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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그리고/혹은 한나 아렌트

본 졸고는 김규항 선생의 지난 2월 1일자 경향신문 칼럼(‘더러운 여자는 없다’)에 촉발되어 작성된 글이었다. 지난 구정 연휴를 즈음하여 경향신문 측에 투고하였으나 게재불가 답변을 받은 글이기도 하다. 적지 않은 시간차가 발생해 버렸지만 당시의 문제의식만큼은 여전하다는 판단 하에 발표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by 이종찬 posted Jul 08, 2016 Views 275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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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를 위안부 ‘소녀’상으로 단일화하는 태도는 위험하다고 말한 김규항 선생의 문제적 칼럼(‘더러운 여자는 없다’)을 읽었다. ‘소녀’라는 단일화된 표상이 위안부 문제의 복잡다단한 국면을 설명해내는 데 결정적인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는 합리적인 우려가 엿보이는 글이었다. 이곳 민족(주의) 담론의 건강성을 위해 경청할 부분이 없지 않다 생각했다. 그간 선생의 글들을 통해 느끼고 배운 바 적지 않았다.

 

그러나 칼럼 후반부에 김규항이 인용한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문장들의 삽입은 실로 문제적으로 다가온다. 이 땅의 민족(주의) 담론에서 엿볼 수 있는 안이한 이분법적 사고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뒤이어 곧바로 이를 『제국의 위안부』와 자연스레 등치시키는 논리적 연결은 적지 않은 생략과 비약의 지점을 안고 있다 판단되었다. 때문에 묻고 싶어졌다. 많은 문장들 속에서 왜 하필 『제국의 위안부』 속 저 구절들이었을까. 김규항은 왜 꼭 저 구절들을 가져왔어야만 했을까. 일찍이 메이지가쿠인 대학 정영환 교수가 중요하게 제기했던 바 『제국의 위안부』가 상호간 모순적 서술이 혼재되어 있는 책이라면 특히나 이 책의 문장들을 빌어올 때 인용자는 각별히 주의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았을까. 때문에 우리는 김규항이 가져오지 않은, 따라서 결과적으로 숨겨진 『제국의 위안부』 속 핵심 주장에 대해서도 동시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두 정부 간 있었던 ‘위안부’ 문제의 “불가역적”이고 “최종적”인 문제를 둘러싼 첨예한 국면에서 김규항의 해당 칼럼(경향신문 2016년 2월 1일자)이 결과적으로 가시화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모호한 책 그러나 그래서 위험한 책 『제국의 위안부』에서 박유하가 강조한 핵심은, 1965년 한일회담 결과 한국 정부가 받은 ‘경제협력금’이 전쟁책임에 대한 배상이었으므로 손해배상 청구권이 사라졌고, 따라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 정부에는 ‘법적’ 책임이 없다는 데 있다. 이것이 『제국의 위안부』에서 필자가 이해하고 있는 박유하의 주요 주장이다. 이에 대해서 김규항 선생께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지 궁금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입장이 묘하게 교차하고 있다. 첫 번째,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의 ‘법적’ 책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 그리고 두 번째, 한국 민족(주의)의 폭력적 흑백논리는 “싸구려 정의”(김규항)에 불과하다는 입장. 필자가 과문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박유하, 김규항 그리고 장정일 등의 논자들은 전자의 입장에 대해 모호하거나 관대해 보이는 반면, 후자 쪽의 입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여러 곳에서 표 나게 강조해온 것으로 보인다. 재일조선인 서경식 선생이 오래전에 간파하였듯이, ‘아사히 신문’으로 대표되는 일본 진보개혁 진영의 소위 양심적 지식인들이 『제국의 위안부』에 대해 보인 절찬의 태도가 이와 무관할까. 자신의 윤리적 양심도 지킬 수 있고 뿐만 아니라 전쟁책임의 역사적 하중으로부터도 실질적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는 아니었을까.

 

일본의 ‘법적’ 책임, 나아가 ‘전후책임’ 일반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모호한 태도를 보이면서 동시에, 한국 민족(주의) 담론이 보다 섬세해질 필요가 있다 말하는 한국의 진보개혁 성향의 지식인들이 있다고 하자. 내부고발자라는 험난한 가시밭길을 스스로 선택했다며 ‘진보의 섬세한 윤리적 태도’라 상찬하는 평자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실제로 나는 언젠가 박유하를 두고 ‘한국의 한나 아렌트’라 고평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제국의 위안부 사태’ 담론이 자리한 맥락의 지형이 결코 간단치 않음이 가장 단적으로 드러난 지점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한국에서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논란은 심플한 ‘친일 VS 반일 프레임’이 아니라 좌파 혹은 일반적으로 진보라 평가됐던 진영 내부에서 발생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징후적이었던 것은 박유하를 옹호하거나 우호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논자들에게서 탈-민족주의적 경향성이 공통적으로 감지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그들의 탈-민족주의적 성향이 민족주의의 폐쇄성과 투박한 진영논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결국에는 사유와 판단의 한 준거로서 섬세하게 고려되어야 할 (‘민족주의’가 아니라) ‘민족’이라는 문제틀 자체를 손쉽게 괄호쳐버리거나 심지어는 폐기하려는 듯한 뉘앙스를 만만치 않게 풍긴다는 데 있었다. 이는 비단 필자의 노파심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뒤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발표하게 되는데, 저 유명한 ‘악의 평범성(banality)’이라는 개념을 소개한 이 책이 출간된 이후 그녀는 미국에 망명해 있던 같은 유대계 인사들뿐 아니라 가장 가까웠던 친구들로부터도 상상 이상의 격렬한 비난과 비판의 목소리에 직면하게 되었다. 기록이나 평전을 보면 이후 심리적 고립감으로 인해 아렌트 자신이 극심히 고통스러워했음을 알 수 있다.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이 공개되고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가진 1964년 인터뷰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있었음에도 그러했다. 그럼에도 불구 자신의 정당성 여부와는 무관하게 아렌트는 자신의 언행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누군가가 불필요하게 혹은 부당하게 상처를 받지는 않았을까 끝내 초연해하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슬픔”의 감정이 남았을 뿐이라고 속 깊이 토로했다. “그러니까 여기서 가져야 할 정당한 감정은 슬픔이라는 게 내 생각이에요. 그게 유일한 감정이죠. 자기만족의 감정이 아니고요!”[1]

 

박유하는 어떠했는가. 2014년 ‘프레시안’과의 인터뷰 당시 논란의 중심에 서기 시작한 박유하가 인터뷰어에게 “이번 사건으로 깊이 상처받았고, 가장 피해가 컸던 게 저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역시나 또 크게 충격을 받았다. 최근의 기사들을 통해 비치는 박유하의 모습을 보면 지금의 태도 또한 그때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박유하 선생이 ‘한국의 한나 아렌트’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아렌트는 아이히만 사태 당시 이를테면 “지금 상황에서 가장 피해자는 홀로코스트 희생자/생환자가 아니라 저, 한나 아렌트입니다.”라고는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차이가 결코 사소하지 않아 보인다.

Notes

  1. 한나 아렌트, 「아이히만은 터무니없이 멍청했어요」, 『한나 아렌트의 말: 정치적인 것에 대한 마지막 인터뷰』, 윤철희 역, 마음산책, 2016.

Who's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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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회연구소 운영위원. 문화연구 집단 '문화사회연구소'에서 '문화연구자'로서보다는 '비판적 인문주의자'(critical humanist)로서의 정체성을 보다 강하게 자각하는 존재론적 긴장 혹은 모순에 빠져 있다. 아카데미즘적 글쓰기(논문)와 신변잡기식 수필, 그 중간 정도의 글쓰기 양식이라 할 '비평적 에세이'의 존재론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대학원 영문과에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휴머니즘'(humanism) 개념을 방법론으로 삼아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민족(nation)으로서의 '코리안'에 대한 표상을 비교검토하는 학위논문을 지지부진 준비중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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