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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의 ‘저항’ 정신?

by 김성윤 posted Aug 03, 2016 Views 456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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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쇼 미 더 머니> 시즌 5가 끝났다. 비와이가 우승했고 씨잼과 슈퍼비는 결승 무대에 오른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마지막 방송의 순간 최고 시청률은 (케이블TV로선 만족할 만한) 3.6%였다. 시즌마다 시청률 이상의 화제를 몰고 다닌 건 두말할 나위 없다. 이제는 <언프리티 랩스타> 시즌3가 시작된다.

불과 몇 년 사이 힙합은 마니아들의 문화를 넘어 지극히 대중적인 문화가 되었다.

 

 

1.

 

2000년대 초반쯤이었던가, 이동연 선생의 권유로 그래피티 그룹을 따라다니며 에스노그라피 작업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모든 촉이 한 군데 집중해 있었다. 이 사람들에게서 어떤 저항적 코드들을 포착해낼 수 있을까.

 

미국 본토에서 그래피티는 멀쩡한 지하철이나 담벼락에 스프레이칠을 해대고 도망 다니는 ‘불법’ 문화라고 들었다. 작가도 몇 명 없었고, 그래피티 그룹이라곤 한 곳밖에 없었을 정도로 당시의 국내 그래피티 문화는 척박한 수준이었으며, 또 그만큼 ‘위험’한 것이기도 했다. 인터뷰이들이 가지고 있던 그래피티 작가로서의 자부심 역시 그와 같은 것들이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한 마디. “그래피티도 엄연한 예술이니까요.”

 

하지만 나는 글을 완성하지 못했다. 작업을 중단했던 가장 큰 이유는 해석 곤란한 어떤 상황에 맞닥뜨리면서 좌절했던 탓이 컸다. 쉽게 말해 이런 식이었다. 작가들은 미국 그래피티의 저항적 실천을 흠모했고 동경했으며 닮고자 했다. 그런가 하면 그들은 주류 상업문화와 손을 잡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선 다양한 색상의 스프레이를 구할 수가 없어요. 비싼 돈을 들여서라도 일본에서 사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광고에 찬조 출연하거나 기업 후원을 받을 수밖에 없죠.”

 

예술이 시장에 의존한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어쩐지 이 두 대목은 이율배반처럼 느껴졌다. 그때만 해도 이런 모순이 그 자체로 글감이 된단 사실을 몰랐던 나는 도무지 그럴 듯한 언어를 찾아내기 힘들었다. 어쩌면 그래피티=저항, 또는 힙합=저항이라는 당위적 강박에 빠져서 저항적이지 않은 힙합 문화라는 모순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들에게 저항이란 무슨 ‘뜻’일까. 저항의 ‘대상’은 대체 무엇일까. 저항이란 게 과연 ‘중요’한 행위이기나 한 걸까.

 

 

2.

 

요즘 힙합 문화에 저항이냐 아니냐를 묻는다면, 바로 그 순간 꼰대라는 비아냥을 살지도 모른다. 세상에! 소비대중문화에서 저항이라고?! 그냥 웃고 즐기면 될 것을! 게다가 전해 듣기로 애초부터 힙합은 저항 정신과 거리가 있다고 하니,[1] 잘 모르고 덤벼들었다가는 꼰대도 그냥 꼰대가 아니라 팩트도 모르는 꼰대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힙합에 저항 정신이 사라졌다거나 변질됐다고 아쉬워하는 건 (관점에 따라선) 어불성설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힙합에서 저항적인 어떤 것을 읽어내려고 한다. 아마 어떤 기대 심리 같은 게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학기 강의에서 학생들에게서 에세이 과제물을 받았을 때 살짝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과제 주제는 오늘날 주류 문화에 도전하는 문화가 무엇인지 선정해보라는 것이었는데,[2] 적잖은 학생들이 힙합 문화를 주류 문화에 응전하는 문화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힙합=저항이라는 모종의 신념 같은 게 들러붙어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대중음악판에서 주류는 아이돌이고 비주류는 힙합이었다.

 

하지만 나로선 오래 전에 품었던 의문이 되살아날 수밖에 없었다. 힙합이 저항 문화라고? 실제로 한국에서 힙합 문화가 저항적인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어떤 면에선 그렇게 볼 수 있지만, 또 어떤 면에선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서슴없이 욕설을 내뱉고, 상대를 존중하는 도덕적 커뮤니케이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모든 이가 금기시하는 배금주의적 욕망마저도 여과 없이 드러낸다. 그럴 때 보면 힙합이 가지는 스타일적 저항은 확실히 신선하다. 불문율이라 할 만한 것들을 위선으로 몰아넣으면서 일말의 쫄림도 없이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말 그대로 스웩이다.

 

 

3.

 

이런 태도를 저항적인 어떤 것으로 연결 지을 수 있을까. 그래서 힙합이 저항 문화냐, 라고 물으면 여전히 애매한 반응만 돌아온다. 그들의 스웩 등등을 저항이라 부르면 저항이 아니라 말하고, 저항이 아니라고 하면 이번엔 저항이라고 강변하는 식이다. 대체 어쩌란 것인지…. 어쩌면 여기서 스타일적·문화적 저항과 소위 진보 꼰대(?)들이 선망하는 정치적 저항 사이의 구분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해, 스타일적으론 저항적이지만 정치적 저항까진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 힙합 문화를 소비하고 또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민감해하는 부분은 ‘저항’ 자체라기보다는 ‘정치적 저항까지’라고 했을 때 바로 그 ‘까지’에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문화적 저항이 왜 굳이 정치적인 문제로 이어져야 하는 거지?’ 꼰대들이 보기에 스타일적 저항은 그저 반항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그들한테는 한국사회에 뿌리 내린 위선을 조롱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있어 보이고 또 그 자체로 충분히 개념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너는 아이돌이나 빨고 있지? 나는 남들과 달라. 공장 생산품 같은 음악 따윌 뭐 하러 들어? 아티스트의 진정한 음악을 즐길 줄 알아야지. 뭘 또 그렇게 점잖은 척해? 적어도 나는 착한 척 같은 거 안 해.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웃기시네. 봐봐, 솔직히 돈 없이 안 되는 거 없어. 가식 떨지마.

 

힙합 문화가 던지는 조롱에 최종 미덕이 있다면 그건 솔직함에 있는 듯하다. 그들은 그걸 진정성이라 여기곤 한다. 그들의 지적에 정곡이 찔리지 않는가. 그게 아니라면, 그들의 당당함에 통쾌하지 않은가. 힙합 문화는 반(反)도덕의 가장자리에서 온갖 이율배반적인 것들에 도전하고 있다.

 

 

4.

 

나는 그동안 신봉해왔던 저항, 정치적인 의미로서의 저항이란 관념을 폐기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고민하고 있다. 정확히 말해, 스타일적 저항이 정치적 저항과 직결될 수 있다는 소망을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닐지 고민된다. 심지어, (숱한 문화연구자들의 관성적 믿음과 달리) 애초부터 그 둘은 서로 무관했던 게 아니었을까 의심스럽다.

 

누군가는 스타일적 반항만으로 실존적 진정성을 다했다고 착각하는 경향을 ‘스노비즘’이라 말했던 바 있다.[3] 솔직함이 최대 무기여서일까. 마치 힙합의 스놉스러움을 까놓고 드러내기라도 한 것처럼 여성혐오적인 메시지로 구설에 오르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곤 한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에게 지탄 받았을 정도로 힙합 문화에 지배적인 마초적 분위기는 확실히 속물스럽다. 그들 스스로는 ‘이 얼마나 스웩 넘치는가’라고 자위하면서. 물론 힙합씬 소수에만 해당하는 문제일 수 있으니 더는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자. 침소봉대가 되면 안 되니까.

 

정말 논쟁이 될 만한 것은 힙합 문화에 상당 부분 팽배해 있는 자기 내면으로의 집중 경향이다. 솔직함이 미덕이니 자기 이야기에 충실하고 또 사적인 세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자연스러운 순리일지 모른다. 하지만 부모나 가족과 맞서기보다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강조하는 메시지들은 아무리 플로우가 뛰어나고 라임이 맛깔스러워도 어딘지 껄끄럽다. 가족 사랑하는 마음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추상적인) 기성세대에 맞서면서도 정작 (구체적인) 가족이라는 울타리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는 건 이율배반적이지 않은가. 엠씨들이 기성 상품들과 달리 진짜 자기 이야기를 하겠다면서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통이 작아 보인다. 물론 그들 마음의 진정성을 하찮게 여기는 건 절대 아니지만.

 

힙합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 리얼한 상품을 소비하고 열광한다. 상품이란 말이 거부감이 들 수 있겠지만, 힙합 문화가 아이돌 문화 등과 달리 상업적 이해관계로부터 벗어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착각도 없다. 돈 많다고 자랑하면서 자기처럼 성공할 수 있다고 설파하는 엠씨가 이미 스타덤에 오르지 않았나. 심지어 대형기획사에선 아이돌 멤버로 언더그라운드의 힙합 유망주들을 스카웃하고 있다. 그들이 선 긋고자 했던 기성 대중문화와의 경계가 그만큼 흐릿하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솔직히 말해, 거의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자신이 힙합을 소비하고 있다는 것쯤은 다 알고 있다. 단지, 그들은 가장 진정성 있고 가치 있는 상품의 소비자로서 자기 자신을 상상하고 있을 뿐이다.

 

 

5.

 

우리는 우리 시대에 가장 저항적 스타일이라 할 수 있는 힙합을 통해서 저항이라는 언어가 오늘날 어떤 한계 상황에 맞닥뜨렸는지를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애초의 질문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이들에게 저항이란 무슨 뜻일까. 저항의 대상은 대체 무엇일까. 저항이란 게 과연 중요한 행위이기나 한 걸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이쯤이지 않을까 싶다. 오늘날 정치라는 언어는 대체로 불문에 부쳐지고 있다는 사실. 좀처럼 불붙지 않는다는 사실.

Notes

  1. 강일권, “힙합에 대한 오해와 진실: 힙합은 저항과 가난 속에서 태어난 음악 (2)”, <고려대 대학원신문> (2016년 7월 21일 검색)
  2. 사실, 도전하는 문화를 찾을 수 없다면 왜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지를 묻는 과제이기도 했다.
  3. 아즈마 히로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 오타쿠를 통해 본 일본 사회』, 문학동네, 2007.

Who's 김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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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및 운영위원입니다. 주전공은 사회학을 하고 있고 최근에는 플랫폼 자본주의, 도시재생과 민주주의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시간이 나는대로 연구소 홈페이지에 들러서 이용자 여러분들과 교감하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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