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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게 레이: 얼굴은 죄가 없다

by 이종찬 posted Feb 05, 2017 Views 283 Lik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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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에는 아시아 유일의 범아시아 아티스트들의 상설관이 마련되어 있다. “이종찬 선생, 언젠가 후쿠오카에 가게 된다면 아시아미술관을 꼭 들러보세요.” 언젠가 서경식 선생께서 해주신 조언을 이번 일본 방문길에 드디어 현실화할 수 있었다. 실은 거의 실패할 뻔했지만. 이번 방문의 애초 방점은 후쿠오카가 아니었음에도 입출국 공항이 후쿠오카인 관계로 오늘 마지막 날, 빠듯한 항공편에도 불구 일행을 뒤로 하고 혼자서 약간의 바지란 내지는 부산을 떤 덕분에 성사될 수 있었던 일이다. 얼마나 유난스러워 보였을까..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에서는 ‘People’이라는 주제의 특별전 또한 열리고 있었는데, 전시관 커대한 광고판에는 요코 오노와 존 레논의 키스 사진이 프린트되어 있었다. 어깨 너머 분위기를 슬쩍 보니 이미 이 전시관은 꽤나 만석. 애초에 이 전시까지 볼 시간이 없었다. 아니, 상설관 하나만 보더라도 사실 적잖이 빠듯한 시간이었던 것. 내게 주어진 시간은 아무리 많이 잡아도 1시간 30분 남짓여. 조금은 조급한 심정으로 상설관에 들어가 전시의 후반부까지 보던 즈음 잰걸음을 멈추게 하고 눈 속에 들어온 작품이 있다.

 

nge lay 1.jpg

 

응게 레이(Nge Lay). 미얀마 출신 1979년생 아티스트의 ‘The relevancy of the restricted things’ 연작. 이게 뭐지? 가까이 다가가 좀더 자세히 들여다봐도 이상한 조합이었다. 강가 바로 옆, 어울리지 않는 검은 텐트가 하나 쳐져 있다. 파도가 조금이라도 치받기라도 한다면 쓸려내려갈 것을 걱정하게 할 만큼 가까운 거리다. 미얀마? 역시, 난민의 형상인 건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이것은 말하자면 보다 더 사적이고 보다 더 내밀한 흔적. 검은 텐트는 말하자면 간이 사진관이었다. 보다 정확하게는 가족사진관.

 

한정된 공간 문제 때문일 것이 분명해 보이지만 연작임에도 전시관에 걸려있는 건 너댓 점 정도에 불과했다. 모든 가족사진에는 다소 기괴한 비-인칭적(im-personal) 탈을 둘러쓴 인물이 공히 등장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어려서 일찍 여읜 아버지의 현현이었다. 저 탈을 쓴 이는 아마도 작가 자신이 아닐까. 서울 정릉동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내 추측이 맞았다. 말하자면, 그 비현실적인 인물은 ‘부재의 현현’이었던 것. 그러니까 연작 사진에서 작가는 부재한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하여 누군가의 남편이 되었다가 또 누군가의 엄마가 되고 있었다.

 

2013 싱가폴 비엔날레에 참가한 작가의 인터뷰 영상도 인터넷에 올라와 있었는데, 내가 예상했던 얼굴과 거의 비슷했다. ‘탈(脫)-얼굴’ ‘얼굴의 해체’ 운운하지만 여전히 그리고 아직도, 그것과 다른 미적 감각 또한 유효하고 타당하다. 그러니 ‘얼굴’(visage)을 모욕하지 마시라. 얼굴은 죄가 없다. 얼굴은 무죄다.

 

https://www.youtube.com/watch?v=c50glJ8Lumk

 

nge lay 2.jpg

 

nge lay 3.jpg

 

nge lay 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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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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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문화연구 집단 '문화사회연구소'에서 '문화연구자'로서보다는 '비판적 인문주의자'(critical humanist)로서의 정체성을 보다 강하게 자각하는 존재론적 긴장 혹은 모순에 빠져 있다. 아카데미즘적 글쓰기(논문)와 신변잡기식 수필, 그 중간 정도의 글쓰기 양식이라 할 '비평적 에세이'의 존재론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대학원 영문과에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휴머니즘' 개념을 방법론으로 삼아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민족(nation)으로서의 '코리안'에 대한 표상을 비교검토하는 학위논문을 (지지부진) 준비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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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 Br
    Bro 2017.04.09 12:37
    사진 구성에 핵심인 객체를 가면이라는 역설로 가리우면서 사회 속 최소그룹단위인 가족 구성원의 부재를 표현 한 것. 그리고 그 현장이 아슬아슬한 물결과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누군가의 경험들을 잘 함의하고 있지 않나 싶네요. 좋은 작품 소개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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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
    다소 기괴한 방식의 동화적 상상력 같아요..
    마지막 광고 영상을 보니 중국도 차별금지법 도입이 시급해보입니다. 물론 한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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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
    사진 구성에 핵심인 객체를 가면이라는 역설로 가리우면서 사회 속 최소그룹단위인 가족 구성원의 부재를 표현 한 것. 그리고 그 현장이 아슬아슬한 물결과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누군가의 경험들을 잘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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