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 글을 보다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사이의 구별법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어서 발췌/번역해서 올려봅니다(이것도 한 시간이나 걸리네 ㅡㅡ;). 다음과 같습니다.
공적인 것(the public)과 사적인 것(the private)의 구별에 주목하는 칸트와 리처드 로티 사이의 대립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심장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 둘 모두 이 두 영역을 엄밀하게 구별하기는 하지만 그 방식은 상반된다. (가장 현대적인 자유주의자 가운데 한 사람인) 로티에게 있어서, 사적인 것이 창의성과 거친 상상력이 지배하고 도덕적 배려가 거의 중지되어 있는 우리들의 특이형질(idiosyncrasies)의 공간이라면, 공적인 것은 우리가 타자를 상처입히지 않도록 규칙에 복종해야 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공간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사적인 것은 아이러니의 공간이요, 공적인 것은 연대의 공간이다.
그러나, 칸트에게 있어서는, "세계-시민-사회"의 공적 공간이 보편적 특이성(singularity)의 역설(즉, 특수한 것들의 조정을 우회하는(by-passing) 일종의 단락(short-circuit) 안에 있으면서 보편적인 것들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특이성의 주체가 가진 역설)을 지시한다. 이것이 바로 칸트가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공적인 것"을 "사적인 것"에 대립시킴으로써 의미하는 것이다. "사적인 것"이란 공동체적 뭉뚱그림에 대립하는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특정한 동일화(identification)의 공동체적-제도적 질서 그것이다. 그와 반대로 "공적인 것"은 이성의 실천에 관한 초민족적인(transnational) 보편성이다. "자유롭게 사유하되, 복종하라!"라는 상투어에 담긴 역설(물론 이 말은 사회적 권위의 "수행적" 층위, 그리고 수행성이 중지된 자유로운 사유의 층위라는 구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자신에 고유한 일련의 문제들을 안고 있긴 하다)은 따라서 정확하게는 실질적인 공동체적 동일화로부터 해제되고 심지어는 그에 대립하는 특이성의 개별자로서 "공적" 영역의 보편적 차원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공동체적 동일성들의 틈새들(interstices) 안에서 급진적으로 특이성을 가질 때에야만 진정으로 보편적이다. 이것이 바로 여기서 로티에 대한 비판으로서 읽혀져야 하는 칸트이다. 그는 이성의 제약 없는 자유로운 실천이라는 공적 공간에 대한 전망 속에서, (사회적) 존재 질서 내에 있는 사회적 동일성과 위치가 가진 한계 바깥에 있는 해방의 보편성이라는 차원을 역설한다. 이것이 바로 로티에게는 없는 차원이다.
Slavoj Žižek, 2008, "Tolerance as an Ideological Category", in: Violence, New York: Picador, pp. 143-4에서 인용.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동안 자유와 평등, 혹은 개인성과 공공성 같은 개념들이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서로 분리된 개념처럼 쓰이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칸트의 구분법에서 보듯이 애초의 시작에서는 자유주의적 구분 같은 것은 없었던 것이죠.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는 사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란 질서에 대한 동일화라는 것, 보편적인 것이란 그러한 동일성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라는 사유가 요청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헤겔이 <법철학>에서 1차적 보편성으로서 대면 집단과의 동일화, 2차적 보편성을 '민족-국가'와의 동일화라고 말했던 바로 그러한 구도인 것이죠.
물론 지금 우리가 헤겔이나 칸트의 말을 곧이 곧대로 가져다 쓸 필요는 없습니다. 칸트의 공적인 것이라는 개념도 명시적으로는 동일화에 대한 거부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현재 정세에서 보자면 글로벌한 상층회로의 세계시민주의에 대한 동일화로 귀결할 현실적 위험성도 배제할 수만은 없겠지요(헤겔에게 민족이 그런 위험성이 있듯 말입니다). 어쨌든, 그들이 우리에게 암묵적으로 제안하고 있는 어떤 사유의 형식에 대해서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우리는 그동안 자유와 평등, 특수와 보편,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개인성과 공공성 등을 대립적인 것이라고만 생각해왔을까요. 물론 그동안 적지않은 현명한 분들께서 그런 생각들로부터 벗어나고자 많은 노력을 해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그런 구분을 한정시켜왔던)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로부터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 측면들도 있었죠. (이 문제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새로 포스팅을 하도록 하지요 ^^)
이제 운동의 측면에서 생각해보자면, 새로운 방식의 개념틀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보입니다. 보편성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시작하는 바로 그 지점인 것이죠. 자유가 자유주의로 귀결되지 않기 위해 그 안에 공공성 개념이 스며들어 있고, 공공성이 전체주의로 귀결되지 않기 위해 그 안에 특이성 개념이 스며들어 있는 그런 지평 말입니다. 확실히 우리는 어떤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할 그런 장소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