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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휴머니즘이 아니다

by 이종찬 posted Oct 07, 2016 Views 2199 Likes 5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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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를 비관한 한 할아버지가 지하철 선로에 몸을 던진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열차는 그의 하반신만을 짖이겨 으깨 지나가고 간신히 목숨이 붙어있던 할아버지는 급히 응급실로 이송되어 온다. 해당 병원에 있던 응급의학과 의사는 겨우 그의 생명만은 지켜낸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다리는 되돌릴 수 없는 상태. 할아버지가 신음한다. 나를 죽이든지, 아니면 다리를 돌려주시오.

 

이 응급의학과 의사는 어느 강연회에서 자신이 한때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려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대뜸 고백한다. 연애 실패, 부모님과의 갈등, 미래가 보이지 않는 일상. 그러나 앞선 할아버지의 에피소드를 들려준 뒤 그는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말한다. 자신의 응급실 경험을 토대로 얼마 전 출간했다는 에세이집의 첫 문장이 “저는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였다고도 한다. 그리고는 생사의 문턱을 오가는 환자들을 지켜보며 그것이 배부른 사치였다고 토로한다. 청중은 감동하며 박수로 화답한다. 오픈 스피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청중은 생명의 숭고함과 고귀함에 대해 가슴 벅차할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그것이 ‘휴머니즘’이라고 생각한다.

 

응급의학과 의사에게는 미안하지만, 솔직하게 말하건대, 좀 역겨웠다.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표현의 수위가 세지만 이것은 정서적인 반응이 아니라 생리학적인 반응이다. 또는 미적 판단이 아니라 윤리적 판단에 가까운 것이다. 강연자가 언급한 저 에피소드에는 이상한 단절 혹은 절단의 계기가 있다. 긴급 처치를 마치고 깨어난 할아버지가 피를 토하며 뱉어냈다는 저 결정적인 질문, 나를 죽이든지 아니면 다리를 돌려주시오. 응급의는 강연 자리에서 할아버지의 이 절규에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고 곧바로 자신의 개인적 서사로 점프한다. 그리고 인간의 생명에 대해 한때나마 하찮고 허투루 여겼던 자신의 과거를 고결하게 반성한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를 두고 ‘휴머니즘’이라 생각하는 끈질긴 관성 같은 것이 있는 듯하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동의할 수도 없다. 혹여 나 하나가 동의한다 하더라도 존재론적 차원에서 결코 합의될 수 없는 사안이라 믿는다. 내게 휴머니즘이란, 저 의사의 말처럼 생명의 숭고함과 고귀함 자체를 축성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든 사례를 빌어 말하자면, 자살 시도 이후에 남겨진 것들, 이를테면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하려 한 할아버지가 기적적으로 살아나 이번에는 두 다리조차 없이 여전히 달라질 것 없는 생계의 어려움을 그대로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 노인빈곤률 50%에 육박하는 대한민국 (사회 없는) 사회에서 '노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등의 질문에 회피하지 않고 응답하는 것, 그것이 말의 가장 바른 의미에서 '휴머니즘'이다. 때문에 의사의 입장은 휴머니즘이 아니라 생명주의다. 생명 그 자체에 대한 기이하리만치 맹목적이고 물신주의적인 (묻지마) 찬양. 혹은 나르시시즘이다. 결과적으로 할아버지의 저 결정적인 인생사는 고작해야 응급의 개인의 허약한 윤리적 에토스를 교정해주는 하나의 케이스 차원으로 졸아들어버리고 만다.

 

요즘 들어 잠자리 도중 심야에 잠이 깨어 자주 눈을 뜨게 되곤 한다. 그 순간 묘한 죽음의 감각 비슷한 것이 딱히 형체도 없이 스멀스멀 어딘가에서 배어나온다. 이 또한 오해가 없어야 하겠다. 자살충동이 강해진다기보다는 이 세계를 감촉하는 리얼리티에 대한 실감이 옅어진다는 말이다. 그리고는 거의 대부분 다시 잠을 청하기가 힘들어지고, 그래서 그만 뜬 눈으로 밤을 새하얗게 지새우게 되는 경우가 잦다. 이상한 나른함 끝에 별 생각 없이 티비 리모컨을 켰으나 브라운관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나를, 우리를 더욱더 상심케 만든다.

Who's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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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회연구소 운영위원. 문화연구 집단 '문화사회연구소'에서 '문화연구자'로서보다는 '비판적 인문주의자'(critical humanist)로서의 정체성을 보다 강하게 자각하는 존재론적 긴장 혹은 모순에 빠져 있다. 아카데미즘적 글쓰기(논문)와 신변잡기식 수필, 그 중간 정도의 글쓰기 양식이라 할 '비평적 에세이'의 존재론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대학원 영문과에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휴머니즘'(humanism) 개념을 방법론으로 삼아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민족(nation)으로서의 '코리안'에 대한 표상을 비교검토하는 학위논문을 지지부진 준비중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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