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사단법인 문화사회연구소

정치사회

‘유신의 기술’

※ 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2015년 12월호에 ‘문화사적 측면에서 돌아본 유신시대’라는 기획 주제로 기고한 글입니다.
by 김성윤 posted Nov 25, 2015 Views 922 Likes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Extra Form

유신시대의 문화적 풍경을 떠올리면 몇 가지 상투화된 이미지들이 있다. 귀 덮인 장발족들을 잡아 머리카락을 싹둑 자르고, 짧은 치마 위로 자를 대 치마 끝이 무릎 위로 20cm 이상이면 즉심에 넘기던 시대. 그리고 군부의 전제적 지배를 한국적 민주주의로 포장하는가 하면, 어니언스·키보이스·바니걸스를 양파·열쇠소년·토끼소녀로 강제 개명시키던 시대. 그 시대엔 그 어떤 문화적 삶도 불가능했을 것만 같다.

 

01-walking.jpg

 

유신을 통한 위기관리

 

대중문화 영역에서 유신시대는 보통 도덕적 엄숙주의와 문화적 민족주의로 특징지어진다. 도덕적 엄숙주의와 문화적 민족주의라 함은 각각 유교적 관습과 전통적인 것을 통해 대중문화에서 비롯되는 품행을 규율하고자 했던 관행들을 가리킨다. 물론 주지하다시피 여기에는 가부장제, 군부 독재, 반공주의 등 얼핏 봐도 이데올로기적인 공작이 결부되어 있었으며, 이와 같은 공세는 1975년 대마초 파동과 긴급조치 9호 등으로 정점을 찍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일반적으로는 박정희 정권을 통틀어 언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유신 체제 들어 대중문화에 대한 통제 정책에 미묘한 차이점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대중문화 영역에서 국가 권력의 개입은 정치적 검열과 진흥이라는 차원에 머물렀었다. 왜색이나 감상(sentiment) 풍조가 강한 대중문화 작품들이 금지되는 등 반일 감정과 산업화 의욕을 고려한 조치가 대부분이었지만, 실질적인 마지노선은 반공주의 이념과 군사 독재의 위풍에 위해를 끼치는가 여부에 달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유신헌법의 공포로 4공화국이 열린 1970년대에 와서는 대중문화에 대한 통치적 관심이 절정에 치닫는다. 1968년 1월에 있었던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과 김신조 일당의 남파 사건으로 인해 공안 정국이 조성되면서 유신으로 가는 길이 더욱 빨라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이었던 것은 대내적으로 독재의 장기화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고조되고 대외적으로 (유신 직후에 터진 오일 쇼크에 드러났듯) 고도성장의 한계가 노출됨에 따라 정치경제 다방면으로 위기의식이 고조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그 결과 새마을운동과 국민교육 등 국민들의 일상적 품행에 깊숙이 개입하는 ‘총동원 체제’가 수립되었음은 모두가 배워서 아는 바와 같다.


문화적 측면에서 보자면, ‘TV의 시대’라는 말이 상징하는 것처럼 산업화의 대량(mass) 체제는 대중(mass) 매체의 저변을 확장시켰고, 이는 가요와 영화를 넘어 대중문화에 대한 인식을 변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미국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서구 대중문화, 그리고 거기에 숨어 있던 자유주의적 감각은 군부 독재 정권 및 노동집약형 산업구조와는 근본적으로 불화를 일으키는 것이기도 했다. 이렇게 문화적 삶에서 시각적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감에 따라 대중문화에 대한 검열 기조도 부분적으로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이 시기 있었던 장발 단속과 미니스커트 단속 그리고 대중문화 전반에 걸친 억제 정책 역시 이와 같은 문화적 맥락 속에서만 파악이 가능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역사적 쟁점들은 1970년대가 정치·경제·문화 다방면에서 모종의 위기 상태로부터 시작했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한편, 그 같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선 대중들의 문화적 삶을 통제하는 것이 급선무였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떠한 정책을 시도하든 그것은 이념과 현실, 당위와 실제, 그리고 과거와 현재 사이 등에서 적잖은 동요를 일으킬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유신시대의 문화사적 측면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곤란하다고 할 수 있는데, 오직 가능한 표현이 있다면 그것은 아이러니에 준하는 언어들이 아니고선 불가능하다.

 

초자아의 외설적 실체

 

02-skirt.jpg 유신시대의 엄숙주의와 민족주의는 그 자체로 모순적이었다. 단적으로 검소하고 소탈했던 이미지의 대통령이 궁정동 안가에서 엥카와 시바스 리갈을 끼고 있던 풍경은 당대를 억누르던 초자아가 얼마나 외설적이었던가를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장면은 유신 시대 문화 지형 자체에 내재된 구조적 모순의 규모와 범위에 비하자면 단편적인 것에 불과하다.


도덕적 엄숙주의는 1970년대 호스티스 문화, 캬바레 열풍, 그리고 고고장 성행 등과 얽혀 있는 것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서로 양립하기 어려울 것처럼 보이는 ‘금욕’과 ‘쾌락’의 원리들이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때 문화평론가들은 이러한 대중적 욕망 분출을 국가 권력에 대한 상징적 저항에 준하는 것으로 보기도 했으나, 이 같은 쾌락적 게토들이 검열 당국의 용인 속에서만 가능했다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산업화 시대에 금욕적인 신체를 생산할 필요가 있었던 건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와 동시에 대중들의 정치적 무관심 역시 요구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문화적 민족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한국적 민주주의나 국민교육 등이 강조되었지만, 이는 1960년대부터 지속되어온 민간 무속문화의 대대적 탄압 위에서만 가능했었다. 민속 문화가 가지고 있던 주술적 세계관은 근본적으로 근대화와 산업화를 추동했던 군부-엘리트들의 지향점과 상반된 것이었다. 그만큼 민족적인 것과 근대화는 원리적으로 상충되는 측면을 포함하고 있었다. 실제로 박정희 정권은 규율된 신체와 의식의 합리화를 위해 미신 타파를 중요한 기치로 내걸었고, 결과적으로는 ‘하층민 중심’의 상당수 문화유산들이 파괴·소실·억압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는 명약관화하다. 국민 동원에 필수적인 정신적 가치로서의 민족적이고 전통적 요소들이란 주로 근대화 논리에 부합했던 ‘지배 엘리트 계층 중심’의 민족문화와 전통으로만 초점화되었다.


결국 관건이 되는 것은 이와 같은 모순적 요소들을 공존시키면서도 발전주의 기조에 위배되지 않을 통치 감각이었을지 모른다. 통치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대중적 지지가 필수적인데, 여기에는 언제나 이중적 태도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으로 복리를 충족시키고 동시에 거기에 위배되는 대중 정서를 분리시킴으로써 권력을 영속화한다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 마디로, 금욕적 근대화 논리와 감정-편향적 민간 문화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배치 전략이 관건이었다는 이야기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나는 이에 대한 박정희 정권의 통치 기술이 일정 부분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후자를 전자에 부속시키면서 모순적 원리들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고, 그럼으로써 국민들에게 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발전 도상에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통치 기술 말이다. 오늘날에도 그의 유령이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걸 보면 유신시대의 문화적 공세는 충분히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03-can_do.jpg

 

박정희의 ‘유령’

 

이 시대를 둘러싸고 두 가지 기억 체계가 대립하고 있다는 것쯤은 역사적 상식일 것이다. 한 쪽에서는 유신을 통해 질서를 보고, 다른 한 쪽에서는 억압을 본다. 서구화와 근대화의 물결이 격동을 일으키던 시기에 애매하고 불쾌한 것들을 전통적 권위를 통해 정리해주니 어찌 조화롭지 않았을까. 그런가 하면, 자유의 단 맛과 개인의 소중함을 알아가던 시기에 새롭고 희망적인 것들을 주권적 권력을 통해 가로막아버렸으니 어찌 답답하지 않았을까. 한국 사회에서 이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은 각각의 완결적 회로를 가지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양자택일하여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인식틀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좋든 싫든 우리는 박정희의 ‘유령’과 더불어 살고 있다. 근 수 십년간 그래왔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 것이다. 여기서 유령이라 함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존재를 이른다. (어쩌면 노무현과 더불어) 딱 박정희가 그렇다.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너무 많은 곳에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성적으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에 맞닥뜨리곤 한다. 생물학적으로 그는 죽었지만 상징적으로는 건강하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유령은 허상에 불과한 것일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니 무시하면 될까. 망령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허깨비에 놀아나는 무지렁이라고 내몰면 그뿐일까. 문제는 세상사가 순리대로만, 논리적으로만 돌아가진 않는다는 데 있다. 그의 유령을 불러내는 소환술은 어떤 과학조차도 꿰뚫을 수 없는 강력한 주술성에 바탕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령이, 그리고 유령에 홀린 자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까닭에 관점을 바꿔볼 필요도 있다. 만약 사람들이 허위의식의 포로가 아니라 한다면, 유신시대에는 절대빈곤 해결과 사회질서 확립을 넘어서는 뭔가 다른 차원의 매력 포인트가 있었던 게 아닐까. 그 시절 엄청난 노동강도와 저임금에 시달리면서도 자기 가족과 국민 경제를 위해 희생을 감내했던 노동자들을 생각해보자. 그들이 없었다면 한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을까. 굳이 청년 전태일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오늘날의 ‘금준미주’와 ‘옥반가효’가 이 당시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천인혈’과 ‘만성고’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잘 알다. 그럼에도 그들은 피복 공장의 노동자나 파독 광부와 간호사로, 또 때로는 개발도상국의 농민이나 도시빈민으로 살면서 성장의 뒤안길에 유폐되어야만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50-60대를 넘긴 이들 중 상당수가 지금보다 “박정희 시대가, 유신시대가 더 좋았다”고 회고하곤 한다는 것이다. 분명 물질적 분배 체계에서 배제되거나 침묵해야만 했던 경험들이 적지 않을 텐데 왜 그 시절이 좋았다는 것일까. 몇 가지 확실한 사실들은 이렇다. 박정희와 그 시절에 대한 애착은 단순히 경제적·물질적 차원으로 소급시킬 순 없다는 점, 그런 맥락에서 사람들의 주관적 감정과 의식 상태에 대한 참조가 필수적이라는 점, 나아가 그에 대한 과학적 해명을 시도하는 한 그들의 향수를 단순한 허위의식의 소산으로 폄훼할 순 없다는 점 등이다.

 

04-new-town.jpg

 

그때보다 더 예속적인 현재

 

어쩌면 ‘더 좋았다’는 건 경제적 복리 같은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 아니었을까. 예컨대 ‘막장 인생’인 줄로만 알았던 광부들에게 어느 날 대통령이 찾아와 임금이며 복지며 후생을 물어보고 그들을 국민경제의 ‘산업 전사’로 불러준다면 복잡한 감정이 들지 않았을까. 달리 말해, (굳이 박정희가 아니더라도) 의미 있는 타자로부터 ‘의미 있는 존재’로 부름 받고 인정받았다면 말이다. 다른 어떤 직업, 혹은 직업이 없어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겐 그들 나름대로 존재론적 근거가 명확했던 것으로 술회되곤 하는데, 만약 이들이 오늘날에 와서 존재론적 소재지를 상실했다면, 정확히 말해 의미 있는 존재로 부름 받지 못하고 있다면 이야기는 분명해진다. 지금이 그때보다 좋다고 말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 맥락에서 유신시대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여태껏 진보적 지식인들이 기술해왔던 것과 달리, 국왕-가부장으로서 권위를 발산하던 대통령과 그의 살뜰한 부름과 보살핌을 받는 평등한 국민들로 이뤄진 세계를 단순히 억압적이라고만 치부할 순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 시기의 사회정책과 국민개조 문제는 독재 구축을 위해 ‘말 잘 듣는 국민’을 규율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단순 폄하하기도 어렵다. 이런 이해방식은 당시의 국민들을 예속적이고 복종하는 인간으로만 묘사할 뿐인데, 몇몇 역사학적 증거들에 의하면 당시 국민들이 비할 바 없을 정도의 능동감 또한 지니고 있었음이 명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유신을 전후로 해서 실시된 각종 사회정책들 ― 사회복지사업법(1970), 고교평준화(1974), 직장의료보험제도(1977) 등 ― 에는 단순히 독재 체제를 위한 ‘당근’으로만 축소 해석될 수 없는 논점들이 있다. 일련의 계기들을 통해 국민들 사이에선 개인들뿐만 아니라 사회가 보호되고 있으며 성원들의 평등 역시 수호되고 있다는 인식이 공유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마을운동 등을 통해 실현된 ‘근면·자조·협동’의 국민 참여 및 동원은 더 주목할 만하다. 자신들의 노력을 통해 마을공동체가 정비되고 발전하는 모습을 봤다면 그 성취감은 평생에 걸친 자기 서사에 있어 가장 찬란한 순간으로 기록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어쩌면 이 모든 정황들의 시발점이었을지 모르는, 1968년 정신적인 면에서의 ‘개조’를 내걸고 등장했던 ‘제2경제론’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까지 진행되었던 산업 주도적 발전주의 드라이브와 달리, 이데올로기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새로운 사회체제의 형성을 본격화한다는 의미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요구되던 인간형이 생산 라인에 붙어 있는 금욕주의적 인간으로서 ‘산업 전사’였다면, 이 시기에 이르러선 ‘새마을지도자’든 ‘부녀회원’이든 이러저러한 ‘완장’을 가지고 각자의 생활 전선에서 자기 스스로 지역공동체 또는 민족공동체의 발전에 참여하는 인간형이 요구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한 국민 동원 효과는 (물론 유신 독재로 귀결되긴 했지만) 초월적 존재가 ‘나’를 불러주었기에 가지게 되는 상징적 안도감, 그리고 그 이상의 실질적이고도 수행적인 능동감을 제공했던 것으로 재평가할 수 있다. 이들은 더 이상 통치의 객체로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사회적 동원 과정에 의해서였건 무엇에 의해서였건 통치의 참여자로서 자기 위치를 격상하는 경험을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만약 누군가 박정희를 여전히 향수하고 그 시절로부터 헤어나지 않는다면, 그건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서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는 과거보다 현재에 와서 더 예속적 체험을 하고 있을 공산이 크지 않겠는가.

 

05-nostalgia.jpg

 

유신시대의 자장

 

물론 이렇게 ‘만들어진’ 좋았던 시절은 (의도와는 상관없이)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아이러니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 시기에 유년기를 보냈던 적잖은 사람들은 국민으로 개조된 덕분에 ‘민족 중흥’이나 ‘인류 공영’ 등으로 제 스스로를 연결시켜 공적 주체가 되었고 그 결과 유사 이래 비견할 바 없는 정치적 에너지를 분출하기도 했다. 또한 새마을운동을 비롯해 ‘국민을 동원함으로써만’ 가능했던 이 시기의 사회 정책 체계는 (발전주의적 욕망의 일반화와 더불어) 시민사회의 역량 강화라는 트로이의 목마를 끌어들이기도 한 것이었다. 단기적으론 통치의 행·재정적 비용을 국민들에게 분담 또는 전담시키는 성과를 거뒀지만, 장기적으론 ‘하면 된다 정신’으로 무장하고 통치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시민사회의 역량을 신장시켰기 때문이다.


다만, 오늘날 그 효과는 다소 불균등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민족주의의 시효가 마감됨에 따라 과거와 같이 보편성을 담지한 공동체적 범주는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고, 따라서 정치적·경제적 전망에서 공적인 것을 불러내는 것은 점점 더 소원한 일이 되고 있다. 그에 반해 자본과 시민사회의 역량은 날로 강해져 오늘날 국가 권력은 사회적 경제나 협동조합처럼 오로지 민관 파트너십 같은 것을 통해서만 통치의 불가능성을 돌파하는 게 가능해지고 있다. 요컨대 사회를 안정시켜줄 이데올로기적 범주가 불확정적인 가운데 시장 권력이 전제 권력으로 대두하고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가진) 시민사회의 재량이 상대적으로 늘어났다는 이야기이다. 지금의 이러한 세력 상황이 오늘날의 정치를 어떤 지평으로 이끌게 될지는 실로 예측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오늘날 우리가 유신시대의 자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망령을 떨쳐내려는 ‘씻김굿’이 언제나 실패하는 이유는 그 시대에 돌출했던 ‘공동체 효과’를 대체하지도 추월하지도 못하는 패착 때문이지 않을까. 물론 ‘그 때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정치적 퇴행은 그 자체로 문제겠지만 말이다.

 

사족: 그의 유령은 과거로 퇴행하고자 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들과 섞여 살고 있는 우리 모두와도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그 시대에 만들어진 사회 성격이 여전히 유효함은 물론이거니와, 자본과 시민사회를 동원함으로써만 ‘신’성장동력을 얻어 통치가 가능하다는 상상력이 불현듯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그것 외에는 파국의 출구가 없다는 듯 좌파와 우파 모두가 채근 당하는 형국이지 않은가. 때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라는 유신시대의 질문에 가장 잘 부응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오늘날의 소위 진보 진영이 아닐까라는.

Who's 김성윤

profile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및 운영위원입니다. 주전공은 사회학을 하고 있고 최근에는 플랫폼 자본주의, 도시재생과 민주주의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시간이 나는대로 연구소 홈페이지에 들러서 이용자 여러분들과 교감하도록 하겠습니다. :)
Atachment
첨부파일
Comment '1'
  • profile
    김성윤 2015.11.25 21:09
    일종의 자기 방어 기제(?)로서 굳이 첨언하자면, 어떤 복잡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었는데 결과적으론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아 두루뭉술 산만한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께는 이 얘기 저 얘기 하는 불친절한 글일 것 같아서 민망한 기분도 없지 않습니다. 아직도 머릿속에선 '유신 시대'와 '한국에서의 민족적-사회적 국가 형태' 그리고 '이데올로기 지형' 등의 태그들이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유신시대의 문화사적 측면'이라는 기획의도를 기존 통념과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한다는 게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현재로 이어지는 연속적 측면도 강조하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론 말 그대로 '사족'이 되고 말았네요.
    그래도 너저분한 글 속에서 어떤 아이디어라도 얻어가실 수 있다면 저로서는 한없이 기쁜 일일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한편으론 송구스럽습니다.

팀 블로그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들의 연합 블로그입니다

  1. 에세이
    profile

    다르게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을 위해

    “스톱! 스톱!”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질렀던지 목이 다 아프다. 또 그 꿈이다. 작은 방송사고를 경험하고 난 후부터 시작된, 생방송 중에 내가 큰 방송사고를 내는 악몽.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악몽의 버전은 다양하다....
    Date2016.03.28 Category에세이 By정지은 Reply1 Votes2
    왜 찡해지는 거실까...
    Read More
  2. 정치사회
    profile

    대체 과잠을 왜 입는 걸까

    처음엔 모든 것이 낯설었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스멀스멀 입기들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에는 캠퍼스의 봄날을 알리는 지표가 마치 과잠(학과 점퍼)인 것처럼 돼버렸다. 과잠 입은 친구들이 늘어났네. 과잠은 벚꽃보...
    Date2016.03.24 Category정치사회 By김성윤
    Read More
  3. 정치사회
    profile

    리셋 버튼이 필요한 청년들

    ‘28세상’이란 칼럼에 한 가지 대의를 붙여보자면 대강 이렇다. 청소년문화를 다뤘던 전작 『18세상』(2014)을 내고 나니 일종의 헛헛함이 찾아왔다. 물론 더 잘 쓰지 못했다는 자기 책망이 제일 컸지만, ...
    Date2016.03.09 Category정치사회 By김성윤
    Read More
  4. 산업/정책/운동
    profile

    모(某)극장의 ‘극장 스캔들’

    최혁규 : 모극장의 상영회들을 보면 현재 <시[SEE]:사회>, <늘씨네와 벗들>, <팝업시네마테크> 등의 있고, 모극장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2012년 10월에 처음으로 개최했던 <랩톱영화제> 같은 대안상영회들이 있다. ...
    Date2015.11.27 Category산업/정책/운동 By최혁규 Votes1
    Read More
  5. 이론/논문
    profile

    위기관리, 또는 포스트-워싱턴컨센서스

    1990년대 후반, 영국·미국·독일 등에서 ‘제3의 길’이란 말이 유행하고 세계은행 수석부총재로 스티글리츠가 취임하면서 개발도상국에 대한 개발원조 패러다임에 변화가 생겼다. 그동안 국제적 구제융자의 대가가 신자...
    Date2015.11.26 Category이론/논문 By김성윤
    Read More
  6. 정치사회
    profile

    ‘유신의 기술’

    유신시대의 문화적 풍경을 떠올리면 몇 가지 상투화된 이미지들이 있다. 귀 덮인 장발족들을 잡아 머리카락을 싹둑 자르고, 짧은 치마 위로 자를 대 치마 끝이 무릎 위로 20cm 이상이면 즉심에 넘기던 시대. 그리고 ...
    Date2015.11.25 Category정치사회 By김성윤 Reply1 Votes2
    일종의 자기 방어 기제(?)로서 굳이 첨언하자면, 어떤 복잡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었는데 결과적으론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아 두루뭉술 산만한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께는 이 얘기 저 얘기 하는 불친절한 글일...
    Read More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 54 Next
/ 54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