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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 집회가 끝나고 난 뒤: '그리고' & '그러나'

by 이종찬 posted Nov 13, 2016 Views 522 Likes 0 Replies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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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반체제 성향의 감독 로우예가 연출한 <여름 궁전>(2006)이라는 영화가 있다. 1989년 중국 천안문 사태를 역사적 배경으로 깔고 있어서일까. 당시 중국 정부는 감독에게 향후 몇년간 연출 및 제작 금지 처분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 괘씸죄. 어딜 감히! 이 영화에서 이상하리만치 머릿속에 오래 남은 장면이 하나 있다. 오늘 11월12일 집회를 마치고 겨우 막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이 씬이 불현듯 소환되어 불려나왔다. 89년 역사의 현장에 투신한 대학생들이 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장면이다. 늦은 밤. 거리를 가득 메웠던 인파는 온데간데 없고 몇 명의 또래 대학생들이 일렬로 터덜터덜 학교 기숙사로 돌아오고 있다. 걸음걸이는 흐느적거리고 보폭도 그리 넓지 않으며 모두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는다. 묘한 피로감이 전해지는 씬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얼추 10년이나 지난 과거에 보았던 영화의 이 특정 장면이 갑자기,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불려나왔던 것은 어떠한 연유에서였을까. 그리고 이 ‘피로감’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그런 복잡한 상념이 귀가길에 느닷없이 들었던 것이다.

 

귀가길 버스 안에서는 기발한 장면이 연출됐다. 얼마쯤 혀가 꼬인 청년 한 명이 갑자기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그리고 같은 일행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40대 추정 남성 하나가 버스 안 다른 승객들 몇 명과 함께 그 선창을 이어받기 시작했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우리집 개 이름이 순실이다, 순실이에게 사과해라. 잠시 뒤 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남성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뭐하는 짓이냐, 광화문에서 하고 왔으면 됐지 버스 안에서까지 왜 그러냐. 40대가 유머러스하게 받아쳤다. 버스 안이면 어떠냐, 외쳐도 문제없다. 서서히 고조되는 일촉즉발의 분위기. 그때 다른 목소리 하나가 개입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 다들, 모두들 수고하셨다는 적재적소의 살뜰함이었을 것이다. 다소 살얼음을 걷던 버스 안 분위기가 이후 다행히 정리됐다. 그리고는 몇 분간 침묵. 그러다 40대가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는 봉하 출신입니다, 88년에 이 시골 촌놈이 대학 때문에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전공이 천문학이라 별을 배웠습니다. (오늘 별자리는 어떻습니까?) 여기저기서 킥킥. 그런데 이 시점에서 갑자기 반전이 벌어졌다. 남자는 아랑곳없이 수신자가 불명확한 자신의 발언을 이어나갔다. 저는 사실 광우병 때도 집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하는 남자.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 나라가 정말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너무 화가 납니다. 버스 안, 갑자기 잦아든 웃음소리. 그리고 침묵. 이토록이나 극과 극을 오가는 분위기. 이쯤 되니 지금 이 버스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 자체가 독해가 잘 안 된다.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하나의 구호로 하나의 장소에 모인 이 인파들에게는 그러나 분명한 ‘차이’가 존재했(을 것이)다. 실제로 집회에 참여한 이들의 면면 그리고 속내는 다양했을 터다. 그럼에도 그 차이의 차이성이 도드라지거나, 아니면 심하게는 내부에서 모종의 충돌이 일어나는 상황만큼은 결과적으로 없었던 것. 위의 버스 안 에피소드에서 누군가 외친 한마디처럼. “수고하셨습니다.” 이 한 마디 덕분에 봉합될 수 있었던 차이. 차이의 동일성 혹은 동일성의 차이. 그렇게 광장에 모인 100만의 인파.

 

나로서는 마지막까지 풀기 어려운 하나의 문제가 남아 있다. 87년 이후 최대 규모의 기록적인 인파가 운집한 오늘의 집회는 무사히 그리고 평화롭게 끝났다. 그럼에도 ‘그리고’와 ‘그러나’ 두 개 모두의 연결접속사가 떠오르는 밤이다. 손쉬운 낙관도, 비관도 스스로 모두 경계하려 노력하고는 있지만 오늘의 이 '성공적인' 100만 집회, 이상하게도 어떤 껄끄러운 잉여의 감각이 떠나지를 않는다. 잠이 안 온다.

Who's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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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문화연구 집단 '문화사회연구소'에서 '문화연구자'로서보다는 '비판적 인문주의자'(critical humanist)로서의 정체성을 보다 강하게 자각하는 존재론적 긴장 혹은 모순에 빠져 있다. 아카데미즘적 글쓰기(논문)와 신변잡기식 수필, 그 중간 정도의 글쓰기 양식이라 할 '비평적 에세이'의 존재론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대학원 영문과에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휴머니즘' 개념을 방법론으로 삼아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민족(nation)으로서의 '코리안'에 대한 표상을 비교검토하는 학위논문을 (지지부진) 준비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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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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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윤 2016.11.13 15:55
    수고하셨습니다. 저도 1백만분의 1만큼 보탰어야 했는데 철야 작업 때문에ㅠㅠ
    @몰코 문득 박근혜의 별자리가 궁금해지는 왜일까ㅋ
  • profile
    이종찬 2016.11.13 16:57
    성윤 소장님 몫까지 우리 팀원들이 여기저기서 활약했어요. 임박한 논문 마무리 작업 잘 끝내세요. 나를 포함, 모든 연구원들이 한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습니다. 또는 지켜보고 있습니다 ㅎ 근데 가만히 다시 생각해보니까, 어제 버스 안에서 '오늘 별자리'가 아니라 '박통 별자리'를 물어봤던 거 같아요. 그러니 이제 소형씨가 바통을 이어주시죠. 박근혜의 별자리는 뭡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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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은 2016.11.14 03:46
    박통2.0 별자리는 노명우 샘, 김성윤과 같은 물병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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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고하셨습니다. 저도 1백만분의 1만큼 보탰어야 했는데 철야 작업 때문에ㅠㅠ @몰코 문득 박근혜의 별자리가 궁금해지는 왜일까ㅋ
    성윤 소장님 몫까지 우리 팀원들이 여기저기서 활약했어요. 임박한 논문 마무리 작업 잘 끝내세요. 나를 포함, 모든 연구원들이 한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습니다. 또는 지켜보고 있습니다 ㅎ 근데 가만히 다시 생각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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