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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을지로 일대 생산 네트워크는 어떻게 작동하고 있을까? : 소량 생산에 특화된 ‘거대한 공장’의 은밀한 비밀

이 글은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가 오마이뉴스에 기획연재하고 있는 특집 [세운 재개발, 무너지는 도시생태]에 열 번째 글 <청계천에 오면 못 만드는게 없는 이유: 소량 생산에 특화된 ‘거대한 공장’>이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http://omn.kr/1mfnj
by 최혁규 posted Feb 04, 2020 Views 41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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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과 을지로 일대 상공업의 특징은 고숙련된 기술 공정 간 서로 연계하는 협업적 생산 방식이다. 이는 한정된 기계 조건 속에서 다양한 제품 주문에 대응하면서 축적된 숙련기술과, 분업화된 공정들 간 오랜 기간 동안 거래하면서 형성된 협업 관계로 조직된 생산 체계다. 또한 자원 조달과 정보 접근에 편리한 도심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은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의 생산 네트워크가 외부의 다양한 거래업체들 혹은 이용자들과 활발하게 연결되고 확장될 수 있는 핵심적인 이유 중에 하나다. “청계천에 오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말은 실체가 없는 철 지난 소문이 아니라, 바로 이와 같은 특징을 기반으로 제조 수요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는 청계천의 생산 방식에 근거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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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에서 도시재생으로 전환했음에도 불구하고 들이닥친 철거

대략 반 세기 동안 도시계획가와 행정가들은 이 일대를 어떻게든 개발하고자 염원했다. 60년대에는 청계천 인근의 판자촌 주민들을 전부 강제로 밀어내고 당시로는 최신식 주상복합 건물인 세운상가를 짓더니, 70-80년대에 들어서면서 강남이 개발되고 세운상가의 인기가 시들어지자, “더러운 흉물”이라는 수식어 등을 붙이면서 이 일대를 도심 내 낙후한 산업 지역이자 재정비가 필요한 지역이라고 보고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했다. 이후 2000년대에 들어 개발 이윤을 노리면서 시 주도로 청계천 복원사업과 뉴타운 사업을 시도하지만, 지역의 가치를 살리는 방식의 진정한 복원에 실패하거나 사업 자체가 좌절되었다.

그래도 제조업 혁신과 레트로 문화가 시대적 흐름으로 주목받으면서 청계천과 을지로 지역은 새로운 창조와 활력의 공간으로 재조명되었고, 이때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무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서울시와 중구는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하고자 했고, 2016년 서울시는 재개발의 문제점들을 보완하고 이러한 지역의 흐름을 지원하기 위해 “도심창의제조산업 활성화”를 목표로 하는 세운상가 도시재생 사업을 선포했다. 하지만 여전히 개발주의 시대의 관행을 버리지 못하고 세운상가를 제외한 청계천·을지로 일대의 다른 구역들을 밀어버리고 돈 되는 높은 건물들을 세우고 싶어 했다. 그것도 큰 이슈가 안 될 수 있고 반발이 적을 수밖에 없는 분리개발방식이라는 세련된 방식을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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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잠시 주춤하고 있었던 세운재정비촉진사업이 시작되었다. 2018년 12월 입정동 정밀지구의 일부인 세운3-1,4,5구역에서 갑작스레 철거가 진행되었고, 이 과정에서 많은 상공인들이 청계천과 을지로 바깥으로 작업장을 이전하거나 폐업했다. 이렇게 시작된 재개발 사업은 청계천·을지로의 생산 네트워크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던 상공인들을 떠나게 하면서 이 지역의 고유한 산업문화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남은 상공인들은 자신들에게도 곧 닥칠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불안에 떨고 있다.

이는 재개발에서 도시재생으로 기조를 전환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래전부터 도심 개발을 욕망했던 자들의 연합과 부동산을 둘러싼 이해관계들, 도시정책을 둘러싼 법제도 및 행정체계들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지역의 건축물들과 기반시설들이 낡았고 낙후되었다고 주장해왔다. 항공사진으로만 본다면, 혹은 삼일고가도로나 세운상가 위에서 이 지역을 내려다본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허름한 천막과 슬레이트 지붕 아래에서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만으로는 알 수 없는 엄청난 생산활동이 벌어지고 있다.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 상공업 지역은 역사적 가치만 있는 과거의 장소가 아니라, 생산적인 산업활동과 다양한 문화적 실천이 역동하며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 공간이다. 이는 지도나 건물 위에서 내려다보는 방식이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사람들 그리고 사건들과 마주쳐봐야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소량 생산에 특화된 ‘거대한 공장’, 협업체계와 숙련기술 기반의 생산 네트워크

 

평일 오전과 오후에 청계천·을지로 일대의 동네들은 매우 분주하다. 입정동, 수표동, 장사동, 산림동, 인현동 일대의 큰 길가와 골목을 거닐다 보면 물류 상하차를 하는 트럭들이 곳곳에 서 있고, 그 사이로 물건을 실은 오토바이가 요리조리 지나다닌다. 그리고 리어카나 구르마를 끌고서 짐을 옮기고 있는 상인들을 볼 수 있으며, 자전거를 타고 자신과 협업하는 업체들을 방문하고 다니는 기술자들도 볼 수 있다. 해가 지면 대부분의 업체가 문을 닫아 칠흑 같은 어둠의 도시가 되지만, 납품 기한을 맞추기 위해 혹은 급하게 주문을 맡긴 손님을 위해 잔업을 하느라 밤늦게까지 일하고 있는 공장들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과 기계 소리가 골목골목을 채운다.

여기가 이렇게 분주하게 돌아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여기 소규모 공장들의 운영 방식이 다품종 소량 생산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정해진 품목을 계속 생산한 다음 재고를 쌓아놓고서 판매하는 방식이 아니라, 고객이 물건을 의뢰하면 그때 제작해서 납품하는 주문제작방식이다. 대부분의 대기업 혹은 중소기업 공장들은 자동화된 기계를 사용해 정해진 몇몇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소량의 물건을 제조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소량 생산은 투입된 비용 대비 이윤을 창출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사업체는 소량 생산이라는 모험을 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는 1-3명 정도의 소규모 공장이 밀집해 서로 자원과 정보를 교류하고 협력하고 있기 때문에. 단 한 개를 생산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여러 실험을 하는 공공 및 대기업 연구소들과 실험실들, 시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업체들, 전시와 촬영 물품이 필요한 박물관이나 방송국 같은 문화기관들,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들이나 발명가들이 이 지역의 주요 고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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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주문제작방식이라 하면 제조 가능한 품목의 목록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기 마련인데,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 도시제조업 지역은 도면만 있으면 무엇이든 만든다. 도면 한 장만 들고 와서 의뢰해도 대부분 거절하는 법 없이 그 주문을 받아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준다. 그 이유는 소규모 공장들끼리 거래하면서 만들어진 긴밀한 협업 관계가 중첩되고 켜켜이 쌓이면서 촘촘하게 짜여진 그물망 같은 생산 네트워크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가 보유한 기술지식과 기계로는 만들 수 없는 물건이 주문 들어오더라도, 이러한 기술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다른 업체들과 협력해서 물건을 만들어낸다. 이게 바로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에서 업체를 운영하는 기술자와 상인들 모두 입을 모아 이곳을 일종의 ‘거대한 공장’이라고 부르고, “청계천에 오면 못 만드는 게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소규모 공장을 운영하는 기술자들은 특정 제품을 파는 상인이 아니라, 자신의 담당하고 있는 공정과 그 공정의 전문적인 기술지식을 파는 상인이다. 대부분이 10대 중반의 어린 나이에 공장에 취직해 50-60대가 될 때까지 일하면서 기술을 숙련화했다. 또한 공장 규모가 작다 보니 기계 조건은 한정되어 있는데 다양한 제작 의뢰를 소화해야 하니 여러 방식으로 기술을 응용하는 능력 또한 축적되었다. 이렇게 쌓인 기술력은 산업현장과 무관한 책상이나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현장에서 수 많은 제품들을 만들어보고 수리해보고 망치기도 하면서 손과 몸으로 체득한 현장의 기술지식이다. 그러다 보니 이들이 가진 기술지식은 교과서나 매뉴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소중한 산업적·기술적·문화적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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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켜내야 하는 공동의 자산

 

이렇듯 청계천·을지로 일대의 생산 네트워크는 기술자들의 생산활동과 이용자들의 주문 행위가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진 공동의 자산(commons)이다. 이는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다. 이 일대의 공장들은 각자 차별화된 전문적인 숙련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즉 공장들 간 철저하게 분업화되어 있기 때문에, 업체 간 경쟁보다는 서로 간 거래를 통해 협력하려 한다. 동시에 오랜 세월 동안 거래를 해오면서 서로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고, 이렇게 서로 특화된 분야에 대한 인식과 그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지속적인 협업이 이루어진다. 이곳을 계속 찾는 이용자들도 마찬가지다. 협력은 언제나 서로의 능력을 파악하고 있고 이를 신뢰하고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신속한 협업 체계는 자원과 정보 접근성과 높은 도심에 밀집해 있다는 지리적 조건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청계천·을지로 일대의 특수한 생산 방식은 이러한 조건들을 토대로 작동한다.

만약 재개발을 위해 상공인들을 기계적으로 이주시키는 방식의 대안이 진행된다면, 그러니까 이 생산 네트워크가 자원과 정보 접근성이 높은 도심에서 멀리 벗어나게 된다면, 오랫동안 축적된 협업 체계와 신뢰 관계 그리고 숙련기술과 기술지식 등을 모두 잃게 된다. 무엇보다 소량 생산을 담당하던 청계천·을지로 일대의 공장들이 사라지면, 그동안 이곳을 이용하던 연구소, 실험실, 스타트업, 문화기관, 예술가, 발명가 등의 업무가 마비될 가능성이 높다. 재개발로 인해 이 공동의 자산이 파괴된다면, 이곳을 이용하는 자들만 피해를 받는 게 아니라, 우리의 경제와 문화에도 큰 손실이다. 우리는 어쩌면 개발주의라는 주술에 걸려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Who's 최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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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회연구소와 청계천기술문화연구실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화이론과 미디어이론 그리고 과학기술학을 공부했고, 기술사와 영상문화,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현재 동료들과 청계천·을지로 일대 기술자들의 기술-지식의 역사와 현재를 조사하면서 재개발 반대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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