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사단법인 문화사회연구소

에세이

삶의 풍요로움을 위한 과일 모임

by 박범기 posted Mar 28, 2017 Views 175 Likes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Extra Form

과일 모임의 시작

 

얼마 전부터 과일을 공동구매해서 나눠 먹는 모임을 시작했다. 과일이 먹고 싶었고, 과일 값은 비쌌기 때문에 만든 모임이다. 과일을 조금씩 사다 먹고 싶지만, 조금씩은 잘 팔지도 않고, 판다고 하더라도 가격이 비싸다. 박스 채로 사면 가격은 싸지만, 얼마 먹지 않고 상당량을 썩혀 버리기 일쑤다. 대부분의 1-2인 가구가 한 두 번쯤은 박스 채로 과일을 샀다가 대부분 버려 버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과일을 먹지 않는 날들이 늘어가고만 있었다.

그러던 찰나에 내가 살고 있는 성북동을 기반으로 하여 1-2인 가구 몇을 모아 과일을 공동구매하여 나누는 모임을 만들었다. 5가구가 모였고, 과일모임이 시작되었다. 가구 당 월 1만원을 걷고, 그 돈으로 과일을 사서 나누기로 했다. ‘과일 대모험’이라는 모임 이름도 정했다.

과일모임을 시작 한 직후에 한겨레 기자에게서 취재 제안을 받았다. 그 기자는 이 모임의 제안자인 나를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다. 10여 분 간 전화로 인터뷰를 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기사가 나왔다.[1] 기사가 나온 이후, 나는 이 모임이 기사화 된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모임 자체는 기사화가 될 만한 가치가 충분치 않은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과일을 나눠 먹는 것이 목적인 이 작은 모임이 기사화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글은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이다.

 

1인 가구의 식사권, 그리고 흙밥

 

얼마 전에 시사인 기사를 통해 ‘흙밥’ 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 흙과 밥의 합성어인 이 신조어는 2017년 대한민국의 어떤 현실을 보여준다. 돈 없는 청년들이 기본적인 욕구조차 채우지 못하는 어떤 현실. 다른 세상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지금 이 세상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한 끼 밥을 제대로 챙겨 먹는 일 조차 사치인 것처럼 느껴진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을 살고 있는 상당수의 청년들에게 질 좋은 식사를 하는 일은 더 이상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제대로’ 먹는 일은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일을 넘어 특수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밥 한 끼 챙겨 먹는 일 조차 이렇게 어려운데, 과일을 먹는 일은 언감생심이 아닐 수 없다. 이 점에서 나의 이야기는 한계를 갖는다. 더군다나 내가 먹는 과일들은 대부분 질이 좋고, 고가이다. 생산자 직거래 사이트를 이용해서 거래를 하기 때문에 질에 비하면 가격이 싼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밥 한 끼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는 이들의 눈으로 보자면, 분명 고가이다. 그럼에도 나는 되도록 생산자 직거래를 통해 무농약 혹은 유기농으로 재배한 친환경 농산물을 먹으려 한다. 가격은 비싸지만, 이런 일이 결국 몸을 위한 것이며, 나아가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삶의 풍요로움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애써 챙겨 먹기에는 돈과 시간과 노력이 너무 많이 든다. 이러한 돈과 시간과 노력을 낼 수 없는 이들은 그런 일들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적당히 넘어간다. 이런 것들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기회를 지닌 이들은 별로 많지 않다. 저임금과 과잉 노동의 일상화가 불러일으킨 현상이다. 그런 점에서 신선하고 질 좋은 과일을 많이 먹기 위해 모임까지 만든 나의 수고는 다소 간에 특이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공동체와 반상회 사이

 

 IMG_2228.JPG

 

 

몇 가구가 모여 함께 과일을 사서 나눠 먹는다. 사실 이 발상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2017년 한국사회에서 그런 일을 벌이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을이나 이웃 같은 단어가 개념으로만 남아 있는 상황에서 함께 과일을 사서 나눠 먹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 경우, 성북 지역을 기반으로 지역 활동을 하고 있는 분을 알아서 그 분의 도움으로 몇 가구를 모을 수 있었다. 만약 그분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모임은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공동체가 붕괴 된 자리에서, 이와 같은 소규모 모임을 실행하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임을 진행하면서 이런 류의 모임의 중요성에 대해 발견한 것이 하나 있다. 두 번째 모임에서 모임 참여자 중 한 명은 “엄마가 왜 그렇게 반상회를 꼬박꼬박 갔는지 알 것 같네요.” 라는 말을 했다. 나는 이 말이 이 모임의 성격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했다.

과일을 공동구매해서 나누는 일을 통해 동네에 기반을 둔 커뮤니티가 생겼다. 이 커뮤니티는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진다. 이 모임을 통해 모임 참가자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다. 단순히 과일을 같이 사서 나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감의 경험을 나누게 되는 셈이다. 모임을 진행하면서, 나라도 이런 식의 소규모 모임을 더 많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삶의 풍요로움을 위해서.

Notes

  1. 「1인가구지만 더 건강한 밥상 원하는 분, 보세요~!」, 고한솔, 《한겨레 신문》, 2017.03.19.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28&aid=0002357535&sid1=001
TAG •

팀 블로그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들의 연합 블로그입니다

  1. 에세이
    profile

    국유지는 누구의 것인가?

    최근 일본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10% 하락했다. 하락의 가장 큰 이유는 일본 정부가 학교 법인 모리토모 학원에 국유지를 감정가보다 8억엔이나 싸게 헐값 매각한 탓이라 한다. 이 학교 법인은 일명 ‘아베 신조 기념 ...
    Date2017.04.02 Category에세이 By Votes1
    Read More
  2. 에세이
    profile

    삶의 풍요로움을 위한 과일 모임

    과일 모임의 시작 얼마 전부터 과일을 공동구매해서 나눠 먹는 모임을 시작했다. 과일이 먹고 싶었고, 과일 값은 비쌌기 때문에 만든 모임이다. 과일을 조금씩 사다 먹고 싶지만, 조금씩은 잘 팔지도 않고, 판다고 하...
    Date2017.03.28 Category에세이 By박범기
    Read More
  3. 에세이

    Ma

    노동, 그 한갓진 어려움에 대하여 (2)

    취업준비를 하던 친구는 오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서른이 훌쩍 넘은 그는, 그동안 자신이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 고민해본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대학사회에서 노동사회로 이동하...
    Date2017.03.19 Category에세이 ByMay
    Read More
  4. 정치사회
    profile

    사회적인 것: 질문 편

    사회적 경제와 공동체주의…. 오늘날 준동하는 ‘사회적인 것’에 관한 질문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다들 사회적이어야 한다고들 하는데 그냥 반(反)사회적이어선 안 되는 걸까. 페이트먼의 『성적 계약』...
    Date2017.02.25 Category정치사회 By김성윤
    Read More
  5. 에세이

    Ma

    노동, 그 한갓진 어려움에 대하여 (1)

    대학원을 졸업하고, 1년 반이 흘렀다. 그 사이 단기 아르바이트와 8개월 계약직을 거쳐 지난 12월 민간연구원에 정규직으로 들어갔다. 삶의 자리가 변하니 생각의 지점도 변한다. 알바생, 프리랜서, 혹은 계약직으로 ...
    Date2017.02.13 Category에세이 ByMay Votes1
    Read More
  6. 대중문화

    김주

    비누광고와 인종주의

    미용 상품 광고들은 자본주의가 인종적 표상을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대상이다. 그중 특히 Pears’ 비누 등 많은 비누 브랜드의 광고들은 이를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들이다. 유럽 열강들이 식민지 확...
    Date2017.02.06 Category대중문화 By김주환 Reply2
    이종
    다소 기괴한 방식의 동화적 상상력 같아요..
    마지막 광고 영상을 보니 중국도 차별금지법 도입이 시급해보입니다. 물론 한국도;;;;
    Read More
Prev 1 2 3 4 5 6 7 8 9 10 ... 54 Next
/ 54

Recent Comment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