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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대의 어느 날, 위빠사나를 만나다

이 글은 내가 2016년 9월 28일부터 2016년 10월 9일까지 사단법인 담마코리아에서 주최하는 위빠사나 명상 코리아에 참여하여 경험한 일들을 토대로 쓴 것이다. 무엇보다 이 글은 그 경험을 글로 정리할 필요에서부터 쓰였다. 그 점에서 개인적인 글이고, 아직 미완성의 글이다. 추후에 생각을 더 정리한 이후에 보충할 것이다.
by 박범기 posted Oct 11, 2016 Views 983 Likes 0 Replie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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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갈 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든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미친놈인 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미친놈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대뜸 명상하러 열흘 동안 떠나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미친놈이라는 사실에 대해 나는 조금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나는 그것을 긍정하고 싶다. 적극적으로 나의 삶을 만들어나가길 선택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삶의 서사를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는 분명 미친놈이다. 그리고 내가 미친놈이라는 사실이 때때로 좋다. 그러면 된 거지,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마르크스가 좋아했다던 단테의 말을 자주 마음에 새긴다. “제 갈 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든.”[1]

 

지난 몇 달 사이 몇 가지 일들이 있었다. 개인적인 일이지만, 간단히 설명을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지난 7월 중순에 논문을 끝냈다. 그리고 거의 곧장 취업을 했다. 취업을 하고, 일을 하다가 한 달 반 만에 그만두었다. 상사 때문이었다. 그 상사가 특별히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뭐랄까, 한국 사회 평균적 꼰대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열에 여덟이나 아홉은 졸라 욕하면서 그럭저럭 참고 다닐 수 있을 수준의 어려움이었던 것 같다. 나는 여덟이나 아홉이 아니었다. 굳이 더 다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만 뒀고, 놀았다. 사실 마음 편히 놀지도 못했다. 그 사이 논문을 요약했고, 그 내용을 토대로 발표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글들을 조금 썼고, 책을 읽었다. 그러다가 지난 9월 28일에 사단법인 담마코리아에서 진행하는 위빠사나 명상 프로그램에 다녀왔다. 열흘 짜리 프로그램이었다. 적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갔다 왔다. 열흘의 시간은 나에게 작은 변화를 주었다. 아주 작은 변화지만, 분명히 의미 있는 변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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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에 있는 담마코리아 센터

 

 

위빠사나, 감각을 바라보는 명상

 

아마도 당신은 위빠사나(vipassanā)라는 말을 처음 들어봤을 것이다. 위빠사나는 빠알리어이다. 빠알리어는 인도아리아어에 속하는 언어이다. 붓다의 설법이 빠알리어로 구전되어 기록되었고, 그래서 불교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언어이다. “위빠사나(vipassanā)는 ‘vi’라는 접두어와 ‘passanā’의 합성어이다. ‘vi’는 ‘분리’ ‘관통’ ‘강조’를 의미하며 ‘passanā’는 ‘보다’라는 기본적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위빠사나의 의미는 ‘관통하여 보는 것’ 또는 ‘꿰뚫어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무엇을 꿰뚫어 보는 것일까? 감각을 본다. 이 명상법은 몸 안에 있는 감각을 바라보는 명상법이다. 그러면서 몸에 있는 수많은 감각들이 끊임없이 생겨났다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실재하는 몸의 감각이 사실은 한 순간의 현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아가 세상의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 명멸하는 현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것이 이 명상법의 핵심이다.

 

 

감각에 집착하지 않기

 

가만히 감각을 지켜보다 보면 감각이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순간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알게 된다. 모든 감각은 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을.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이 감각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감각은 하나의 현상이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단순한 현상이다. 가만히 감각을 지켜보다보면 그 사실을 알게 된다. 몸의 특정한 부분에서 어떤 감각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 감각은 영원하지 않다. 어느 순간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또 다른 감각이 일어났다 사라진다. 감각은 끊임없이 변한다. 감각 뿐 아니다. 만물은 끊임없이 변한다. 아니짜 anicca. [3] 한 순간도 같지 않다. 이 순간을 근거로 하여 다음 순간을 예상할 수 없다. 이 순간은 이 순간일 뿐이고, 다음 순간은 다음 순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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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세속적 쾌락의 동산>

 

 

하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지금 순간보다 더 나은 다음 순간을 원한다. 그래서 좋은 감각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더 많이 경험하기를 원한다. 천국이 천국인 이유는 천국에는 좋은 감각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좋은 감각을 원하는 사람들의 상상이 천국을 지어낸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끊임없이 좋은 감각이 이어지기를 원한다. 그러면서 좋은 감각들을 갈망craving한다. 하지만 갈망은 채워지지 않는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 일정한 감각이 충족되면, 더 강한 감각을 갈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감각을 충족하더라도 다음 순간에 또 다른 감각을 갈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결핍이 생긴다. 감각을 만족시키려 애쓰는 일은 깨진 항아리를 채우는 일과 같다. 아무리 채워도 깨진 항아리를 채울 수 없다. 결핍은 이어지고, 결핍에서 고통이 생긴다. 그리고 고통을 잊기 위해서 더더욱 갈망한다. 더 강한 감각을 갈망한다.

 

강한 감각만을 받아들이다보면, 살아가는 일이 감각을 느끼는 것에 한정되어 버리는 순간이 온다. 더 강한 감각을 몸으로 느끼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살아가는 일의 즐거움이라 믿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똥을 먹는 것으로서 성적 쾌락을 얻는다고 한다. 누군가 자신의 입에 똥을 싸주기를 원한다고 한다. 그리고 누가 자신의 입에 똥을 싸면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먹는다고 한다. 똥이 주는 감각적 즐거움에 중독되어 버렸기 때문에 미친 짓거리를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극단적인 예이다. 그렇지만, 감각 중독은 일상적이다. 담배에 중독되거나, 술에 중독되는 경우, 사실 담배나 술에 중독되는 게 아니다. 담배나 술이 주는 감각적 즐거움에 중독되는 것이다.

 

감각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감각이 고정된 것이라 믿어버리면 감각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갈망은 커진다. 거기에서 결핍이 생기고, 결핍되기 때문에 고통이 생긴다. 그리고 다시 또 다른 갈망을 불러일으킨다. 더 강한 감각에 대한 갈망 말이다. 감각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고, 감각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감각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갈망이 사라진다. 모든 감각은 일어났다 사라지는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감각을 채우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일어난 감각을 바라보고, 받아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결핍이 생기지 않는다. 고통이 덜하다. 감각은 현상일 뿐이다. 좋은 감각이든 나쁜 감각이든 한 순간의 현상에 불과하다. 다음 순간에는 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감각도 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모든 감각이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고, 그 현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면 어느 감각에도 집착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이 점에서 위빠사나 명상은 모든 종류의 감각 중독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특정한 감각에 대해 어떠한 집착도 불러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구원은 내 스스로가 이루어야 한다.

 

나는 왜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을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먼저, 마음속에서 딱딱한 응어리 하나가 계속 만져졌다. 꺼내고 싶었지만, 아무리 애써도 꺼낼 수 없는 응어리였다. 때때로 거기서 심한 통증이 배어 나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팠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다른 하나는, 내가 스스로 바로 서지 못하고 주위 환경에 따라 너무 쉽게 휩쓸린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의 중심이 없었다. 그래서 자꾸만 주위 환경에 따라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렸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도 되지 않았고, 그럴수록 원하는 것만 많아졌다. 불만은 불만대로 쌓이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이래서는 안 될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너무 강했다. 사실 마음의 문제이다. 내 마음이 너무 요동치고 있었다. 요동치는 마음을 내 마음대로 진정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변화가 필요했다. 그것이 위빠사나 명상 프로그램에 참석한 이유였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나의 구원을 위해 위빠사나 명상을 하게 되었다.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나를 구원해준 것 같다. 물론, 내가 이 마음을 꾸준히 지켜나갈 수 있을지는 아직은 장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분명 어떤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유의미한 변화이다. 무엇보다 나에 대해 수용적인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스스로에 대한 중심이 잡혀간다. 서른이 넘은 나이면서도 변변한 직장도 없이 잡글이나 쓰면서 간당간당하게 먹고 사는 입장이지만, 나는 그런 나를 받아들이고, 그런 나의 삶을 받아들인다. 그럴 수 있게 되었다.

 

지금으로서는 다음 순간에 대해 쉽게 말하기는 어렵다. 다음 순간에 어떻게 될지 지금 순간으로서는 알 수 없으니까. 그렇지만, 지금으로서는 긍정적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나는 지난 열흘의 시간들을 내 삶에 뿌리내리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메타노이아metanoia. [4] 정말이지, 나는 나의 마음을, 나의 삶을 돌리려 하고 있다. 지난 시간의 익숙한 삶으로부터, 다른 삶으로 방향을 전환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지난 열흘의 시간은 내 삶을 바꾸게 된 어떤 계기가 된 것 같다. 열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몇 번 포기하고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애써 참았다. 이 시간이 끝나면 얻는 것이 분명히 있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열흘 후. 많은 것들을 얻었다. 분명히 이 시간은 나에게 있어 변화의 계기가 된 것 같다. 서른 살.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일 테다. 예수가 공생활을 시작한 나이가 서른이고,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나이가 서른 다섯이다. 삶에 있어 소중한 삼십대의 어느 날, 나는 위빠사나를 만나게 됐다. 이게 앞으로의 나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지금의 나로서는 장담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나에게 있어 유의미한 시간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Notes

  1. 단테의 『신곡』, 「연옥편」에 있는 말이다. 마르크스는 이 말을 『자본론』 1판 서문에서 인용했다. 원어는 다음과 같다. Segui il tuo corso, e lascia dir le genti.
  2. 임승택, 『위빠사나 수행론 연구 - 빠띠삼비다막가의 들숨, 날숨에 관한 논의를 중심으로』, 경서원, 2004.  
  3. 무상無常이라고 번역되는 말의 빠알리어 원어이다. 무상이라는 번역어는 영원한 것이 없다는 뜻이다. 영원함이 없다는 말은 삶의 허망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아니짜라는 말은 변화의 의미에 강조점이 있다. 모든 현상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은 허무주의적인 태도가 아니다. 매순간 변하는 실재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현실적인 태도이다.
  4. 보통 회개로 번역 되는 이 말의 원 뜻은 마음을 돌린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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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문화평론가. 독립연구자. 중앙대학교 문화연구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pbk02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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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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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찬 2016.10.22 18:44
    "서른이 넘은 나이면서도 변변한 직장도 없이 잡글이나 쓰면서 간당간당하게 먹고 사는 입장이지만" ;;;
  • be
    bearinlove 2019.07.24 16:33
    좋은글 감사합니다. 많이 와닿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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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른이 넘은 나이면서도 변변한 직장도 없이 잡글이나 쓰면서 간당간당하게 먹고 사는 입장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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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글 감사합니다. 많이 와닿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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