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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그 한갓진 어려움에 대하여 (1)

by May posted Feb 13, 2017 Views 596 Likes 1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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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을 졸업하고, 1년 반이 흘렀다. 그 사이 단기 아르바이트와 8개월 계약직을 거쳐 지난 12월 민간연구원에 정규직으로 들어갔다. 삶의 자리가 변하니 생각의 지점도 변한다. 알바생, 프리랜서, 혹은 계약직으로 지낼 때는 당장 다음 달을 기약할 수 없는 불안정한 상황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수입이 불규칙하고, 저임금을 받는 건 기본이거니와 불안정한 노동, 과잉노동, 창의노동으로 점철되는 나의 노동형태가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정규직으로 채용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물론 지금도 3개월 수습기간이지만) 나는 이전보다 장기적인 전망으로 조금씩 저축도 하고, 안정적인 삶의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나는 새로운 고민을 한다. 그리고 당분간 그 고민에 대해 풀어내려고 한다.

 

LG_CNS.png

[이미지 출처=LG CNS 블로그]

 

 

이직, 그 공백기에서

 

계약 만료를 한 달 앞두고 나는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겼다. 마음 같아서는 계약이 끝나면 한 달 정도 쉬었다가 다른 일자리를 알아볼 참이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때에 일자리가 있는 건 아니었다. 고용승계가 된다는 말은 있었지만, 될 수도 있는 거지 된다는 보장은 아니었다. 만족할만한 노동조건이 있을 리 만무했고, 나를 기다리는 곳은 더더욱 없었다.

 

때마침 2년 전 지원했던 곳에 채용공고가 났다. 지원 그리고 합격, 그 기쁨도 잠시. 다니던 곳을 정리하고 새로운 곳으로 가는 사이 내게 허락된 휴식기는 10일이었다. 당시 나는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시간을 공연준비에 쏟았다. (부연설명을 하자면, 나는 때로 활동가이자 직장인으로 때로 글 쓰는 사람이자 예술가로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활동가라는 이름은 나를 고용한 사람들이 나에게 붙이는 이름이었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빠듯한 일정으로 일터 적응과 창작활동에 열을 올리며 지냈다.

 

새로운 곳에서 일을 시작하던 주. 나는 퇴근 후에 공연장으로 향했고, 그럭저럭 일주일이 지났다. 하루하루 업무에 잘 적응해나가는 듯 보였고,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던 중 월급날이 되었고 통장을 확인했을 때 나는 다시 우울해졌다.

 

월급은 이전보다 많았지만, 이직 중에 쉬었으니 18일분의 월급만 받았다. 매달 정기적으로 나가는 세금, 학자금 대출에 동생들과 십시일반 모아 드리는 엄마 생활비, 어느새 바닥을 보이는 샴푸, 비누, 휴지, 화장지 등 생활용품까지. 마치 생필품은 월급날을 기다렸다는 듯이 떨어졌다.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아서 끌어다 쓸 돈도 없었고, 생활비를 손 벌릴 곳도 없었다. 결국 퇴근 후에 일주일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서 30만 원을 모았다.

 

두 번째 달. 온전한 월급을 받았다. 그동안 밀린 통장정리도 하고, 어떻게 돈을 쓸지 궁리를 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구민체육관에 등록을 했다. 내 생애 돈을 내고 운동을 배우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통장정리를 하던 중 이전 직장에서 일을 시작할 때 학자금 대출이 몇 개월 동안 연체되었던 것을 발견했다. 그때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나는 책을 쓰고 있었고, 생계는 책 계약금과 단기 아르바이트로 해결했다. ‘아.. 이대로라면 책도 못쓰고, 생활도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어 지자체에서 모집하는 혁신활동가에 지원했다. 100만 원대 초반으로 일급을 월 단위로 받았지만,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있으니 연체에 대한 걱정은 줄었다. 그래도 연체를 하지 않기까지 2~3개월은 걸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직을 한 후 첫 달은 어려웠고, 불안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얻기까지, 취업준비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비노동시장에 있는 시간이 길다는 건, 불투명한 미래와 불안이 길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그 기간을 버텨야 할 비용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취업을 한다고 해서 삶이 안정 궤도 안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취업을 하면서 미리 끌어다 쓴 돈이며, 그 기간을 버틸 수 있게 도와준 가족과 지인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보답을 할 방법을 찾고 거기에 비용을 쏟는다. 그뿐인가. 이전과 다른 노동공간에서 요구하는 의복, 스타일 등을 맞추기 위해서 초기 비용이 많이 든다. 꼭 정장 차림은 아니더라도, 취업준비를 하는 동안 즐겨 입었던 늘어난 티셔츠와 헤질대로 헤진 남방을 입고 출근할 수는 없다.

 

노동시장에 처음 진입을 하는 사람도, 노동시장에서 이직을 하는 사람도, 그 문턱에서 늘 걸리는 것이 있다. 비노동시장에 있던 사람이 노동시장에 들어갔을 때 나를 기다리는 초기비용. 그것을 마련하기 위해 부가적인 노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삶의 공백기를 허락하지 않는 사회의 단면이기도 하다.

 

나는 늘 경제활동을 해왔지만, 나의 경제활동은 노동시장에서 인정하지 않거나 노동시장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경제활동이었으므로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다. 연말정산은 아직까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소득공제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노동의 언어가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노동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을 돌이켜보면 그 시장 바깥에서 나는 생존의 방법을 찾지 못했던 것. 그래서 떠밀리듯 이 낯선 영역 안에 들어와버렸다. 빈곤한 상황에 한계를 느꼈던 건지, 연체가 싫었던 건지 잘 모르겠다. 그보다 나는 왜 한 달을 쉬지 못하고, 10여일의 휴식에 만족했는지. 그리고 한 달이 지난 후에 부족한 생활비에 쩔쩔매며 아르바이트를 했는지. 나는 왜 안정적인 수입과 일자리가 필요했는지, 쉼 없이 다른 곳에서 다른 곳으로 끊임없이 이동만 하는 삶이 어쩌면 마지막이 아니라 초입에 들어서서 느끼는 혼란은 아닌지.

 

노동, 그 한갓진 어려움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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