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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과 2층 계단 사이에서 : 세대, 갈등/연대

by 이종찬 posted Aug 29, 2016 Views 238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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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갈등.jpg

 

 

요즘 같은 시대의 한국 사회에서 ‘세대 연대’라는 말이 현실적으로 성립 가능할까. ‘세대 연대’. 통사론적 차원에서는 흠결이 없지만 의미론적 차원에서 지금 여기의 대한민국에서는 아무래도 어색해질 수밖에 없는 표현일 것이다. 세대 간 연대 가능성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는 ‘세대 갈등’ 프레임에 익숙해져 있는 듯하다. 단적으로 얼마 전 정부가 앞장서서 시행하고자 무던히도 애를 쓴 ‘임금피크제’ 도입 논의를 보라. 청년 실업이 장기화・구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장년층의 연봉을 삭감해 청년층 일자리를 확대하겠다는 ‘임금피크제’는 결과적으로 장년 세대와 청년 세대를 한 큐에 명확한 적대 관계로 갈라쳐버린 신의 한 수가 되었다. 그렇지만 장년층의 삭감된 연봉이 청년층에게 누수 없이 이전된다는 논리적 근거에 대해서는 여러 분석들을 종합해 보건대 회의적이거나 불투명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여 결국 남은 건 애꿎은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 사이에 ‘조장(助長)된’ 적대 및 불화 관계는 아니었을런지.

 

문화사회연구소에서 지난 두 달간 돈의동 쪽방촌 주민들을 대상으로 총 8회차 인문학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했다. 돈의동 쪽방촌은 종로2가와 3가 사이에 위치한 맥도날드 매장 바로 뒤편에 위치해 있는 곳인데, 이번에 쪽방촌 인문학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하면서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풍경 하나가 있다. 장소는 쪽방촌 인근 맥도날드 지점. 이곳 맥도날드의 장소성은 다소 특이하다. ‘탑골 공원’으로 상징되듯 노인 분들이 가장 대중적으로 당신들의 여가를 즐기는 곳인 만큼 여기 맥도날드 매장에서는 대다수의 손님들이 노년층이었다. 청년층이 아니라. 어느 날 오후, 예정된 인문학 강의에 들어가기 직전 급하게 끼니를 때우기 위해 방문한 매장에서 받은 첫인상은 그것이었다. ‘햄버거와 젊은이’ 대신 ‘햄버거와 어르신들’이라는 조합 또한 이곳에서는 가능하구나. 조금 신선했다. 그런데 주문한 햄버거와 아이스커피 한잔을 들고 2층으로 올라가니 그곳엔 조금 다른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2층의 고객층 대부분은 청년층이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누군가가 1층엔 어르신들, 2층엔 청년들이 앉도록 안내 및 유도한 것도 아닐진대 말이다. 1층과 2층 사이에 형성된 묘한 ‘세대 간 장막’이랄까. 엘리베이터가 없는 매장 구조 상, 계단을 오르내리는 데 있어 어쩔 수 없이 어르신들에게 작용할 최소한의 심리적 거부감 때문이었을까. 딱히 자리 잡고 앉아 햄버거를 먹을 만한 적당한 테이블을 찾지 못하고 있던 중 다시 1층으로 내려가 용케 다닥다닥 붙은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을 수 있었다.

 

나중에 나의 이 경험을 어느 지인에게 들려주었더니 그의 반응은 다소 냉소적이었다. ‘굳이 청년층과 노년층이 만나야 할 이유가 있나?’ 당시에는 친구의 그 말에 딱히 뭐라 적절한 대답을 하지 못했지만, 묘한 껄끄러움을 느꼈던 감각만큼은 어렴풋이 남아있다. 그의 말처럼 “굳이” 만남을 강제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역으로 “굳이” 만나지 말 것을 요구할 이유 또한 없지 않나, 돈의동 맥도날드 매장의 경우에서 일말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듯 서로의 일상의 환경에서 다른 세대가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마련된다면 좋지 않을까, ‘리퀴드 인카운터’(liquid encounter), 자연스런 마주침 혹은 조우. 얼추 그런 생각을 당시 머릿속으로 주섬주섬 흘러 넘겼던 것 같다.

 

장면 1

 

국가에서 지급하는 노령 기초연금과 동사무소에서 주관하는 ‘공공 근로’ 참여비로 노년의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1938년생 춘천 거주 여성이 있다고 하자. 넉넉치 않은 생활비 때문인지 주위 또래 친구들과 별다른 교류도 없이 고립된 채 만성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이 여성의 중요한 여가활동 중 하나는 경춘선 지하철을 타고서 남춘천역에서 종점인 상봉역이나 망우역 사이를 여행하는 것이다. 재래시장에 들어가 저렴하지만 인심 좋은 국밥 한 그릇을 말아먹고 시장 인근을 휘휘 돌거나, 때로는 서울에 혼자 살고 있는 1977년생 아들에게 전화를 넣어볼 때도 있다. 당신이 지금 서울에 와 있다는 얘기는 밝히지 않는다. 아마도 서울에서 자신의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을 아들에게 부담을 줄까 걱정해서일 것이다. 아들은 나중에 그 사실을 1968년생 누이의 입을 통해 뒤늦게 확인한다. 그리고는 상상해보게 된다. 80여분 남짓 소요되는 경춘선 구간 철로 위를 달리는 열차 안에서 그 여성이 바라보는 창 밖 풍경은 대관절 어떠한 것일까, 하고. 어머니 세대의 문화적 감수성과 일상 감각에 대해 자신이 아는 것이 정말 없구나 새삼 인지하게 된다. 뒤이어, 다른 세대의 두 주체가 “굳이” 만나야만 할 상황을 강제할 필요는 없지만, 동시에 “굳이” 그들이 만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지 않겠는가 생각해본다. 그러므로 문제는 ‘어떻게’ 만나는가, 가 아닐까. ‘만나야만 한다’ ‘만날 필요가 없다’가 아니라.

 

장면 2

 

한국의 대학에서 영상을 전공한 대학생들이 있다. 스스로 ‘잉여’ 인생이라 부르던 그들은 고단한 한국에서의 일상을 뒤로 하고 무모한 유럽 여행을 기획한 뒤 실행에 옮긴다. 자신들이 가진 영상제작 능력으로 유럽 숙박업계의 홍보영상을 만들어주며 1년간 무일푼으로 한번 버텨보겠다는 것이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그들의 능력은 서서히 업계 내에서 유명세를 얻게 되고 마침내 영국의 한 숙소로 초대를 받아 건너가게 된다. 영국에는 ‘아르코’라는 밴드가 있는데 그들은 마지막 앨범을 끝으로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잉여 청년들 중 하나가 ‘아르코’의 광적인 팬이다. 그들은 아르코의 뮤직비디오 제작을 자청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뮤직비디오 작업은 좀체 진척되지 않고 타국에서의 장기간 여행 등으로 심신은 지쳐만 간다. 결국 그들은 뮤직비디오 제작을 포기하기로 결정한다. 그들은 ‘아르코’에게 미안하다는 메일을 보낸다. 그리고 답장을 받는다. 거기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우리 늙은이들에게 미안해 마라. 어차피 은퇴한 우리는 이제 오래된 선술집에 앉아 맥주나 마시며 스포츠 채널이나 돌려 볼 나이다. 뭐, 그러다 우연히 너희의 소식을 TV에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그럼 옆에서 닉과 데이브가 사람들한테 그러겠지. 와우! 나 쟤네 만났어. 스스로 잉여인간이라 부르는 녀석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두 가지가 인상적이다. 첫째, 그들은 청년들을 위안한다. ‘우리 늙은이들에게 미안해 마라.’ ‘우리는 이제 오래된 선술집에 앉아 맥주나 마시며 스포츠 채널이나 돌려 볼 나이다.’ 스스로 ‘잉여’라 칭하는 청년세대의 등장 앞에서, 이제 곧 “은퇴”를 준비하는 이들이 당당함・초연함 대신 모종의 연대책임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둘째, 그들은 청년들을 응원한다. ‘스스로 잉여인간이라 부르는 녀석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문제는 ‘어떻게’ 만나는가, 일 것이다. ‘만나야만 한다’ ‘만날 필요가 없다’가 아니라.

 

※ 장면 1은 사회적 (논)픽션이다. 장면 2는 다큐멘터리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의 이야기다.

Who's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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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회연구소 운영위원. 문화연구 집단 '문화사회연구소'에서 '문화연구자'로서보다는 '비판적 인문주의자'(critical humanist)로서의 정체성을 보다 강하게 자각하는 존재론적 긴장 혹은 모순에 빠져 있다. 아카데미즘적 글쓰기(논문)와 신변잡기식 수필, 그 중간 정도의 글쓰기 양식이라 할 '비평적 에세이'의 존재론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대학원 영문과에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휴머니즘'(humanism) 개념을 방법론으로 삼아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민족(nation)으로서의 '코리안'에 대한 표상을 비교검토하는 학위논문을 지지부진 준비중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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