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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박근혜 화법, 헛소리에 담긴 모순적 징후들

이 글은 계간 ≪문화/과학≫ 2016년 여름호에 기고한 글이다.
by 김성윤 posted May 29, 2016 Views 767 Lik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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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로 전락한 박근혜 어록

 

글을 쓰기 전 잠깐 그런 생각을 해봤다. 2백자 원고지 80매 분량을 아예 ‘박근혜 화법’으로 채워보면 어떨까 하는. 뭔가 재기발랄한 글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러다 며칠 전 어느 자리에서 강연했던 녹취록을 받아보고는 생각이 확 바뀌었다. 분명 내가 말한 것일 텐데, 그리고 그걸 그대로 타자 쳤을 뿐일 텐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보기가 어려웠다.[1] 박근혜 화법과 나의 화법이 가진 상동성! 둘 사이에 다르지 않은 점을 발견하곤 애당초 계획을 접기로 마음먹었다. 게다가 정말로 박근혜 화법으로 글을 썼다간 독자들이 (독해가 아니라) 해독하는 데 폐만 끼칠 수 있으니 그런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는 게 나았다.

 

그런가 하면 묘한 잡념이 들어서 글쓰기가 버거운 면도 있다.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의 말하기를 비평한다는 게 과연 온당한 일일까. 물론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대통령 직분을 가진 사람이라면 충분히 비평 가능하다고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 대통령 말마따나 사람 나고 대통령 났지, 대통령 나고 사람 났나. 대통령이라서 특별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만큼 후진 생각도 드물다. 똑같은 사람이고 단지 추첨운이 좋아서 5년 동안 우리를 대표하고 있을 뿐 아니겠나. 대통령이라서 달라야 한다고 여긴다면, 그건 자기를 모시고 섬길 것을 기대하는 ‘그 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다.

 

박근혜 화법을 분석하고 비판한다는 건 그런 점에서 무척이나 고된 일이다. 그것은 어느 순간 나 자신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감춰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 대신 글이라는 기호 뒤로 나 자신의 맨얼굴을 숨겨 넣고만 있을 뿐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글이 써질 리가 있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대 총선에서 여당이 패배하면서 박근혜 화법에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던 정치적 비밀도 상당 부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결국, 본론은 일찌감치 써놓고도 이래저래 만지작거리다 부끄러운 자기 곤란을 드러내면서 겨우 겨우 서문을 시작하는 신세가 됐다. 단지 하나의 결심만 남았을 뿐인데, 그럼에도 우리는 그녀의 화법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비평은 결국엔 우리 자신의 부끄러움을 일깨우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전제하에서.

 

kfc.jpg

박근혜 번역기 페이스북 페이지 대문사진

 

Notes

  1. 해당 녹취록은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www.kccs.or.kr/110343 물론 몇 시간에 걸쳐 윤문한 결과물. 녹취록 원본은 세상에 공개되지 않을 것이다. ;)
  2. 「권력감시 박근혜, “제가 뭐라고 했죠?”」, <뉴스타파>, 2012년 12월 1일. (http://newstapa.org/591 , 2016년 4월 20일 검색)
  3. 「“아버지 후광, 알맹이 없는 연예인식 인기” ― ③지지율 2위 박근혜…‘이미지 정치’의 약점들」, <조선닷컴>, 2005년 9월 21일.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게재됐던 조선닷컴의 인물평은 흥미롭게도 오늘날 박근혜 비판자들의 주장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컨텐츠가 없다”, “박정희의 후광, 유신공주라는 비판”, “정치지도자보다는 연예인 같은 인기”, “한나라당 내 박근혜 전위대가 부족하다”, “정수장학회 등 재산 의혹”, “스킨십이 부족하다”, “물러서지 않는 고집”, “베일 가린 사생활, 시한폭탄 될 가능성”, “부드러운 리더십의 한계”, “비정상적인 성장과정”.
  4. 「2007년 대권주자 심리분석 시리즈 ③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 겸손, 인내, 흡인력 지닌 '내향적 감정형' 배신의 응어리, 과도한 '페르소나 동일시’ 해소해야」, 『신동아』, 2006년 7월호에서 재인용.
  5. 페이스북 「박근혜 번역기」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baggunetrans (2016년 4월 20일 검색)

Who's 김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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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및 운영위원입니다. 주전공은 사회학을 하고 있고 최근에는 플랫폼 자본주의, 도시재생과 민주주의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시간이 나는대로 연구소 홈페이지에 들러서 이용자 여러분들과 교감하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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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
  • profile
    김성윤 2016.05.29 20:05

    @최혁규 선추천 후감상 왕감사 하하하 호호호

  • profile
    최혁규 2016.05.29 20:36
    부지런히 따끈한 글을 올리니 그분께서 추천하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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