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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와요 - 신동엽 문인사기획전

posted Dec 17, 2019 Views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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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와요 : 문인사기획전5 신동엽展>

- 기간 : 2019.12.20.(금) ~ 2020.01.17.(금)

- 장소 : 성북예술창작터 (서울 성북구 성북로 23) 

- 내용 : '민족시인 신동엽'에서 '생명평화시인 신동엽'에 주목하여 2018년 '도보다리'의 기억과 함께 현재를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분단 체제 이후를 상상해보도록 하는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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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때는 와요

 

• 바른쪽 가슴에 평화의 조각을 •

 

이종찬

 

시인의 50주기를 맞이하는 2019년, 성북 문인사 기획전의 다섯 번째 주인공으로 시인 신동엽을 조명한다.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고 목소리를 높인 신동엽이 있다. 대표작 「껍데기는 가라」의 신동엽, 그것은 바깥으로 향한 외향성의 목소리였다.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이다. 다른 한편 “우리들이 조용히 눈으로만 이야기할 때, 때는 와요”라며 목소리를 낮춘 또 하나의 신동엽이 있다. 유작 「좋은 언어」의 신동엽, 그것은 안으로 향한 내향성의 목소리였다. 우리에게는 낯선 모습이다. 그렇다면 두 개의 신동엽이 존재하는 것일까. 문학의 셈법은 일반적인 수(數)의 세계에서의 그것과 질적으로 다른 것이어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1+1이 1이라 힘주어 말하기도 한다. 그러니 여기서 어느 쪽이 ‘진짜 신동엽’인지를 묻는다면 그것은 과녁을 한참 빗나간 질문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는 것, 그 새삼스러운 진실을 깨닫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문학을 읽는다. 

 

신동엽 문인사 기획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때는 와요”라는 시인의 문장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2018년 4월 27일, 남한과 북한의 두 정상이 판문점에서 마주하며 연출한 ‘도보다리의 기억’과 그 여파 때문이었던 것 같다. 

 

국문학이 아닌 역사학을 전공한 시인은 4,800행이나 되는 분량의 장시(長詩) 『금강』에서 세 가지 다른 시간(‘때’)을 호명하며 그것들의 역사적 의미를 부여한 바 있다. 1894년 3월 동학농민운동, 1919년 3.1 운동, 그리고 1960년 4.19 혁명이 그것이다. 우리는 궁금해진다. 물론 역사에 가정이란 없는 것이라 하지만, 1969년 39세의 이른 나이로 요절한 시인이 만약 지금까지 생존해 있었다면 또 어떤 시간(‘때’)들을 지목하였을까. 신동엽 시인의 장남 신좌섭 선생은 최근 신동엽 문학을 주제로 한 인터뷰에서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2016년 겨울 촛불혁명을 거론한 바 있는데, 거기에 더해 어쩌면 2018년 도보다리의 시(詩) 역시 새롭게 탄생하지 않았을까. 

 

2019년 지금, 역사적인 ‘도보다리의 기억’을 공유하게 된 우리는 신동엽 문학의 현재적・당대적 의미에 주목하여 시인을 ‘생명평화 시인’의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관람객들은 전시장 곳곳에서 ‘탈(脫)분단’의 상상력을 주제로 한 다양한 미술작품과 시인의 문장 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공간디자이너 홍장오 작가는 ‘장벽 너머’ 또는 ‘장벽 이후’를 주제화한 설치물들을 전면적으로 선보인다. 상당한 부피감을 자랑하는 장벽 모양의 구조물들은 그러나 어쩐지 그 볼륨감에 비해 그리 견고해 보이지가 않는다. 흡사 ‘이것은 장벽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관람객들을 향해 진지한 농담을 흘리고 있는 듯하다. 

 

평소 눈에 띄는 시의 구절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옮겨 쓰는 작업을 해온 김학량 작가는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지필묵의 틀에 갇히지 않고 현대적 서예를 추구한다. 이번 전시에서도 역시 신동엽 시인의 텍스트들을 전시장에 가져오는데, 구리선을 구부려 쓰거나 아니면 비닐봉지에 전기 인두를 달구어 쓰는 식이다.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왜 그것을 그리려 하겠는가”라고 말한 프란시스 베이컨의 목소리가 어른거려 자못 흥미롭다.

 

신정균 작가는 전쟁도, 민주화 운동도 직접 경험하지 않은 80년대생 탈이데올로기 세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진지하게 응시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 이념 혹은 저 이념의 단순한 이분법에 몸서리치고 ‘껍데기’와 ‘알맹이’의 감별에 주목했던 시인의 저 ‘빛나는 눈동자’처럼, 신정균은 이념의 우열(優劣) 매기기 대신 ‘그, 모오든’ 이념들의 근거를 되묻는 작업을 시도한다. 

 

오랫동안 ‘관계(성)’라는 테마를 붙잡고 활동해온 문해주 작가는 ‘세계시민주의자’로서의 시인의 면모를 부각시킨다. 이를 통해 통상 ‘민족 시인’ 신동엽으로 호명되어 온 그간의 해석적 경향이 보다 폭넓게 확장된다. 성북동 일대에서 직접 그러모은 낙엽들에 빛을 쏘아 만든 그림자를 통해, 국가와 국가를 잇는 세계의 형상이 벽에 드리워진다. 이를 헤겔의 표현을 빌어 ‘세계의 밤’이라 불러도 좋겠다. 그러나 시인의 말처럼,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은 이길 것이다’. 

 

미발표 시 「바른쪽 가슴에 광목 조각을」에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우리 오늘부터 첫눈이 올 때까지 바른쪽 가슴마다 하늘빛 광목 조각을 달고 다닙시다.” 미발표 산문 「전통 정신 속으로 결속하라」에서는 또 남몰래 이렇게 적었다. “날짜를 택해 판문점이나 임진강 완충지대에 그리운 사람들끼리 모여 아리랑을 합창해보자.” 1960년대 시인의 저 미완의 목소리들을 2019년의 우리들이 ‘좋은 언어’로 완성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때는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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