우회의 결과는 제21대 총선에서 드러났다. 거대양당이 사표를 막겠답시고 위성정당을 만들 때 진보진영에서는 원칙론 외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정치적 다양성이 앞으로의 정치가 나아갈 길이고, 그것을 위해서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면 좀 다르지 않았을까.
늘 선거제도 개혁만 주장하는 것 자체도 우회적이다. 정치적 다양성을 가로막는 게 선거제도만 있을까. 강력한 대통령제, 경직된 공직선거법, 양당에 유리한 선거보조금 제도, 지난 30년간 단 한 자리 늘었을 뿐인 제한된 의원정수까지, 양당제를 부추기는 제도들이 가득하지만 진보진영은 선거제도 개혁만 강조해왔다. 다른 것들은 국민감정을 건드려야 하거나, 양당을 설득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선거제도는 중요하나, 그게 모든 것은 아니다. 당장 제20대 총선은 선거제도가 바뀌기 전이었지만 절묘한 균형을 이룬 다당제를 탄생시켰다. 당시 새누리당의 계파갈등과 국민의당의 지역정당 전략이 적중한 결과였다. 제21대 총선에선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돼 소수정당 약진이 기대됐지만, 양당제의 압력 속에서 ‘1.5당제’로 귀결됐다. 요컨대 선거제도의 작동방식은 한 사회의 통치체제, 사회구조, 정치문화, 시민들의 민주주의 경험과 상호영향을 주고받으며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모든 것을 바꾸자고 말하려면 결국 선을 넘는 수밖에 없다. 국민감정에 도전해 새로운 합의를 도출하고, 현실적 불가능성에도 기꺼이 도전하며, 독단적이고 교조적이라는 시선도 감수할 필요가 있다. 진보정치의 성장을 위해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며, 선거제도가 취지대로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 통치체제와 공직선거법·선거보조금 제도 등을 함께 바꿔야 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선거제도를 더욱 민주적으로 바꾸는 것은 물론 여전히 중요한 작업이지만, 결국 진보정치의 필요성을 설득해내는 게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적용된 제21대 총선이 1.5당제로 귀결된 것이 단지 여당의 위성정당 때문일까. 보다 근본적으로 유권자들이 위성정당이 아닌 진보정당에 표를 줘야 할 유인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진보정치에 필요한 건 불확실한 선거제도 개혁에 판돈을 거는 일이 아니다. 진보정치의 필요성을 대중에게 설득할 수 있는 자신감을 키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