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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문화사회연구소

플랫폼, 또는 본격 신자유주의

『플랫폼 레볼루션』이란 책에 대한 서평입니다. 책 자체에 대한 내재적 접근보다는 이 책을 핑계로ㅎ 최근 플랫폼 현상의 사회경제학적 원리와 정치경제학적 효과에 대해 논평을 해봤습니다. ≪IDI 도시연구≫ 12호(2017년 12월)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by 김성윤 posted Dec 18, 2017 Views 479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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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 앨스타인, 마셜 외. 2017. 이현경 역. 『플랫폼 레볼루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지배할 플랫폼 비즈니스의 모든 것』. 부키.

 

 

『플랫폼 레볼루션』의 저자들은 혹세무민하는 얕은 수준의 지적 사기를 치거나 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레볼루션’이란 말을 남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은 지울 수 없다. 혁명이라면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생산력과 생산관계를 동반해야 할 텐데, 이 책에서 전망하는 레볼루션이 그 정도로 대단해보이진 않기 때문이다. 한걸음 양보하더라도 자본축적체제의 변화 같은 것조차 감지되지 않는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포드주의 축적 체제에서 린 생산 등으로 대변되는 유연적 축적 체제로의 변화를 겪어왔는데, 이른바 ‘플랫폼 자본주의’에서 그와 같은 수준의 대대적 변화를 관찰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유연적 축적의 극대화라 볼 증거들이 넘쳐날 뿐이어서, 플랫폼의 등장은 질적인 변화라기보다는 그동안 있어왔던 변화들의 종합적·누적적 효과 정도로 이해될 따름이다.


그렇다고 해서 변하는 게 아무 것도 없다면서 가볍게 넘길 사안은 아니다. 어찌됐든 기업의 생존 가능성은 점점 더 플랫폼 도입 여부에 의해 갈리고 있고, 이로 인해 거의 모든 산업 부문들이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있기 때문이다. 테드(TED)를 통한 평생 교육, 원격 진료로 이뤄지는 의료 서비스, 체계적으로 분산 관리되는 에너지, 빅데이터에 기반한 대출과 보험, 알고리즘으로 자동 설계되는 물류, 프리랜서로 맺어지는 노동 및 전문서비스, 오픈 데이터를 통한 공공서비스, …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12장).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읽어내야 할까. 어떻게 하면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실패 가능성을 줄이고 성공할 것인지(5~10장)를 궁리해야 할까, 아니면 이 책이 소개하는 플랫폼의 진면목(1~4장)으로부터 새로운 사유를 도출해야 할까. 그동안 여러 지면에서 충분히 다뤄 온 이야기를 굳이 되풀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필자는 후자의 질문으로 ‘플랫폼 레볼루션’에 대해 논평을 던져보고자 한다.

 


위기의 돌파구

 

플랫폼은 현행하는 자본주의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신성장동력을 모색하기 위해 사회적 경제라든가 4차산업혁명 같은 표어들도 있어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과 달리 플랫폼 모델은 실제 비즈니스 환경으로부터 나온 객관적 관찰의 결과물이고, 무엇보다도 주류 경제학이 꽤 오랫동안 골머리를 썩여왔던 문제들을 대거 해소시켜준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축적 위기를 돌파해 이윤을 극대화하면서도 동시에 외부불경제(external economy), 즉 경제 활동으로 인해 외부에 끼치는 부정적 효과를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관련이 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저자들(특히 앨스타인)이 근거하고 있는 정보경제학의 논의를 잠시 참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2001년 조지 애컬로프, 마이클 스펜스,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이래로 (신)고전파 경제학에서 신봉하던 완전경쟁시장 가설은 공식적으로 기각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동등한 정보를 가진 경제행위자들 사이에서의 교환이란 말 그대로 가설, 즉 유토피아에 불과하며 현실에서의 경제학적 교환이란 언제나 정보의 비대칭성을 전제로 해서만 이뤄진다는 사실이 공인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반응은 둘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시장경제는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므로 대안 경제를 모색하거나, 이념적 시장을 현실화하기 위해 비대칭 관계를 바로 잡아 균형을 창출하는 것이다. 물론 대다수 사람들은 후자의 선택을 선호한다.


비대칭 관계를 바로 잡아 역선택이나 도덕적 해이 같은 부작용을 방지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이를테면 과세 및 보조금 등 규제를 도입하거나, 내부고발과 연좌제로 비리를 방지하거나, 효율 임금을 부가해 노동자의 태만을 줄이고 책임감과 충성심을 확보하는 선택들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대책은 상당수 사회적 자유주의자들에게는 환영할 만한 일이 된다. 저자들이 플랫폼의 “부정적 외부효과”(375~376쪽)와 더불어 “플랫폼 기업을 규제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정확히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를 정하는 일”(383쪽)을 강조하는 것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적정한 규제를 통해 이른바 경제 정의를 실천함으로써 사회 통합을 이루는 데 긍정적 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규제 2.0”(403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단언한다. 그들이 말하는 규제 2.0이란 과거의 규제가 아니라 바로 ‘정보의 투명성’을 위한 규제이다. 정보경제학자들에게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은 나쁜 규제 대신 착한 규제를 가능하게 해주는 기술적 환경을 가리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플랫폼 환경이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근간한다는 점에선 더더욱 그렇다. 데이터 및 알고리즘의 개방성 여부와 정도가 관건이 되기는 하지만,[1] “데이터 주도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갖춘 시스템”(404쪽)의 자연발생적 구축을 상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정보만 투명하게 공유된다면 에어비앤비의 집주인과 투숙객 그리고 우버의 운전자와 승객 사이의 신뢰 문제 같은 것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플랫폼 환경이 비판받을 때 동원되곤 하는 사생활 감시와 통제 등 좀 더 정치적인 부정적 외부효과까지도 어느 정도 경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보가 투명해지고 접근권마저 공평하게 배분된다면 말이다. 한 마디로 말해, 플랫폼 환경은 가장 최소의 공적 규제만으로도 시장의 부정적 효과를 줄일 수 있는 기회들을 제공한다는 주장이다.[2]

 

다른 한편, 누구나 주목하는 것처럼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은 기업의 이윤 창출에서도 탁월성을 발휘한다. 이는 무엇보다도 플랫폼이란 판이 네트워크 효과에 근거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플랫폼 모델은 선형적이라기보다는 ‘비선형’성장 곡선을 그린다(59쪽). 이것은 이용자 수가 증가할수록 네트워크의 노드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효과이다. 게다가 플랫폼의 시장 성격은 양면 네트워크 효과에 바탕을 두고 있다. 어떤 게스트나 판매자도 언제든 호스트나 구매자로 사이드 전환할 수 있는 긍정적 피드백 체계를 이룬다(60쪽). 실제로 프로슈머니 해서 생산과 소비의 경계가 허물어진다는 과거의 예언은 플랫폼에 와서는 너무나 상식적인 일이 돼버렸다. 여기에 알고리즘까지 적용하면 거래 및 업무 회전 속도를 증가시켜 일체의 거래비용을 최소화하는 것도 가능하다(66~67쪽).


물론 수익 그 자체는 다양한 방식과 기술을 통해 창출될 수 있다. 우버 택시처럼 이용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수수료를 부과할 수 있고, 정보 지향적 성격의 커뮤니티의 경우 가입이나 이용 빈도에 따라 요금을 책정할 수 있으며, 페이스북 광고처럼 특정 도구나 서비스를 부분유료화할 수도 있다. 또한, 앱 스토어 등을 통해 서드파티에 요금을 매길 수도 있으며, 다양한 정보를 필터링 또는 큐레이팅 해주는 대신 서비스 이용료를 걷을 수도 있다(204~214쪽).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시스템이 영구적으로 그리고 자동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만 제공할 수 있다면, 즉 특정한 임계치(critical mass)를 넘어서게 된다면 대규모의 금융자본과 연결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된다.[3]

 

여기서 관건이 있다면 그것은 네트워크, 즉 이용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이다(91쪽). 물론 그 전에 참여자를 끌어올 수 있는 매력적 콘텐츠를 깔아놔야 하고, 이용자들을 머물게 하기 위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차원적인 가치를 촉진해야 하며, 그들의 취향과 선호를 반영하기 위한 정보를 매칭시켜줘야 한다(95쪽). 그리고 트위터의 해시태그처럼 시스템에서 애초 의도하지 않았던 창발적(emergent) 효과를 담아낼 수 있도록 ‘안티-디자인’에도 개방적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116쪽). 이런 조건들이 플랫폼을 통해 기업이 이윤을 낼 수 있는 성공 조건이 되는 셈이다.

 


위기의 과잉결정

 

이렇게만 본다면 플랫폼은 현행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처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신뢰가능한 몇 안 되는 돌파구로 간주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부정적 외부효과를 내부화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는 것은 경제·경영 활동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들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와 같다. 이용자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수익을 추구한다는 것은 새로운 축적의 기회가 열림과 동시에 플랫폼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역량에 따라 시장을 견제할 길도 열린다는 이야기와 같다. 플랫폼 모델이 애초에 ‘공유경제’로부터 시작했다는 자전적 기술(42쪽)이 단순한 허언만은 아닌 것이다. 어쩌면 오늘날 사회적 경제나 시민사회운동에서 공유 플랫폼 같은 것을 표방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플랫폼에는 정치적 입장과 경제적 처지를 막론하고 오늘날 우리가 처한 문제들을 해결할 기회구조가 개방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경제학의 관심대상이 사회적 상호작용이 됐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이론적·학술적 관심사가 마침내 플랫폼이란 매개를 통해 구현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이것은 사회적 행위로서 인간의 상호작용이 경제학, 즉 자본 축적의 관심사가 됐다는 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유연적 축적의 경제적 토대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토대가 구축됐다는 사실을 넘어선다. 즉, 자본 축적을 위해 사회적 관계라는 경제의 타자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수준을 넘어, 사회적 관계 자체가 자본 축적 메커니즘의 내적 구성요소로 끼어들어와 있다는 점을 함의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요약하자면,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에 ‘사회적인 것’(the social)이 내부화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플랫폼에 ‘혁명’이란 표제어를 붙일 정도의 야심은 이런 점에선 정당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런 전망은 적어도 몇 가지 차원의 염려를 불러일으키는 지점이 있다. 첫째, 우리는 플랫폼과 정보경제학의 조우라는 사건을 통해 경제학 제국주의(economics imperialism)의 극단을 체험하고 있다. 경제학 제국주의란 그 유명한 방법론적 개인주의처럼 경제학적 방법론이 다른 사회과학 분야를 식민화하는 것을 가리키지만, 『플랫폼 레볼루션』에서는 아예 다른 사회과학적 관심사들이 경제학 안으로 내재화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다른 사회과학이 경제학을 식민화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떤 분야가 도구화되고 있는지는 불 보듯 뻔한 문제다. 구글 같은 굴지의 플랫폼 기업이 인문사회과학 전공자를 대거 채용한다든지 하는 것(물론 인류학이나 심리학에 국한된다)도 다 데이터를 해석하기 위한 쓸모가 있기 때문일 뿐이다.[4]

 

둘째, 저자들이 규제 2.0이라 부르는, 기업 스스로에 의한 반(半)자동적 규제는 흡사 주류 경제학자들이 꿈꿔온 자기조정적 시장의 결정판을 보는 것 같다. 사회적인 것을 내부화함으로써 시장은 우리가 알던 시장이 아니게 된다. 과거 사회정책은 국가가 관장하거나 시민사회가 자조하는 제도적 방편이었지만, “데이터 주도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갖춘 시스템”을 갖춘 플랫폼 세계의 이상에서는 이 모든 것이 시장에서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전망과 함께 나타난다. 한 마디로 말해, 『플랫폼 레볼루션』은 산업 간 경계와 생산·소비의 경계가 무너진다고 진단하지만, 이 소용돌이는 국가·시장·시민사회의 경계,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경계, 나아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경계 등도 종래의 것과는 다른 형식으로 바꿔버릴지 모른다. 우리에게 현재의 이 사태를 짚어낼 만한 언어가 부족하다는 건 무척이나 불행한 일이다.


셋째, 플랫폼의 소용돌이에도 불구하고 독점, 소외, 착취 등의 고전적 쟁점들은 (어쩌면 형태를 달리하면서) 고스란히 남는다. 플랫폼이 승자독식의 생태계임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더 많은 상호작용과 그로 인한 콘텐츠 향유가 가능한 곳으로 몰려든다. 이론적 임계치를 넘겨서 이미 영구적 시스템을 갖췄다면 그 플랫폼이 무너질 가능성은 이론적으로 제로에 가깝다. 영어나 중국어를 사용하는 미국과 중국의 플랫폼 기업이 글로벌 경제를 좌우하는 것도, 시장 논리에 반하는 대항 플랫폼이 여간해선 잘 운용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 때문이다. 또한 배달앱 알바나 카카오 드라이버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플랫폼 사회에서 필요한 노동은 상당 부분 아웃소싱 전략에 의해 충당되고 있다. 그 와중에 불안정 노동에 가담하는 ‘이용자’들은 자기 자신을 (노동자가 아니라!) 프리랜서나 도급업자(contractor)처럼 특수고용 또는 계약 관계에 있는 주체로 동일시하게 된다. 심지어 플랫폼 기업은 수수료나 요금 따위를 당기면서 플랫폼 지대를 챙길 뿐인데, 그러한 가치가 어디서 창출되고 또 어떻게 이전되고 있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한 문제로 남고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플랫폼 자본주의는 자유·자생·자발·자조의 덕목을 활용해 아래로부터 끝까지 짜내기를 시도한다는 사실이다.


넷째, 이런 식으로 노동자성이 지워진다는 사실은 플랫폼 하에서 가장 확실한 동일성은 소비자 말고는 없게 된다는 뜻과도 통한다. 저자들의 설명처럼 플랫폼은 규모의 공급 경제를 규모의 수요 경제로 전환시키는 측면이 있는데(58쪽), 이는 무엇보다도 수요측의 기술 향상 덕분이다. 가장 극단적으로는 소비자의 행동 하나하나가 데이터를 생산하는 행위로 직결되는 것처럼 말이다. 플랫폼에서 소비자는 정보 생산의 주체로서 시장의 흐름을 주도하고 상품에 대해 적극적으로 피드백한다. 이를테면 플랫폼 하에서 우리가 자기 효능감을 갖게 되는 가장 극적인 순간은 컴플레인을 넣을 때가 되는데, 심지어 이렇게 비판적 대중(critical mass)의 사회적 행위조차도 상품과 컨텐츠 생산, 나아가 플랫폼 자체를 완벽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게 된다. 이것은 플랫폼 모델에 현대인의 실존적 조건 자체를 속박하는 일종의 메타-구조가 탑재되어 있음을 가리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말해, ‘플랫폼 혁명’을 통해 다가올 세계는 우리가 알던 언어로는 더 이상 재단하기 어렵게 되고 있다. 국가와 시장과 시민사회가 서로 혼성화되어 있고, 비판적 대중이 영구적 플랫폼의 임계치로 변환되는 세계에선 비판·대항·저항의 표적은 물론 그 주체도 완전히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 똬리를 틀 수밖에 없다. ‘플랫폼은 나쁜 것일까.’ 물론 이 모든 ‘부정적 외부효과’에도 불구하고 더 좋아질 측면이 있을 수도 있다. 저자들의 논법을 빌려 말한다면, 관건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정확히 어떻게 해야 좋아지는가 하는 데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논점은 미래학적 담론이 넘치는 세상에선 플랫폼이 왜 나쁜지조차 제대로 알기 어렵다는 데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Notes

  1. 이 부분에 대해 저자들은 정보의 투명성을 갖춘 기업들에게 반대급부로 관리당국의 감독을 면제해주는 ‘당근’을 제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제안한다.
  2. 물론 플랫폼 그 자체가 (적어도 아직까지는) 완전경쟁시장을 만들어낸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270쪽). 플랫폼 기업이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배타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한, 정보 비대칭성과 부정적 외부효과 그리고 독점 등의 이슈는 잔존할 수밖에 없다.
  3. Nick Srnicek, Platform Capitalism, Polity, 2016. 특히 2장 참조.
  4. 예컨대 공리주의나 도덕의무론을 공부하는 이유는 소비자들의 사이코그래픽스를 해석해서 그들이 안드로이드폰과 아이폰 중 어떤 스마트폰을 구입하는지를 예측하기 위한 것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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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및 운영위원입니다. 주전공은 사회학을 하고 있고 최근에는 플랫폼 자본주의, 도시재생과 민주주의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시간이 나는대로 연구소 홈페이지에 들러서 이용자 여러분들과 교감하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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