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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이후의 민주주의

by 김성윤 posted Nov 13, 2016 Views 245 Lik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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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 우리에게 당면한 선택지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하야, 탄핵, 그리고 거국내각. 그리고 한 가지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박근혜 이후를 어떻게 구상할 것인가. 정상과 비정상의 싸움 이후는 어떻게 될까. 염치와 몰염치의 싸움 이후는 어떻게 될까.

 

2. 정국이 정국이다보니 적지 않은 사람들은 1987년을 떠올리곤 한다. 현대 정치사에 중요한 함의가 있기에 사람들의 회상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87년과 같은 폭발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상처난 마음을 치유 받을 수 있을까. 다시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을까.

 

3. 해방 후엔 친일세력의 지배를 받았고, 4·19 직후엔 쿠데타로 뒤통수를 맞았으며, 6월항쟁 이후에는 노태우 정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 역설들은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그 어떤 해방과 혁명의 기억과 마찬가지로 87년, 정확히 말해 87년 이후는 차라리 비판하고 극복해야 할 역사다.

 

4. 극소수의 사람들만 곱씹고 있다. 광장에서의 승리 이후로 어떤 과오가 있었는지를 말이다. 야당이 분열하자 그 놈의 ‘보통 사람’을 내세워 신군부가 정권을 재획득했다. 어디 그뿐일까. 군부 독재가 끝나자 사탕 발림 같은 민영화, 금융화, 유연화 덕분에 궁핍한 삶과 박탈감은 일상이 되고 말았다. 우리가 얻은 건 광장의 경험과 크든 작든 역사를 바꿔냈다는 성취감뿐이었다. 우리가 얻을 수 없었던 건 그밖의 모든 것이었다.

 

5. 6월항쟁 30년을 코앞에 둔 11월. 박근혜 이후의 우리는 어떻게 될까. 임기를 채우더라도 1년 3개월이다. 그 즈음에 이르러 우리는 어떻게 될까.

 

6. 87년의 과오 중 하나는 우리가 충분한 세계시민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대체적으로 무지했다. 세계화를 기치로 내걸었던 김영삼 정부 이래로 우리는 유사 이래 비할 바 없을 정도로 글로벌 시스템에 연루되었다. 당시의 세계 질서는? 뉴딜 자본주의의 한계가 노출되고 냉전은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미국이 경찰 국가를 자임했고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대안이 글로벌 자본주의를 휩쓸었다. 그 결과는? 국가권력의 문민화와 함께 시장권력이 이 땅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지금 이 순간 겪고 있는 바와 같다.

 

7. 그런데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고 바라지도 않았던 돌발상황이다. 오늘날 우리는 전혀 이상한 형태의 세계를 살고 있다. 글로벌 자본주의를 비아냥거리기 위해 말해왔던 카지노자본주의도 아니고, 한국형 자본주의를 빈정거리기 위해 말해왔던 천민자본주의나 정실자본주의도 아니다. 형용 불가능한 초현실의 세계다.

 

8. 그 사이 세계는 브렉시트에 이어 트럼프 당선이라는 또 한번의 뜨악할 만한 소식을 타전해왔다. 세계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대안세계화 운동과 미국발 금융위기 등 몇 차례 내홍을 겪던 자본주의 세계질서의 중심부에서도 기득권에 대한 도전이 떠오른 것이다. 소외 받던 시골 지역의 노인들이, 불만에 가득찬 저학력 백인 남성들이, 어쩌면 세계사에 한 획을 그을지 모르는 이번 최악의 선택에서 핵심이었다고 한다.

 

9. 어리둥절할지도 모르겠다. 고립주의와 인종주의 그리고 성차별주의로 점철돼 있는 저 흐름을 두고 기득권에 대한 도전이라니. 그러나 악마의 맷돌을 멈추려는 성난 목소리는 그 어떤 언어로든 번역될 수 있다. 날 것 그대로의 이 목소리는 혁명으로도, 타협으로도, 또 반동으로도 옮겨적을 수 있다. 다만 어떤 국면에서 어떤 사건을 만나느냐가 판세를 가를 뿐이다.

 

10. 그렇기에 박근혜 이후를 가늠한다는 건 동시에 지금의 세계 질서 이후를 상상하는 문제와도 관련이 된다. 다시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다. 비정상적인 걸 정상화하라고, 몰염치한 자들에게 염치를 알게 하자고, 불의로 가득찬 정치를 정의롭게 되돌려놓자고. 그러나 동시에 더 강한 민주주의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87년 이후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11. 어쩌면 우리는 30년 전이 아니라, 100년 전을 더 주목해야 할지 모른다. 내년은 박정희 탄생 100년이고, 러시아 혁명 100년째이기도 하다. 100년 전 우리의 역사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비극의 원형을 품었다. 친일, 독재, 억압, 착취, 불평등, 부정부패 등등. 그러는 동안 100년 전의 세계는 고삐 풀렸던 자유방임주의를 끌어내리기 위해 세 가지 방향으로 움직였다. 사회주의로, 뉴딜로, 파시즘으로. 그리고 전쟁이 시작됐다.

 

12. 솔직히 나는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광장에 도열한 수많은 시민들이 어떤 방식으로 쪼개질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촛불이 꺼지는 시점이 왔을 때 지금의 성난 목소리가 어떤 언어로 갈라질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는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집권 여당의 지지율이 곤두박칠 치는 동안 야당의 지지율이 조금밖에 오르지 않는 그림을 보면 더 그렇다. 아직 어떤 언어도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지 않고 있다는 건 불행인 걸까, 다행인 걸까.

 

13. 한 가지 확실한 건 박근혜 이후의 민주주의는 87년 이후의 민주주의와는 질적으로 달라야 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민주주의’가 아니라, ‘더 많고 더 작은 민주주의’여야 한다.

 

14. 끝으로 보는 이들의 의견을 분분하게 만들고 있는 짤방 하나를 공유해볼까 한다. 혹시라도 혼란스러워 하지는 않기로 하자. 우리는 그 어떤 것과도 싸워서 이겨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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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및 운영위원입니다. 주전공은 사회학을 하고 있고 최근에는 플랫폼 자본주의, 도시재생과 민주주의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시간이 나는대로 연구소 홈페이지에 들러서 이용자 여러분들과 교감하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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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6'
  • profile
    이종찬 2016.11.13 19:52
    "어 ㅅㅂ 뽑아야겠다." 이런 류의 댓글이 인터넷 서브컬처 문화에서의 소위 '드립' 차원에 국한되는 것일까, 아니면 실제 실행 단계로까지 나아가는 힘이 있을까. 그런 질문이 갑자기 떠오르네요. 현재로서는 가설적 수준이긴 하지만 나 자신 심증이 있긴 한데..
  • profile
    김성윤 2016.11.13 20:04
    일단은 농담으로 받아들여야겠죠? ㅎㅎ
    그치만 제도정치권 조롱하고, 외국인 배척하고, 일자리를 고파 하고, 민족적 자존심이 서길 바라고, 강한 국가를 바라고, 여성(특히 페미 여성)을 폄하하고, 등등이 현재의 대중적 정서구조와 맞닿아 있다는 건 유념해둘 필요가 있을 거 같아요.
  • profile
    재은 2016.11.14 03:59
    현재의 '남성'대중적 정서구조겠지. 대중 민주주의에서 소수자 민주주의로의 질적 전환은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할 때에만 가능한 일일까?
  • profile
    김성윤 2016.11.14 14:18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특정한 사고 체계를 인격화하거나 성별화하는 게 적절할지는 의문스럽다.
    먹고 사는 문제야 어디든 안 끼는 법이 없겠지만, 그래도 여기선 인권 감수성이니 시민성이니 하는 윤리적 문제들이 좀 더 결정적이지 않을까도 싶어. 나 같이 가난한 사람이 제법 잘 큰 걸 보면 더 그렇고ㅋ
  • profile
    재은 2016.11.14 18:50
    "제도정치권 조롱하고, 외국인 배척하고, 일자리를 고파 하고, 민족적 자존심이 서길 바라고, 강한 국가를 바라고, 여성(특히 페미 여성)을 폄하하는" 한국 대중들이 생물학적 남성들이 많다는 건 현재의 경험적 사실이잖아.
    담론적으로 '부'적절할 수 있다는 점은 연구자로서 조심해야겠고, 또 '페미' 관점에서 재현되는 '한남'들을 남성대중 다수라고 곧이 곧대로 믿지도 않지만, 인권 감수성이나 시민성을 배울 수 있는 사회가 먹고 살 만한 사회라는 건, 꼭 경제호황기에만 윤리적 문제를 논의할 상황이 된다는 뜻은 아니었어.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 더 극악스럽게 행동하는 게 현실이니까 말이야.)

    너는 제법 잘 크기는 했는데, 이제는 다 컸으니 '제법' 잘 큰데 만족하지 마셔~~ ^.~ 나이 잘 들으려면 '제법'으론 어림도 없는 것 같아. 젊은이들이 '무섭게 잘' 크고 있으니 말이야.
  • profile
    김성윤 2016.11.14 20:37
    어떤 정신적 특징을 젠더화하는 관행을 정당화하는 데 본질주의 못지 않게 경험주의 논리가 자리잡고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용어 선택이란 게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지. 너가 남성에 따옴표 쳤던 것에도 그런 문제를 경계하려고 했던 의도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어. 어차피 우리 모두 주어진 언어학적 한도 안에서 표현할 수밖에 없으니.

    그나저나 니가 뭔데 나님을 판단해?ㅋㅋㅋㅋ (노파심으로 얘기하지만 이 말은 몇 년 전 언프리티 랩스타에서 나왔던 유행어임) 얼른 잘 커서 귀국이나 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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