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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민 사과'라는 쇼의 역설

by 몰코 posted Nov 06, 2016 Views 170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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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4일 오전 10시 27분, 실로 오랜만에 생방 사수를 위해 TV 앞에 앉았다. 일방향적인 TV 매체에 대해서 더 이상 호감을 갖지 않는 터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실낱같은 기대를 가진 건 쇼가 시작되는 곳에 앉아 있던 수십여 명의 기자들 때문이었다. 생방의 긴장감을 더해줄 기자들은 어떤 질문을 장착하고 왔을지 궁금했다. 이윽고 쇼의 주인공이 등장했고 모든 방송 채널에는 하나같이 똑같은 방송이 약 9분여 간 흘러나갔다. 나는 분명 이 쇼가 시작되기 전부터 자리에 앉아 있었고 쇼가 시작되는 모든 순간 내 귀와 눈과 혼을 오롯이 집중했건만 우주의 기운이 부족했던 건지 어떻게 이렇게 재미없게 끝날 수 있는가에 대한 짜증만이 남았다. 쇼 자체가 갖는 분석이 이 글의 함의는 아니지만 주인공의 형편없는 연기력과 여전한 유체이탈 화법의 스크립트는 단 일의 진정성도 감동도 없었으며 녹화방송인지 생방송인지 구분할 수 없게 만드는 주인공의 묘연한 퇴장에 타이핑을 치는 기자들이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다.

 

 

0001.jpg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대중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쇼가 끝나기도 전에 SNS에서는 이미 ‘내가 이러려고 ○○○했나. 자괴감이 든다.’란 유행어가 급속히 퍼져나갔고, 역시나 이를 놓칠 리 없는 예능 방송인 <무한도전>은 2016년 11월 5일 방송 자막에 이 유행어를 패러디함으로서 시청자들에게 사이다 재미를 선사했다. 하지만 여기서 무엇보다도 내가 ‘역설적’이라고 표현한 건 11월 5일 광화문 일대에 모인 20만 명의 시민이다. 그들은 정확한 구호를 외쳤는데 바로 그 재미없는 쇼의 주인공을 향한 것이었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0002.jpg

[출처: 한국일보]

 

 

아직 명료한 설명으로 말하기 어렸겠지만 그럼에도 이유를 알고 싶었다. 국민을 기만한 재미없는 ‘대통령의 사과’쇼 때문에 거리로 나왔을 리는 당연히 만무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수십만의 사람들을 거리에 모이게 한 걸까? 최씨 가문에 놀아난 국가, 수천억 대의 재산과 비리, 자녀의 대학교 부정 입학, 그리고 대통령의 2016년 4월 16일에 숨겨진 7시간……. 그동안 박근혜 정부에 쌓인 불만과 분노는 사실 이 지면으로 모자를 것이다.

 

지금 같은 시국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유의미 할 지 모르겠다. 만약 쇼의 주인공이 연기를 잘했더라면, 뒤돌아선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대본이었다면, 기자들의 질문을 겸허히 받아들일 자세를 보여줬더라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야했더라면 어떠했을까?  이것이 너무 큰 바람이라면 영화 별점 평가의 별 세 개 정도 줄 수 있는 쇼였다면 지난 토요일의 풍경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나의 사후적 해석이지만 그래서 별점을 줄 수 없는 쇼였기에 광화문이 더 뜨거워 질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듯 대국민 사과라는 쇼의 리뷰는 냉랭했지만 거리의 시민은 뜨거웠음이 이번 사건의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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