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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문화사회연구소

대중문화

팬덤, ‘머글’들은 모르는 공동체

팬덤 문화를 직간접적으로 접해본 사람들한테는 비교적 익숙한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팬덤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접근법을 알려줄 기회라 생각되어 쓴 글입니다. ≪Littor≫(릿터), 2017년 8/9월호에 실렸습니다.
by 김성윤 posted Nov 26, 2017 Views 456 Lik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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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차이

 

1999년. H.O.T.의 문희준과 베이비복스의 간미연 사이에 연애 루머가 돌았다. 그러자 문희준의 일부 극성팬들이 간미연과 베이비복스에 협박 편지를 보내는 등 테러(에 가까운 행위)를 감행했다. 당시 편지에는 붉은 잉크를 묻힌 다량의 커터 칼날, ‘죽여버리겠다’는 혈서, 간미연의 눈을 파낸 사진 등이 담겨 있었다.


2004년. <X맨>이란 프로그램에 출연하던 배우 강은비가 동방신기 멤버들과 극중 러브라인을 형성했다. 그러자 동방신기 팬들이 그녀를 비호감으로 낙인찍고 마찬가지로 협박 테러를 감행했다. 악플과 커터 칼날 수법 정도는 기본이었고 이번에는 죽은 쥐를 보내기까지 했다.


팬덤에는 사회적 소동이 뒤따른다. 팬덤에선 이런 일이 생겨날 때마다 사달이 나곤 한다. 사회적으로 뒤따르는 ‘빠순이’ 담론 때문이다. 팬들 입장에선 불편한 시선을 느껴야 하니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2004년은 1999년과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졌다. 당시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공식 팬클럽 ‘카시오페아’를 중심으로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난 것. 팬질에도 연륜이란 게 있는 법이다. 예전부터 팬질을 해왔거나 사회 경험이 있는 20~30대 팬들이 어린 팬들을 다독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식이었다. ‘너희들 그렇게 흥분할 필요 없어. 어차피 예능도 연기야. 우리 애들은 지금 연기하고 있는 거라고. 너희들 그렇게 난리쳐봤자 빠순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피곤해지기만 한다?’ 팬덤 내부에서의 자정작용이었던 셈이다. 그/녀들에게 강은비는 여전히 비호감이었지만 그래도 팬덤은 가까스로 잠잠해질 수 있었다. 이제부터 팬들은 ‘내 남자의 비즈니스’와 사생활을 구별할 줄 알게 되었다.[1]


어째서 이런 차이가 발생한 걸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팬덤의 공동체적 특징을 꼽고 싶다. 아이돌의 비밀스럽고도 번다한 스케줄을 따라잡고, 무대 공연을 보면서 응원 구호와 함께 떼창을 하며, 때로는 팬덤이라는 하나된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이 모든 것에 팬 커뮤니티가 없었다고 쳐보자. 평상시엔 그 효과를 인식하기 매우 어렵지만, 스타 없는 팬질을 상상하는 것만큼이나 공동체 없는 팬질 역시 상상하기 어렵다. 팬덤에게 커뮤니티 경험이란 대체 어떤 의미인 걸까. 또래들로 채워졌던 1세대 팬덤, 다양한 세대들과 공존하기 시작한 2세대 팬덤, 심지어 초국적으로 접점을 만들고 있는 오늘날의 팬덤에 이르기까지, 팬덤은 커뮤니티 경험을 통해 어떤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걸까.

 


‘팬덤만큼 소중한 기회도 드물다’

 

팬덤에게 커뮤니티란 무엇일까. 커뮤니티 경험은 팬덤에게 그리고 팬들 각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팬덤에 깊이 연루될수록 일상적 생활 패턴으로부터 벗어날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팬들은 팬덤을 통해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30~40대 이상의 팬층에서 종종 나타나는 오프라인 모임이 대표적이다. 자기들끼리 모여 회식을 하거나 조촐한 파티를 열기도 한다. 물론 모인다는 자체가 대단한 건 아니다. 정확히 말해, 직업 세계나 생활 세계의 정해진 생활 패턴으론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낯선 이들과의 만남이, 그리고 그런 타자성이 한 개인에게 얼마나 충만한 느낌을 주는지는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알지 못했던 세계를 알게 되고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을 누리는 것이다. 물론 그 대화는 아이돌 스타를 매개로 했을 때가 가장 즐겁긴 하다. 때로는 ‘오덕오덕’ 거리다가도, 또 때로는 속내를 털어내면서 전혀 다른 관계적 체험을 할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은 팬덤과 커뮤니티를 통해 심지어 해방적 경험을 누린다고까지 말한다. 물론 그들의 삶이 얼마나 억압적인지에 따라 팬덤 경험은 굉장히 극적인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이모팬이 있다고 쳐보자. 때때로 그녀에게는 팬사인회에 가거나 공개방송에 가는 게 어마어마한 체험이 될 수도 있다. 한창 잘 나갈 때 육아 문제 때문에 자아실현은 물론 커리어조차 이어갈 수 없게 된 처지, 집에 들어와 꼼짝 않는 남편과 자식새끼들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일·가족을 양립해야 하는 처지, 그러다 베란다 창밖이 보이면 차라리 저 건너편이 더 자유롭겠다고 느껴지는 처지, …. 적어도 팬 커뮤니티에선 자기를 표현할 수 있고(저 오늘 이런 일이 있었어요. 정말 답답하네요), 다시금 설렐 수 있으며(우리 ○○이, 정말 병 주고 약주네요), 그 감정을 표출하면서 서로를 보듬을 수도 있다. 어떤 점에서 팬 커뮤니티란 가족이 됐든 학교가 됐든 뼈아픈 현실로부터 끄집어내주는 마술적 매개체이자 장소가 돼주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이젠 제법 상투화된 잠언은 ‘한 인간이 만들어지는 데 팬덤만큼 소중한 기회도 드물다’는 말로 대체될 수 있을지 모른다. 멀리서 찾으면 서태지와 아이들 팬덤이 ‘서기회’(서태지와 아이들 기념 사업회)라는 임의단체를 만들어 대중음악 개혁 운동에 나섰던 신화적 이야기가 있다. 1세대 팬덤 시절에는 팬클럽 임원으로부터 시작해 구성원들을 조직해가는 집단적 커뮤니케이션 체계부터 시작해 이성애중심적인 섹슈얼리티를 새로 써내는 팬픽 활동이 있다. 어디 그 시절 그뿐일까. 요즘에는 스타에게 ‘조공’을 하기 위해 물자를 동원하고 버스나 지하철에 응원 광고를 만들기도 한다. 이런 경험을 해본 사람과 해보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지 않을까. 팬덤의 커뮤니티 활동들은 그들이 좌충우돌하면서 만나러 다니고 겪게 되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일상에 대한 감각과 자기 역량까지도 바꿔낸다. 적어도 책상머리에 앉아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공부 오타쿠들보다 어떤 식으로든 감정에 충실하고 몸을 움직여 타자들과 부대끼면서 자기 성장의 계기를 얻어내는 팬덤이 훨씬 낫지 않은가 말이다.


어쩌면 이런 말로 요약할 수도 있겠다. 세대를 막론하고 어떤 식으로든 공적 경험이 불가능보이는 시대에 팬덤의 공동체적 경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그야말로 몇 안 되는 기회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팬덤 활동이 그 자체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나아가 팬덤만이 희망이라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머글’[2]들의 상식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마법의 세계가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또 그런 마법이 있어야만 이 세계를 지킬 수 있고.

 


‘러브마크’ 소비자공동체?

 

이쯤 되면 스타는 일종의 핑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흘러 사랑의 대상은 사라지지만 그러한 감정과 행동이 한 인간을 성숙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일찌감치 프로이트는 (스타와 팬 사이의 감정적 거리가 스타와 다른 팬 사이의 거리와 일치한다는 전제하에서) 팬들 사이에 동일성(identity)이 형성되고 비로소 팬덤이라는 공동체가 구성된다고 말했던 바 있다.[3] 여기까지가 정식일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팬들 사이의 관계가 공고화되면, 그들의 관계는 거의 자동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스타 없는 동일시 같은 역설이 발생하는 셈인데, 이렇게 되면 (때때로 스타가 팬덤에 종속되기까지 할 정도로) 팬덤은 어느새 스타덤을 추월하기도 한다.


팬덤의 역사 또는 진화 과정을 추적하다보면 팬덤을 결속시키는 메커니즘에도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에는 어떤 취향 내지 지향을 공유한다는 사실이 포함된다.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가장 결정적인 계기였다. 1980년대 록 마니아들로부터 해서 1950년대 국극에 이르기까지. 그에 반해 팬덤을 아이돌 팝문화의 파생물로 보는 관점은 팬덤의 중심적 매개가 취향을 넘어 성애적 감정으로 진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감정을 주체 못해 학교나 직장 생활을 뒷전으로 하고 스타를 쫓아다니고, 일부는 ‘사생팬’이 돼서 유사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심지어 H.O.T. 시절에는 문희준이나 강타의 헤어스타일을 따라하는 여성팬들이 있을 정도였다. 물론 일본 비주얼록 특유의 메트로섹슈얼 스타일이었으니 따라할 법하긴 했지만, 여성팬이 남성 스타의 스타일을 모방한다는 건 그만큼 동일시의 수준이 강렬했다는 증거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사정이 다소 달라진 것 같다. ‘내 남자의 비즈니스’라는 언명은 스타와 팬 사이의 관계 역시 과거와 달라진다는 사실을 뜻한다. 과거에는 ‘연기로라도 바람은 절대 안 돼’라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실제 바람만 안 피면 돼’라는 감정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 ‘연기’가 ‘비즈니스’인 한에서만 참아주겠다는 뜻도 들어가 있을 테고. 그래서인지 오늘날에는 스타가 연애 스캔들이 나더라도 팬덤의 반응이 참으로 복잡다단하다. 여전히 주체 못할 배신감에 감정적 소용돌이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에선 이색적인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내가 여태껏 너한테 투자한 돈이 얼만데 감히 니가 나를 배신해!’ 이 차이가 느껴지는가. 스타를 자기와 언젠가 연결될 수 있는 연애 대상으로만 여기는 게 아니라, 유사-연애적 감정을 창출하는 상품으로 명확히 직시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 얼마나 ‘비즈니스’한가!


좀 더 신중을 기한다면, 취향공동체에 감정공동체, 그리고 상품공동체라는 속성들이 모순적으로 얽혀 있는 형국이라 해야 할 것 같다. 실제로 아이돌 팬덤은 아이돌을 일종의 ‘러브마크’(lovemarks)[4]로 소비하고 있다. 팬들은 스스로를 고객으로 인지하며, 그런 맥락에서 팬덤 은 때때로 소비자공동체로도 변모한다. 그러니까 어떤 스타가 연애 스캔들을 하고 있다는 건 상품 자체에 흠결이 난 것으로 자신들의 소비자 권리를 침해하는 사안이 된다. 여느 소비자운동이 그렇듯 불만 접수는 당연한 것이며 때로는 환불과 손해배상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스타는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 그건 ‘너의 (공개되지 않은) 사생활이니까.’ 그러나 들키는 순간 암묵적이던 거래 계약을 위반한 것이 된다. ‘난 너의 (공개된) 사생활까지도 구매한 사람이니까.’ 사람의 감정이란 게 절대 단선적일 리 없지만, 오늘날 팬심만큼 복잡한 감정이 또 어디 있을까 싶을 정도다.

 


다시, 질문

 

물론 팬덤의 공동체주의적 쟁점 전체를 짧은 지면에 담기란 불가능하다. 친목질[5]을 어떻게 볼 것인지, 사생팬에서 ‘악개’[6]와 ‘홈마’[7]에 이르기까지 팬덤 내부의 논란거리는 어떻게 볼 것인지, 이따금씩 나타나는 팬덤 간의 불화와 갈등은 어떻게 볼 것인지, 기부와 자원활동 같은 사회적 활동들은 어떻게 볼 것인지, 또 소셜 미디어를 매개로 하는 팬덤의 접속적 특징은 어떻게 볼 것인지 등등,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만큼 논쟁적이라는 이야기다. 팬덤 커뮤니티가 고립상태의 개개인을 ‘사회적으로’ 구출할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은 두말 할 나위 없어 보인다. 다만, 그렇게 만들어진 커뮤니티에 묘한 요소들이 끼어들어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문제가 된다. 스타라는 상품을 매개로 만들어지는 공동체라는 점. 즉, 그들은 심미적 소비자로서의 경험 또한 누리고 있는 셈인데, 자연히 소비자주권주의의 확장이란 논점이 추가되기 마련이다.


팬덤은 ‘빠심’ 가득한 덕후들이 지들끼리 오덕거리는 문화적 배설 공간에 지나지 않는 걸까. 아니면 모두가 고립되어 있는 세계에서 그래도 검토해볼 만한 한 가닥 희망 같은 경험적 체계의 공간일까. 하긴 팬덤에 너무 많은 걸 기대해선 곤란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소비자로서의 자기 자신과 자기 무리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상품공동체이자 소비자공동체로서 팬덤이 우리 시대에 유력한 공동체 형식 중 하나긴 하지만, 그 자체가 시민공동체로서의 충분조건은 아닌 것 같다. 하긴, 거의 모든 공동체 형식이 그런 것처럼, 공동체란 하나의 해답이 아니라 언제나 더 많은 해명을 요구하는 문젯거리다.

Notes

  1. 정민우·이나영, 「스타를 관리하는 팬덤, 팬덤을 관리하는 산업 ― ‘2세대’ 아이돌 팬덤의 문화실천의 특징 및 함의」, ≪미디어, 젠더&문화≫, 제12호(2009년 10월), 2009.
  2. <해리 포터 이야기>에서 마법 능력이 없는 평범한 인간을 일컫는 말. 팬 또는 덕후가 아닌 일반인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은어이다.
  3. 지그문트 프로이트, 이상률 옮김, 『집단심리학과 자아분석』, 지도리, 2013.
  4. 강한 애정과 존중감을 가지는 상품 형식을 일컫는다. 상대적으로 애정도가 낮은 브랜드, 존중감이 낮은 유행 등과 구별된다. 러브마크의 구성 요소로는 미스테리, 관능미, 친밀감 등이 있다. Kevin Roberts, The Lovemarks Effect: Winning in the Consumer Revolution, PowerHouse Books, 2006.
  5. 최근에 와서는 일부 팬들의 오프라인 모임 때문에 커뮤니티 전체 문화가 위기에 처해진다는 문제의식 때문에 소위 ‘친목질’은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6. 아이돌 그룹에서 특정 멤버만 좋아하고 다른 멤버들을 고의적으로 비하하는 악성 개인팬의 줄임말.
  7. 아이돌을 따라다니며 찍은 사진을 개인 홈페이지에서 판매하는 팬. 홈페이지 마스터의 줄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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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및 운영위원입니다. 주전공은 사회학을 하고 있고 최근에는 플랫폼 자본주의, 도시재생과 민주주의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시간이 나는대로 연구소 홈페이지에 들러서 이용자 여러분들과 교감하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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