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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포트락 파티 후일, 그런 날

posted Sep 05, 2016 Views 581

그런 날이 있다. 출근길 마을버스가 10분 넘게 지연되어 초조한데, 눈 앞에서 지하철까지 놓치는 날. 단 1분, 2분 차이로 아침 일정부터 비틀리기 시작한다. 어떤 날은 평소에 없던 약속이며 회의가 다 몰리고, 또 어떤 날은 일기예보에 없던 소나기로 발이 묶이기도 한다. 갈까, 말까, 갈까?, 말까?? 고민 끝에 문을 나서는데, 내가 있던 동네에만 소나기가 내려서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화창한 날.

그날은 그랬다. 하루에 회의가 3건이 있었고, 서울의 북쪽, 서쪽, 남쪽을 오가야 했다. 연남동 커뮤니티 센터를 찾아 상수역에서 걸어갔고, 그 사이 잠깐 소나기가 내렸고, 모임 장소를 코 앞에 두고 그 앞을 뱅뱅뱅뱅 헤매었다. 밖에서는 와이파이가 안 터지는 핸드폰을 탓해봤자 무엇하랴. 핸드폰 베터리 2%를 남기고 간당간당. 해질녘 태양은 지글지글.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반가운 목소리. 연구소 사람들을 보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리고, 눈물이 글썽글썽. 사막을 홀로 걷는데 우연히 홀로 걷는 낙타를 만난 기분이랄까.

 


포트락 파티, 낯선, 사람들

작년 12월 송년회 파티에 초대된 후로 문사연 연구위원으로 들어왔다. 뭐랄까.. 얼떨결에? 독립연구자로 사는 것이 외로울 때쯤? 그래서 매달 하는 운영회의도, 세미나도, 포트락 파티도. 내게는 낯설고 어색했다. 작년 이맘 때 갓 석사졸업을 하고, 정처없이 떠돌던 나에게 이 낯선 사람들은 너무도 친근하게, 그리고 익숙하게 손을 내밀었다.

문사연에서 하는 포트락 파티에 참여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어떤 사람들이 오는지, 몇 명이 오는지,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지 잘 몰랐다. 뭔가 잔뜩 준비해온 것 같은 김소장님의 화려한 ppt는 전시용으로 몰락했지만 평소와 달라보였다. 근엄하고, 샤프하고.. 물론 그런 이미지는 아니지만 문사연을 오갔던 선배들을 기다리고 또 새로온 사람들을 소개하는 중간계 사람의 아우라는 뭐랄까... 더 샤방샤방했달까.

온도에, 사람에, 일에 지쳤을 때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고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그 날은 묘했다. 마치 주술에 걸린 것 마냥 새로운 사람들과 편안하게 어울리고, 수다를 떨고, 음식을 먹고. 맞다! 음식이 좋았다. 주섬주섬 각자 검정봉다리를 하나씩 들고 등장하는 사람들. 그 안에는 맥주도 있고, 시장에서 산 부침개도 있고, 직접 만들어 온 파스타 샐러드도 있고. 너무 과하지 않은, 딱! 좋은 음식.

처음 만나 이름도 잘 모르고, 어색할 법도 하지만 서로 경계하지 않아도 되는. 적당한 음악과 적당한 음식과 적당한 시간과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웃음.
 


경매

포트락에서 유일한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책 경매는 성공적이었다. 책을 기증받아 경매를 하고, 그 기금을 문사연 후원금으로 쓰자는 취지였다. 절판된 책도 있었고, 신간도 있었고, 책의 저자며 옮긴이가 직접 친필사인도 해줄 수 있는 책도 있었고(그러나 아무도 사인을 받지 않았다. 그 사인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혹자는 중고책방에 팔 때 값이 떨어진다하여... 줄이겠다.), 의무감에 사야했던 책도 있고. 어떠한 규칙이 딱히 있지도 않았다. 가격은 500원씩 올릴 수 있었지만, 헛소리를 하거나 김소장의 레이더에 걸리면 자연스레 책을 쥐고 인증샷을 찰칵!! 도서 시장의 규칙도, 경매 시장의 규칙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흥미진진했다. 소형간사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기도 했다. 12개월 무이자 할부!!!!! 수수료가 더 나오겠지만.. 사람들은 열광했다.

경매 최대 수혜자는 지은언니.
그 다음은 노명우 선생님.
그 다다음은 권경우 선생님.

수혜기준은 이렇다. 책을 되팔았을 때 가장 적은 마진을 남기거나 마이너스 이윤을 챙기는 순서다. 아무리 봐도 이건 사는 사람에게 수혜(득)가 되진 않는다. 하지만 보는 사람들에게, 특히 문사연 통장잔고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고, 이름까지 드높였으니. 수혜는 수혜다.


2차, 3차, 그리고.. 거리에서

행사가 끝나면 아쉽다. 그래서 흔히들 뒷풀이 자리에 간다. 10시쯤.. 행사가 끝나고 범기가 뒷풀이 자리를 찾았는데 기가막힌 곳이었다. 11시에 문을 닫는 곳이었으니, 거의 40분 만에 2차를 해치운 것. 금요일 밤이었지만, 집에 갈 사람은 일찍 귀가시키는 그의 탁월함에 모두 존경을 표하였다.

남은 이들 몇몇.. 그러니까 나와 소형간사와 그 밖의 선배들 4명. 우리는 연남동 공원으로 향했다. 아는 곳이 별로 없으니 늘 가던 곳으로 간다. 그것이 3차의 시작이었다.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 날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시간이 흐를수록 선배들은 갑자기 서로의 눈을 피하기 시작하였고.. 또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그렇게 4시가 되었다. 문을 닫는다기에 나왔다. 3차에서 다양한 대화가 오갔지만, 내게 중요한 건 이거였다. 선배들은 왜 우리에게 공부를 가르쳐주지 않느냐! (여기서 우리라고 함은, 나 소형간사 혁규, 범기로 이어지는 80년대생 연구자들을 말한다.) 문화연구에 필요한 기본 이론을 알려달라. 이거 이거, 세미나 열어 달라, 같이 공부하고 싶다. 주된 골자는 그랬다. 선배들은 생계가 힘들다며, 본인들도 가르쳐주고 싶지만 정말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할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서로 뱅뱅뱅 떠넘기다 시간은 흐르고, 눈을 피하고. 아하, 그때는 다시 사막을 홀로 걷는 기분이었다.

한 시간이 지난 끝에 뭔가 실마리가 보였고, 나는 다시 오아시스를 찾은 듯했다. 누군가 미적지근하지만 커리큘럼을 짜보겠다고 한 것. 들뜬 마음에 기분이 좋아졌다. (후에 들은 말로, 그분은 정중하게 거절하셨다고.. 기억했다. 처음부터 큰 기대는 안 했지만, 그래서 실망도 크지 않지만, 그래도.. 그렇다.)

3차를 파할 때쯤, 몇 달전 문사연에서 했던 월담(월례발표회) 이야기를 시작으로 새로운 이야기가 싹텄다. 새벽 4시, 첫 차를 기다리기도 택시를 타기도 모호한 시간이다. 우리는 공원에 앉아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했다. 한 사람은 쭈쭈바를, 두 사람은 맥주를, 한 사람은 드링크요커트를, 한 사람은 물을.. 샀다. 공원의자에 쪼르르 앉았다. 김소장과 심선생은 마치 무대에 선 것처럼 거리에 나와 이야기를 했다.

일상이 연극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차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거나 우리는 늘 대화를 한다. 각자 연구 주제 혹은 어떤 학자의 이야기. 익숙한 대화, 익숙한 사람들. 그런데 시간을 달리하고, 새로운 인물이 들어오고, 화제가 변하면. 늘 익숙하던 것이 낯설어진다. 누군가의 대화에 경청하게 되고, 박수를 치거나 호응을 하거나. 관객들이 배우의 말에 주목하고, 배우는 계산된 혹은 계산되지 않은 제스처로 관객에게 말을 걸고. 따로 대본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마치 배우가 된 것처럼 주목을 받게 되는 순간. 우리의 일상은 연극이 되곤한다.

한 시간 반가량 거리에서 사람들은 돌아가며 이야기를 했다. 늘 하던 대화이지만, 굳이 나와서 이야기를 했다. 별 내용도 없었다. 그래도 재밌었다. 이 시간에 그 장소에서 나는 왜 쭈쭈바를 먹고 있나, 그 상황 자체가 코미디 같기도 하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사람들의 조합이 웃기기도 하고. 웃을 일이 없는데 웃긴 상황. 아이들이 귀신 이야기에 무서워하고, 똥 이야기에 자지러지게 웃는 것처럼.

나는 포트락에 갔을 뿐인데, 지금 A4용지 3페이지나 후기를 쓰고 있는 이 상황도 웃기다. 황금같은 주말에 데이트도 미루고 이걸 쓰고 있으니까.


그런 날

하루 종일 되는 일 하나 없고, 세상 모든 게 귀찮은데 또 누군가 만나서 대화도 하고 싶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고, 주저리주저리 하고 싶고. 그런 날이 될 때마다 지난 여름 포트락 파티를 떠올릴 것 같다. 딱히 위로의 말을 하지 않아도, 그냥 실없이 웃다가, 묵묵히 옆에 있다가, 잊고 지내다가, 또 만나는. 그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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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 profile
    김성윤 2016.09.05 18:19
    다섯 번이나 등장한 사람이 있길래(심지어 책까지 포함하면 여섯 번ㅋ) 추천을 눌렀는데 안 되네;;;
    일단 마음 속으론 추천 누르고 갑니다^^
    (참고로 저는 뱅뱅 돌린 적까진 없었던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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