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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커 운동’으로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 제작문화를 둘러싼 담론적 지형을 다시 살피며

이 글은 크리킨디센터 전환교육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삶의 기술, 일곱 번째: 만드는 사람들>(2019년 12월 발행)에 실렸습니다. https://krkd.eco/life_skills/1754
by 최혁규 posted Feb 03, 2020 Views 519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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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메이커 운동이 소개된 지도 어언 7년 정도가 지났고, 초기의 거품은 어느 정도 걷힌 것 같다. 한때 어떤 이들은 메이커 운동이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메시아인 양 떠들어 댔다. 경제 위기와 극복의 내러티브에서 기술 혁신은 위기를 뛰어넘어 우리를 장밋빛 미래로 데려다 줄 구원 투수로 제시되곤 하는데, 2016년 세계경제포럼에서 ‘4차 산업 혁명’이라는 말이 화두로 던져지자마자 모두가 이 말의 뜻을 해석하고 실천 방안을 내놓기 위해 머리를 싸맸다. 그때 메이커 운동이 새로운 산업 혁명을 대비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제시됐고, 메이커 운동에 대한 말들도 산더미처럼 늘어나며 실체보다는 의미와 해석만 무성해지기 시작했다.

 

일종의 담론 과잉 현상이었고, 풍요 속의 빈곤이었다. 메이커가 되기 위한 실용적인 방안들이 앞다투어 제시되었고, 메이커 운동을 창업과 관련지은 각종 보고서와 논문들, 정책과 교육 사업들, 심지어 자격증까지 만들어졌다. 메이커 교육에서 해커 운동 본연의 정신이 중요하다고 말하거나, 창업 중심의 메이커 운동을 비판하면서 직접 만들어 보는 문화부터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메이커에 대한 담론은 점점 무성해져 갔지만, 그 와중에 정말 중요한 담론은 많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다.


이제 메이커 운동이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해 줄 것처럼 떠들던 사람들도 조용해졌으니, 흥분을 가라앉히고 메이커 운동을 둘러싼 여러 쟁점들에 대해 차분하게 다시 물을 수 있을 테다. 사람들은 왜 어떻게 이것에 열광하게 되었을까? 대체 메이커 운동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대단한 것처럼 이야기할까? 메이커 운동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어찌 보면 처음부터 메이커 운동은 해결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질문거리였는지도 모른다.

 

 

열광 이후, 이제 남은 자들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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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미국에서의 메이커 운동을 소개하는 슬라이드 중 일부.
출처 : slide share 〈What is the maker movement?〉(Oct 5, 2016)

 

많은 사람들이 메이커 운동에 열광했던 이유는 사실은 새로울 것 없었던 기술들을 문화적 흐름으로 포장해서 여러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가령 3D 프린팅 기술은 이미 1980년대에 개발되었다. 하지만 사용할 수 있는 소재가 다양해지고 주요 특허가 만료되면서 오픈 소스화되어 대중적으로 보급될 수 있는 문이 열렸다. 아두이노나 라즈베리파이 같은 마이크로컨트롤러 같은 경우는 새로운 기술이라기보다는 프로그래밍을 쉽게 배우기 위해 교육용으로 모듈화해서 개발된 초소형 컴퓨터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메이커 운동에 이끌렸던 것은 기술 혁신 그 자체는 분명 아니다. 오히려 기술에 대한 접근성과 활용성이 높아진 조건에서, 놀이적 관점에서 기술을 이용하고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온오프라인 교류 공간을 제공했고, 이들에게 ‘메이커’라는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정체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런 데다 메이커가 되면 경제적인 이득도 볼 수 있다는 일종의 창업 신화를 만들어 내면서 이 놀이가 경제적 가능성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 주기도 했다.

 

이러한 열광도 잠시, 메이커 운동에 대한 관심은 가라앉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줄어든 측면도 있지만, 메이커 운동의 상징이었던 미국의 메이커 관련 기업이 파산한 것도 한몫한 듯하다. 올해 중순, 미국에서 메이커 운동을 출발시킨 데일 도허티가 이끌던 ‘메이커 미디어’가 파산 절차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앞서, 2017년 말에는 《메이커 운동 선언》의 저자로 이름이 알려진 마크 해치가 창립한 제작 공유 공간maker space ‘테크샵TechShop’이 문을 닫았다. 이는 메이커 운동에 참여하거나 관심을 갖던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어떤 이들은 예상했던 결과라고 말하며 별일 아니라는 듯이 받아들였다. 아마도 메이커 관련 행사나 온오프라인 공간 운영의 사업성을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따라 사건을 받아들이는 온도가 달랐을 것이다.


그 사이 메이커 운동을 비즈니스 모델로 삼아 한탕 하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장사치들은 할 수 있는 한 메이커 운동을 팔아먹고 어딘가로 사라졌고, 4차 산업 혁명과 메이커 운동 운운하면서 메이커 교육을 외치던 이들은 목소리가 점차 줄어들었다. 이제는 초기의 메이커 관련 사업과 활동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던 수용기를 지나, 메이커 운동을 무언가 의미 있는 문화적 현상으로 연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남아 나름의 고민을 이어 가는 중이다. 그 것이 신자유주의 시대 기업가적 주체를 만들기 위해서이든,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이끌어 갈 창의 융합 인재를 만들기 위해서든, 디지털 기술로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 혁신가를 길러 내기 위해서든, 기술 공포를 극복하고 능동적으로 기술을 이용할 수 있는 감각을 길러 주기 위해서든, 자기 욕구를 투영해 나름의 방식대로 메이커 운동을 정의하면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위기는 일종의 기회라고, 이제는 남은 자들의 시간이다.

 

 

메이커 운동, 제작문화의 상품화

 

메이커 운동의 짧은 역사를 다뤄 보자. ‘메이커 운동’을 ‘운동movement’이라고 받아들이면 그 사회적 가치의 측면에 주목하다 디른 측면들을 놓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메이커 운동을 하나의 ‘상품’으로 간주한다면, 상황을 조금 더 명쾌하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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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메이커 운동의 타임라인 (출처 : pinterest)

 

미국의 메이커 운동은 2000년대 중반 일정한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태동한 상품명이다. 갑자기 새롭게 등장한 사회 문화적 흐름이 아니라, 해킹, DIY, 차고문화 등의 하위문화 형태로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며, 예술이나 엔지니어링 계열의 전공생들이 학교 제작소에서 실습하던 활동이었다. 그 와중에 몇몇 기술적 변화들이 기존의 생산 방식과는 다른 가능성을 보이자, 영리한 학계와 미디어 기업은 이러한 흐름을 끄집어 내고 각종 화려한 수식어를 붙이면서 사업 아이템으로 상품화했다. 메이커 운동의 대표적인 사업인 ‘메이커 페어Maker Faire’와 《메이크:》 잡지를 만든 데일 도허티는 메이커를 “기술을 단순히 소비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술을 필요에 맞게 변형해 삶의 일부로 만드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며 메이커 운동의 시작을 알렸다. 메이커 운동도 오라일리 미디어O’reilly Media에서 런칭한 브랜드이듯, 팹랩Fab Lab, Fabrication Lab도 마찬가지다. MIT의 닐 거센펠트는 팹랩 활동을 “책상 위에 다가올 혁명”으로 정의하며 팹랩 운동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들은 제작문화를 개인 제조personal fabrication 혹은 탁상 제조desktop fabrication[1]라고 지칭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이러한 흐름을 몇몇 기업가나 경영자들이 받아 자신의 사업 전략과 자기 개발담론으로 제시했다. 롱테일 경제학의 주창자 크리스 앤더슨은 《메이커스》에서 “발명가가 곧 기업가가 되는 시대”라고 천명했으며, 마크 해치는 《메이커 운동 선언》을 통해 메이커 운동을 “스스로 필요한 것을 만드는 사람들이 만드는 법을 공유하고 발전시키는 흐름”으로 정의했다. “만들라, 나눠라, 줘라, 배워라, 도구를 갖춰라, 즐겁게 만들라, 참여하라, 후원하라, 변화하라”라는 메이커 십계명을 제시하면서, 모두 메이커 운동에 참여하여 “산업 혁명을 이룰 창의적 메이커 군대”가 될 것을 촉구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뭔가 만들어 내는 메이커 운동이 확산되는 장면을 보고 오바마 대통령이 ‘메이드 인 아메리카’가 될 것이라고 외친 일도 이러한 흐름 속에 있다. 이러한 흐름은 메이커 운동의 경제적 가능성을 강조하면서, 메이커 운동을 쇠퇴한 제조업을 다시 일으킬 신성장 동력으로 의미화한다.

 

 

메이커 운동 담론의 수용, 욕망에 따른 다양한 충돌과 분화

 

국내 메이커 운동의 수용과 분화를 명확하게 서술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큰 맥락들을 서술할 수는 있을 것이다. 대개 《메이크:》, ‘메이커 페어’, 제작 공간maker space 이 세 요소를 메이커 운동의 필수 조건으로 상정하고 있는데,[2] 국내에도 이런 것들이 생겨나면서 메이커 운동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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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 《메이크:》 한국판 창간호 표지(위 좌)

미래창조과학부의 메이커운동 홍보 웹툰(위 우)

메이커 100만 양성 보도 뉴스 자료(아래)

 

메이커 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은 초기 제작 문화 활동에는 미디어 아트나 시각 디자인 작업을 하던 작가군과 온라인 기반의 개발 커뮤니티들이 선두적인 역할을 했다. 2010년 초기 미디어 아트 작가들이 모여 만든 ‘해커스페이스서울’, 대전에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무규칙이종결합공작터 용도변경’, DIY 커뮤니티인 ‘땡땡이공작’이 만든 ‘릴리쿰’ 등의 제작 공간들이 생겼고, 기술놀이를 중심으로 여러 워크숍들을 진행하는 ‘청개구리제작소’ 같은 팀들이 여러 제작 활동을 하면서 메이커 문화를 소개하기 시작했으며, 온라인 커뮤니티인 ‘라즈베리파이&임베디드사용자모임’이나 ‘오로카(오픈 소스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로 만들어 가는 로봇 기술 공유 카페)’ 등의 모임들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그룹들 중 일부는 문화운동이나 사회운동의 차원에서 미술공예운동이나 해커 운동과 같은 기원을 참조하면서 비판적인 제작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 메이커 운동을 전유한다.


유사한 시기에 IT 관련 전문 출판업체 한빛미디어는 《메이크:》를 발간하고 ‘메이크 페어’를 개최하면서 이러한 문화가 확산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했다. 한빛미디어는 1997년부터 오라일리 미디어와 업무 협약을 맺은 출판사로 ‘메이커 운동’에 대해 오라일리 미디어와 브랜드 라이센스 계약을 하고 2011년부터 이 사업을 준비했다.[3] 한빛미디어는 2012년 데일 도허티를 초청하면서 제1회 메이크 페어를 개최했고, 잡지 《메이크:》 한국어판을 발행했다. 그리고 각종 메이커 매뉴얼과 부품 사전 등 제작 활동과 관련된 서적들을 출간하면서 메이커 운동에 관련된 정보들을 지속적으로 소개했다. 이러한 책들은 한편으로는 제작활동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실용서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메이커 운동에 대한 여러 담론과 활동들이 확산되는 계기를 제공하면서 문화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가장 영향력이 강한 중앙 정부의 움직임이다. 중앙 정부는 메이커 운동을 신성장 동력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고 메이커 창업 정책을 전개했다. 최초의 우주인으로 유명세를 얻은 고산은 2012년 세운상가에 ‘팹랩 서울’을 출범시켰는데, 정부와의 협업 관계 속에서 ‘시제품제작터’와 ‘셀프제작소’라는 제작 공간이자 창업 공간 운영을 위탁받으면서 창업 운동을 본격화했다. 메이커 운동에 대한 주요 정책 연구 용역을 맡았던 매직에코의 최재규 대표는 메이커 운동을 수용하여 ‘ICT DIY 포럼’이라는 이름의 기구를 만들었으나, 크리스 앤더슨의 방한과 함께 ‘메이커 운동’이라는 명칭이 확산되면서 힘이 기울었다. 이후 미래창조과학부와 그 산하의 한국과학창의재단은 메이커 운동을 “창조경제의 문화적 뿌리”로 정의하고 “100만 메이커 양성”을 정책 목표로 제시하기까지 한다. 스스로 “창업 운동가”로 지칭한 고산은 자신이 대표로 있는 타이드인스티튜드라는 기업을 통해 창조경제센터 내 메이커스페이스 개소에 관여하고 이 사업장들을 위탁받으면서 메이커 운동을 통해 창업 붐을 일으키고자 고군분투한다. 최근에는 중앙 정부가 메이커 운동 사업 담당을 중소기업벤처부로 이관하면서 창업 정책으로서의 성격을 확실히 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어떤 메이커들은 정부 지원을 통해 활동을 시작하거나 존속하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은 창업 중심의 정부 정책 방향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2016년 이후 ‘4차 산업 혁명’의 바람이 강하게 불어오기 시작하며 메이커 운동은 “4차 산업 혁명의 핵심”인 동시에 4차 산업 혁명을 대비하기 위한 교육 방법으로 급격하게 부상했다. 기존에도 한국과학창의재단은 STEAM 교육으로서 메이커 교육을 실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4차 산업 혁명 담론이 유입된 뒤,
교육 제도 안에서도 메이커 교육이 창의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으로 주목받고 수용되기 시작한다. 16
서울시교육청은 미래 사회를 대비하기 위한 교육으로 메이커 운동에 주목해 ‘서울형 메이커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선포하고, 여러 메이커 교육 기관들과 연계하여 인프라를 구축한다. 다른 교육청들도 메이커 교육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며 메이커 교육이 주요한 교육 방법이 된다. 이 과정에서 충남교육청은 메이커 교육의 한국어 이름 공모를 통해 ‘상상이룸교육’이라는 이름을 채택하기도 한다. 나름대로 메이커 교육을 토착화시키기 위한 노력이라 봐야 할까? 더 지켜봐야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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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4> 서울시교육청이 추진하는 ‘서울형 메이커 교육’(좌)

충남교육청은 공모를 통해 정한 메이커 교육의 한국어명 ‘상상이룸교육’(와)

 

일각에서는 사회 혁신이나 리빙랩의 관점에서 메이커 운동을 의미화하고 실행하려 했다. 혁신 정책을 펼치려 했던 서울시가 이에 해당한다. 서울시는 혁신파크 내에 ‘메이커파크’를 설치하고 리빙랩 사업을 실행하는 등 메이커 운동과 연계된 여러 기반 시설과 사업들을 마련했다. 주로 도시 문제나 사회 문제 해결 혹은 적정기술운동에 일조할 수 있는 활동으로 메이커 운동을 이끌어 가기 위한 프로그램들이었고, 이러한 서울시의 행보는 창업 지원을 중심에 둔 중앙 정부의 메이커 정책과는 상이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은 서울시 도시재생 정책 차원에서 세운상가를 ‘메이커시티’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나, 혁신 정책의 맥락에서 ‘팹시티’에 대한 담론적 장을 만드는 사업도 같은 틀로 바라볼 수 있다. 서울시는 확실히 경제적 측면보단 사회 문화적 차원에 더 집중했다.


이렇게 메이커 운동은 특정한 시기에 해당 주체들의 욕구와 욕망에 따라 특정한 의미가 강조되면서 수용되고 분화되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단 하나의 메이커 운동이 존재한다기보다는 제작문화의 역사와 다양한 의미들이 메이커 운동을 통해 재구성되고 새롭게 생성되면서 서로 공존하고 있다.

 

 

제작, 너무나 정치적인 행위

 

모든 것이 정치적이다.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 보는 경험, 즉 분해·조립·수리·설계·제작도 정치적인 행위이다. 메이커 운동으로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 묻는다면, 어쩌면 이 행위에 대한 독해와 자각이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가장 건조하게 기술한다면, 메이커를 다음과 같이 정의해 볼 수 있다. ‘기술의 지배적인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는 수동적인 주체가 아니라, 기술적 대상을 분해·조립·수리·설계·제작하는 능동적인 기술 이용자이자 창의적인 기술 주체.’ 그렇다고 이 능동적인 기술 주체가 그 자체로 어떤 가치를 포함한다고 보긴 어렵다. 왜냐하면 이 주체가 기존의 기술-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고 견고하게 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기술을 사용할지, 체제에 저항적인 방식으로 기술을 활용할지 그 현실적 향방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메이커 운동이 모듈화된 디바이스에 오픈 소스와 놀이 문화를 접목하여 기술이용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진입 장벽을 낮췄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담론들은 디지털 기술과 같은 하이 테크놀로지와 창업 성공담 중심으로 편향되어 있는 측면이 있다. 그러다 보니 메이커 운동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기술 엘리트주의, 기술의 젠더 편향성 그리고 로우 테크놀로지와의 연속성과 같은 문제들을 다룰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다. 물론 새로운 시도를 통해 이러한 흐름을 깨려는 여러 힘들이 존재하지만, 메이커 운동을 둘러싼 담론과 실천들은 여전히 기존의 통념과 체제가 재생산되는 식으로 돌아가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메이커 교육이 창의성을 길러 내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 는 부족하다.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가진 시민적 주체를 양성하고자 했던 문화교육의 이념을 다시금 떠올려보는 것도 꽤 유용할 듯싶다. 기술 시대에 창의적인 일을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목표 이상으로 더 상상력을 확장시킬 필요도 있다. 메이커 운동은 어떤 시민성을 겨냥하는가?


“스스로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어 쓴다”라는 메이커 운동의 DIY 정신은, 그리고 이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DIY 시민성은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시민이라는 긍정적 의미를 획득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으로 발생한 여러 문제들과 위험들을 자기 스스로 책임지고 감내해야 하는 신자유주의적 주체를 뜻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정부나 기업이 책임져야 할 일을 개인에게 외주화하고 있는 상황을 정당화해 주는 기제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창의적인, 스스로 직접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는 DIY 시민성도 쉽게 긍정하기 어렵다.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기술 주권 그리고 기술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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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5> 메이커 운동은 우리에게 던진 기술 주권과 기술 민주주의에 대한 질문
(출처 : University of Cambridge www.techdem.crassh.cam.ac.uk)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필연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으며, 담론은 사회적으로 유포되고 현실적으로 구현되면서 문화 정치적 효과를 수반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메이커 문화와 운동을 수용하면서 만들기, 자작, 수리, 제작 등 충분히 일반 명사로 이야기할 수 있음에도 “메이킹” 혹은 “메이크”라는 말을 고수했다. 이는 다른 언어로 번역할 수 없어서 발생한 문제라기보다는 고유한 브랜드명을 사용해야 하는 라이센스의 문제로 보아야 이해하기가 수월하다. 물론 이 운동을 강조하기 위해서 ‘만들기’라는 일반 명사와는 차별점을 둬야 했다는 구별 짓기의 측면도 있을 테다.


이러한 구별 짓기 때문에 우리는 메이커 운동을 연속보다는 단절을 통해 새로운 무언가로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메이커 교육도 메이커시티도 마찬가지다. 메이커 교육이 주장하는 핵심적인 교육 철학인 ‘만들기를 통한 학습learning by making’은 이미 오랫동안 진보주의 교육에서 주장했던 ‘실천을 통한 학습learning by doing’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다만 4차 산업 혁명이라는 담론의 현실적 효과에 대응해 조금 더 세련되고 그럴싸해 보이는 방식으로 자기 정당화를 했을 뿐이다. 메이커시티 혹은 팹시티 또한 이미 도시 제조업이라는 용어로 도시 내에서 적합한 형태의 제조업에 대해 논의가 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논의와 문제의식을 이어 받기보다는 도시를 구성하는 새로운 원리인 양 디지털 제작을 앞세웠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 주권이나 기술 민주주의와 같은 기술-정치의 메시지들이 메이커 운동에서는 빠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술의 발명과 개발에 개입하고 통제할 수 있는 민주적 권리, 결정되는 기술을 이용하는 것만이 아니라 기술의 생산과 유통과 소비에 참여하면서 기술의 방향을 민주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권리 등을 시민들이 가지는 것을 상상하는 게 아직도 요원한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를 메이커 운동과 함께 사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분명한 점은 메이커 운동이 기술, 제작, 제조, 생산이라는 말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는 것이다. 개인 단위에서, 소규모 공동체 수준에서, 사회-국가적 차원에서 이러한 질문들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 메이커 운동은 우리에게 해답을 주었다기보다는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질문들을 던져 준 셈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기술과 제작이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우리는 제작 기술을 통해 어떻게 세계를 마주해야 하는지, 오늘날의 생산 활동은 어디로 가는 건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해 보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Notes

  1. 기존의 제조가 기계 설비를 둘 수 있는 규모 있는 공장에서만 가능했다면, 이제는 책상 위에서 컴퓨터와 소형화된
    공작 기계와 3D 프린터 등을 통해 혼자서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개인 제조 혹은 탁상 제조라는 표현을 쓴다.
  2. 메이커 운동을 설명할 때 이 세 가지 요소를 기본적인 조건으로 상정한다. 《메이크:》는 메이커들이 서로의 만드는
    법을 공유하는 잡지의 이름이고, ‘메이커 페어’는 메이커들이 서로 만든 제작물들을 가지고 나와 전시하는 메이커들의 축제이다. 그리고 ‘제작 공간’은 제작을 위한 여러 장비와 도구들이 구비되어 있는 공유 공간을 뜻한다. 《메이크:》와 ‘메이커 페어’는 일종의 고유 명사로 메이커 미디어가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는 잡지와 행사 이름이기도 하다.
  3. 오라일리 미디어는 컴퓨터 기술 서적을 출판하는 미국의 미디어 기업이다. 데일 도허티가 이 출판사에서 《메이크:》를 창간했고, 이후 2013년 ‘메이커 미디어’를 창립하여 독립했다. 또한 한빛미디어는 2017년 말 《메이크:》와 메이크 페어의 라이센스를 종료했고, 이후 2018년 디지털 전문 미디어 기업인 ‘블로터앤미디어’가 메이커 미디어와 독점 라이센스 계약을 맺으면서 메이커 페어를 진행하고 있다.

Who's 최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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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회연구소와 청계천기술문화연구실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화이론과 미디어이론 그리고 과학기술학을 공부했고, 기술사와 영상문화,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현재 동료들과 청계천·을지로 일대 기술자들의 기술-지식의 역사와 현재를 조사하면서 재개발 반대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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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공장’의 노동자들은 어쩌다 ‘교체’됐을까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아메리칸 팩토리(American Factory)

    이런 가정을 해보자. 당신이 10년간 잘 다니던 회사가 있다. 야근도 별로 없고 나름대로 노동문화가 잘 잡힌 모범 직장이다. 하지만 어느 날 지속적인 경영악화로 사장이 홀라당 도망가고, 회사는 공중분해 위기에 처...
    Date2019.12.09 Category에세이 By강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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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심 이슈로 보는 미디어와 젠더 - 김성윤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운영위원이 참여한 책이 나왔습니다. 미디어와 관련된 우리 사회의 젠더 문제를 핵심 이슈별로 살펴보고 있는 미디어 분야 교재이다. 다양한 학술 및 저술 활동을 통해 미디어와 젠더의 관계를...
    Date2019.11.08 Category By문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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