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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동자는 왜 복직투쟁에 나섰나 : 다큐멘터리 '그림자들의 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2020년 7월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60982&fbclid=IwAR0lEMHNbuwMhjhIHau7FKMWREGHWQFXjP8vhnSYabu1JhB340bF9Ncq6PY
by 강남규 posted Jul 27, 2020 Views 55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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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기억을 남기고, 기억은 감정을 만든다. 더 많은 시간은 더 많은 기억을, 더 많은 기억은 더 많은 감정을 남긴다. 이 감정이라는 것이 복잡미묘하다. 소위 '합리적 이성'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도 어떤 감정적 상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무엇이 되곤 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는 아니다. 사소하게는 헤어진 애인과의 기억이 남아있다는 이유로 특정한 음식을 먹지 않는다든지, 뭐 그런 것들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런 얘기가 남의 얘기가 되면 어쩐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된다. 별다른 동질성이 없어서 감정이입 할 구석조차 없는 남의 얘기라면 더욱 그렇다. 노동자가 그렇다. 국민 대다수가 노동자이지만, 스스로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갖고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을 하는 노동자는 더욱 그렇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10% 남짓밖에 되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대체 왜 대화보다 투쟁을 선택하는지, 왜 일해서 돈을 벌기보다 자꾸만 파업을 벌이며 손해를 보는지, 그냥 다른 직장 알아보면 될 텐데 왜 그렇게 고집스럽게 수십 년간 '복직투쟁'에 매달리는지.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어떤 감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끝까지 모른다. 

<그림자들의 섬>이 보여주는 30년의 감정들
 

이런 사회에서 노동조합 운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어떤 감정을 이해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이다. 책을 읽거나, 인터뷰 기사를 읽거나, 영화를 보는 것이다. 누군가의 이름과 얼굴과 목소리를 알고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는 공감의 범위가 넓어진다.

그것 역시 감정의 효과다. 무정형의 추상화된 어떤 낯선 타자가 아니라 이름과 얼굴이 있고 목소리를 알고 있는 특정한 누군가를 마주한 '기억'이 만들어낸 '감정'.

<그림자들의 섬>(2013)이 바로 그런 다큐멘터리 영화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30년사를 다뤘다. 이야기는 노동조합이 어용이었던 시절부터 시작된다. 질 떨어지는 도시락을 거부하는 투쟁을 조직해 회사가 식당을 만들도록 한 '도시락 거부 투쟁'부터 전환의 단초가 마련되고, 1987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며 조합원 직접 선거로 민주노조 전환을 완성한다.

이어 박창수‧김주익‧곽재규 세 명의 열사에 대한 회상, 노동조합의 조직력이 가장 강했던 시기에 비정규직을 외면했다는 뼈아픈 반성, 정리해고와 희망버스 운동, 복수노조의 탄생과 최강서 열사까지, 끊임없이 투쟁하고 사람이 죽고 실패하거나 성공하고 반목하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노동자들은 점심식사 후 작업화 벗고 돗자리 위에 가만히 누워서 잠시 쉬는 시간이 가장 좋았다고 말한다. 항상 투쟁으로 점철된 30년이었지만, 그들에게도 소중한 일상은 있다. 그리고 그 일상은 공장 안에 있다.

노동자들은 점심식사 후 작업화 벗고 돗자리 위에 가만히 누워서 잠시 쉬는 시간이 가장 좋았다고 말한다. 항상 투쟁으로 점철된 30년이었지만, 그들에게도 소중한 일상은 있다. 그리고 그 일상은 공장 안에 있다.

ⓒ 그림자들의 섬 스틸컷

 


그렇게 30년이다. <그림자들의 섬>은 이 30년에 걸친 이야기를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김진숙‧윤국성‧박성호‧박희찬 등)의 목소리로 풀어낸다. 그들이 가진 '기억'이란 이런 것들이다. 그들은 어용노조를 민주노조로 바꿔내 인간다운 공장을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장에서의 일은 그 자체로 얼마나 위험한지, 하루가 멀다하고 산재로 죽는 사람들을 목격해 왔다.

그들은 1991년 박창수, 2003년 김주익‧곽재규, 2012년 최강서까지 한 사람의 의문사(박창수)와 세 사람의 자살을 목격했다. 그들은 연대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무사안일주의가 어떤 결과로 돌아오는지, 노동조합의 힘이 약할 때 회사가 얼마나 쉽게 말을 뒤집을 수 있는지를 수십 년간 경험해 왔다.

그들의 '감정'은 바로 이러한 30년간의 기억들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쌓이기만 하고 제대로 해소되어 본 적은 없는 감정들이다. 이러한 감정들이 만들어내는 복잡미묘한 장면들이 이 다큐멘터리에는 자주 나온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기억을 공유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장면들이다. 

'또 한 명 깨졌네', 그 말에 담긴 감정

그들은 어째서 그렇게 노동조합을 지키는 일에 매달리는가. 1986년 노동조합 대의원에 출마해 당선됐다가 해고된 뒤 지금까지 복직하지 못한 김진숙씨가 이런 말을 한다. "술 먹으면 세상을 뒤집을 것처럼 떠들면서도 그 다음날 출근하면 그렇게 순한 양이 될 수가 없는 사람들. 그 아저씨들이 변하는 것을 봤잖아요."

어용노조 시절에는 순한 양처럼 다니며 소모품 취급을 당했지만, 민주노조 건설과 함께 투사가 되어 숱한 권리를 쟁취해온 노동자들은 '민주노조'의 귀중함을 DNA에 새겼다. 김진숙씨 역시 그 노동자들이 변하는 과정을 함께했기에, 숱한 당근과 채찍에도 노동조합 깃발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째서 현장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을 내려다보면서 "또 한 명 깨졌네…" 하고 비인간적으로 중얼거리는가. 그러지 않으면 도무지 그다음 날의 업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저 사람의 죽음을 자신의 일처럼 슬퍼하면, 자신도 당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기면, 저 사람이 떨어진 그곳으로 누가 다시 올라갈 수 있겠냐는 얘기다. 

김주익씨는 어째서 타워크레인에 홀로 올라갔고, 또 거기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나. 그의 죽음을 알게 된 곽재규씨는 왜 스스로 몸을 던졌나. 시간이 한참 흐른 뒤, 김진숙씨는 왜 김주익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 타워크레인에 올라갔나. 왜 그는 "129일(김주익씨가 타워크레인에 머문 시간)만 넘기자"고 생각했나.

최강서씨는 왜 박근혜 후보의 당선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나. 복수노조(한진중공업 노동조합)가 설립되고 민주노조(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이 대거 이탈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왜 노동자들은 그들을 원망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가.

<그림자들의 섬>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30년사를 그들이 직접 구술하게 함으로써 그들에게 이름과 얼굴, 그리고 목소리를 부여한다. 그들은 더 이상 낯선 타자가 아니게 되고, 우리는 그들의 감정을 비로소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언뜻 비합리적인 것처럼 보였던 그들의 말과 행동에 모두 맥락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 노동자가 복직투쟁에 나서는 이유

그리고 여기, 새로운 싸움을 준비하는 60세 여성이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용접공. 수많은 남성이 민주노조 하기를 두려워하던 1986년, 겁도 없이 스물다섯의 나이로 노동조합 대의원에 출마하고 심지어 당선된 노동자. 바로 그 때문에 해고된 뒤로도 35년을 끊임없이 싸워온 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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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제신문


47미터 높이의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309일을 농성해 정리해고를 철회시킨 사람. 고공농성 하는 친구를 위해 항암 투병 중인 몸으로 부산에서 대구까지 걸어간 동지, 김진숙. 해고되지 않았다면 올해로 정년인 나이지만 그는 6월 23일 '복직투쟁'을 선언했다.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왜 굳이?" 그의 싸움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투사한 말로 김진숙씨를 조롱하지만, 이제 우리는 안다. 그가 한진중공업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 '돈' 때문은 아닐 것임을. 그의 복직은 35년 전 민주노조를 건설하려던 그의 투쟁이 해고사유가 될 수 없음을 회사로부터 확인받겠다는 것이며, 다시 말해 그의 삶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비록 '지연된 정의'일지라도, 부당하게 해고당한 사람은 반드시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수많은 해고노동자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의지다. 그것이 항암 투병하는 몸을 이끌고 기어이 싸움에 나서는 이유임을 우리는 이제 안다. 

동료 노동자들은 그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 "이번 복직 투쟁은 시대를 개척해 온 한 인간에 대한 예의이며 동지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투쟁입니다."(김재하 민주노총 부산본부장) 그리고 무엇보다 김진숙씨 본인의 말이, 이것이 지난 35년의 맥락 위에 있는 투쟁임을 분명히 한다. 우리는 그의 말에 서린 감정을 이해해야만 하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35년 동안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던 복직의 꿈. 그 꿈을 이룰 마지막 시간 앞에 섰습니다. 나는 다시 전선으로 갑니다. 내가 돌아갈 곳. 박창수 위원장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조합원들의 곁으로 가기 위해. 김주익 지회장이 그토록 내려오고 싶어 했던 현장으로 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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