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구 팀 블로그

즉 인간은 모니터 위에 나타난 영상들을 컴퓨터에 의해 만들어진 예술로 파악할 때마다, 그 영상에 이르는 길을 스스로 폐쇄시켜버린다.(플루서)
1.
바 르톨과 바이저의 작업은 이중의 반성을 요구한다. 매체로 무엇을 보여주는 대신에, 매체로 매체가 무엇인지 질문한다. 매체가 주체인 것이다. 여기서 이중의 반성인 것은 반성의 결과가 이른바 ‘아날로그’이기 때문이다. 즉 아날로그로 육화된 디지털인 것이다. 그런데 둘의 방식은 사뭇 다르다. 먼저, 그들의 작업을 하나씩 살펴보자. 바르톨의 <Random Screen>은 제목 그대로 무작위화면이다. 디지털픽셀 구조를 본뜬 하얀 격자화면이 있고, 격자에는 촛불이 들어간 알루미늄 캔이 들어 있다. 촛불의 세기에 따라 알루미늄 캔이 회전하는 것과 빛이 점멸하는 속도가 규정된다. <Random Screen>은 픽셀의 기본구조를 느리게 반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0과 1 사이에 무수한 실수가 숨어 있는 것처럼, 다양한 속도로 점멸하며 디지털의 0과 1의 ‘사이’를 교란하고 ‘빈틈’을 드러낸다. 그것도 전기가 전혀 없이 촛불의 힘만으로 이뤄내므로, ‘디지털의 가면’을 천연덕스럽게 썼다고밖에 할 수 없겠다.
2.
바이저의 <Lucid Phantom Messenger>는 디지털에서 더욱 후퇴한다. 이 작품은 언뜻 보면 무슨 약품을 섞어 놓은 것만 같아서, 매체예술과 별다른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내를 따져보면, <Random Screen> 못지 않게 디지털을 전제하고 야유한다. 우선 액정, 실리콘, 유리섬유 등등, 디지털영상을 생산할 때 필요한 도구와 질료를 유체로 전환한 다음, 유리 그릇에 담는다. 여기에 소프트웨어에 따라 전기자극을 부여해, 알록달록한 유체의 운동이 발생하며, 그에 맞춰 소음이 뒤따른다. 요컨대 전기로 하는 물질의 액션페인팅 퍼포먼스인 것이다. 생각해 보면 여느 디지털영상에 비해도 있을 것은 다 있다. 소프트웨어도 있고, 전기도 있고, 액정도 실리콘도 유리섬유도 있다. 그러나 생산된 것은 소음을 동반한 ‘반디지털 유체운동’ 뿐이다.
3.
바르톨과 바이저의 작업은 ‘디지털’로 여과돼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시민권처럼 작용하여, 그들의 작업이 매체예술이라는 것을 보증하는 것 같다. 물론, 서로의 방식은 다르다. 바르톨이 질료를 전도한다면, 바이저는 형식을 전도(교란)한다. 전기가 없어도 픽셀구조는 구성되고, 전기가 있어도 전자영상이 구현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디지털의 문법을 고려하지 않으면, 작업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디지털의 마법이 그들의 작품만이 아니라, 오늘날의 매체・예술 환경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작업에서 일정한 징후가 발견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즉 ‘번역’의 문제가 대두된다.
4.
보통 언어에서 번역은 대체로 두 가지 사항을 상정한다. 첫째 공통된 의미. 의미는 특정언어와 무관하게 존재하며, 번역은 의미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이다. 둘째 확고한 실재. 의미는 실재를 지시하므로 고정된다. 결국 실재가 의미를 고정하므로, 번역은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번역자체가 무력화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되는가. 예를 들어 ‘음역된 언어’를 생각해 보라. 그것은 번역된 것인가 아닌가. 물론 음역된 언어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오늘날 차이가 있다면, 하나의 언어로 수렴되고 전문담론을 넘어서 일상어까지 침투하며, 개별언어의 구조까지 포식하는 점이다. 페니키아문자는 마치 메타언어라도 되는 것처럼, 언어들의 무의식으로 깊게 자리잡는다. 사실 그것은 경험적으로 이미 메타언어다. 마치 현재의 디지털처럼 말이다. (프로그램약호와 영어는 그래서 동형적이다. 그것들 모두 보편언어를 지향하며, 개별적인 모든 것을 흡수한다.)
5.
번역은 비단 언어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매체들 사이에도 발생한다. 그것은 오늘날 흔히 ‘융합convergence’으로 불리지만, 그렇게 명명하면 일방향 하나의 점으로 수렴되는 벡터만 강조된다. “모든 진리는 자기확장적이다. 어떤 관념이 자기를 진리라고 믿을 때, 그것은 맹렬하게 팽창한다. 주먹만하게 줄어들었다가 크게 폭발한 우주처럼.”(김현) 자연스럽게 매체들 위의 ‘매체’가 상정되고, 이른바 디지털의 복음이 울려퍼진다. 컴퓨터의 불랙박스가 다스리는 섭리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의 문제는 은폐될 수밖에.
6.
‘번 역’은 그 점을 상쇄하며, 매체들 ‘사이’를 짚어준다. 대등한 관계를 설정한다. 결국 바르톨과 바이저는 바로 관계를 드러내고, 번역자체를 질료로 삼아 반성한다. 여기서 흥미로롭고도 기이하는 것은 아날로그매체가 별달리 사유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벤야민처럼 예외적인 사람도 있었지만, “…정작 아날로그매체가 등장하던 시기에도 아날로그매체 자체에 대한 철학적인 담론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박영욱, ꡔ매체, 매체예술 그리고 철학ꡕ, 향연, 148) 거칠게 말해서 아날로그는 디지털로 여과된 다음에야 ‘생산’된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물론 키틀러처럼 중요한 예외도 존재한다.) 그것도 디지털로 수렴되기 위한 것으로서 자체의 특정성을 말살당한 채로서. 이제 컴퓨터로 처리되지 않은 것은 자연스럽게 아날로그의 딱지가 붙게 되었다. 한마디로 아날로그는 디지털을 구성하기 위한 대당으로서 호명된 셈이다. 그리하여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범주는 물질과 정신의 전통적 이원론을 기술적으로 계승하게 된다.
7.
바르톨과 바이저는 번역을 함으로써, 번역에 저항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들의 작업은 디지털 육화처럼 역설로도, 음역된 언어로만 구성된 시처럼 암호로도 보인다. “테크노미학은 기계의 미학으로서 그 힘을 상실한 모든 휴머니즘들을 일소하고, 테크놀로지적 반자연Antiphysis 현상의 유희공간들을 확장시킨다.”(볼츠) 대가는 분명히 치른 것 같다. 여기에는 해석할 의미도 공감할 감정도 없는 것만은 분명하니까. 그것을 반성적 유희로 부를지 유희적 반성으로 부를지 뭐가 됐든지 말이다.
<기술미학연구회> 5회 포럼
(*.33.6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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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침몰의 ‘진실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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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
2010-04-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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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예전의 <진실게임> 같은 프로그램이 지금의 현상을 압축적으로 예견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진짜 누구누구를 찾는 이 프로그램에서 진짜 재미는 진실 자체라기보다는 진실을 가리는 과정 자체에 있었다. 게스트들은 어설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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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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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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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라는 현수막이 사라졌다. 물론 그렇다고 아쉬운 건 절대 아니고... ㅡㅡ;
중요한 것은 그런 말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 말이 지시하던 현실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그 문구가 사라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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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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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삼 |
2008-11-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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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술로 떡이 돼서 첫차를 타고 집에 가던 길. 집에 가려면 버스를 두 번 타야 하거든. 서울역에서 갈아타야 하는데, 놀랍더라고.
시내로 가는 첫차에는 아줌마들이 가득하고, 변두리로 가는 첫차에는 아저씨들이 가득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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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롯데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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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삼 |
2008-11-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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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 답사를 마치고 잠시 들른 롯데리아 충무로점. 패스트푸드점 실내 공간 배치의 곡선화 과정은 자못 흥미롭다. 굳이 맥도널드에 관련 서적들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패스트푸드점은 빨리 먹고 빨리 사람을 내보내는 공간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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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저 수츠와 낙원 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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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삼 |
2008-11-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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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아파트는 1960년대 후반에 세워진 세운상가라고 한다. 낙원상가는 그 직후에 세워진 주상복합건물이다. 세운상가에 비해 낙원상가는 건물 1층을 필로티로 세워 도심교통 분담하는 기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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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처마 밑 벌거벗은 여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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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라 |
2009-02-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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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강화도 전등사에 다녀왔습니다. 오랜 전통을 가진 절이라기에 나름 기대를 하고 있었지요. 들어갈 때 부터 입장료를 내라더니 여기저기 돈달라는 글귀와 소리가 메아리 치네요. 언제부터일까요? 그렇게 노골적으로 돈을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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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이라는 특이한 발명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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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전성시대와 더불어 ‘삼촌’ 팬덤 역시 주목받고 있다. 사전적으로, 삼촌은 여성 아이돌을 조카로 여길 수 있는 특정 세대의 남성을 가리킨다. 그런 까닭에 삼촌이라는 언표행위는 여성 아이돌과 모종의 친족 관계를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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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PM 팬덤의 이른바 '광기'에 대한 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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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
2010-03-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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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나는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에 "1시 59분, 나머지 1분의 민주주의"라는 글을 기고한 바 있었다. 당시의 글은 (작성된 일자를 기준으로) 재범의 탈퇴가 공표된지 하루 정도밖에 안됐다는 점, 그리고 (6PM+)JYPE 측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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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 59분, 나머지 1분의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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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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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범의 JYP엔터테인먼트 전속계약이 끝내 해지됐다. 2PM에서 영구 탈퇴한 것이다(관련기사). 재범을 학수고대하던 나머지 여섯 멤버들도 이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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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 세미나와 두 가지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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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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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 세미나가 끝나고 있습니다. 이번 세미나는 사실 알튀세르 읽기를 과제로 삼은 이상, 발리바르와 그의 스피노자라는 쟁점을 열어두면서 끝날 것이 어느 정도 예상됐습니다. 세미나의 논의들을 잠깐 재점검해볼까요.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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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웅 : "... f(2002)가 약 16.03이라는 것은 유리수 범위에서만 생각해도 되니까 맞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모든 실수에 대해 f(x)=xf(1)가 되려면 연속가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조건이 있어야 ... (칠판에 적으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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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 기술미학포럼: 아날로그의 생산, 하드웨어의 잔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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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아 |
2010-01-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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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인간은 모니터 위에 나타난 영상들을 컴퓨터에 의해 만들어진 예술로 파악할 때마다, 그 영상에 이르는 길을 스스로 폐쇄시켜버린다.(플루서) 1. 바 르톨과 바이저의 작업은 이중의 반성을 요구한다. 매체로 무엇을 보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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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의 시대 Criminal Scenes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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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아 |
2010-01-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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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는 이념을, 시인은 시를, 성직자는 경전을, 교수는 개론서를 생산한다. 범죄자는 범죄를 생산한다…범죄자는 범죄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형법을 생산하며, 이와 더불어 형법을 가르치는 교수와 이 교수가 자신의 강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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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
2009-12-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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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잡을 수 없는 청년들 오늘날 정치는 매우 미묘한 말이 됐다. 정치의식, 정치행위, 제도정치, 일상정치 등등. 그러나 이 모든 말에 대한민국 청년세대를 적용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탈정치화’라는 말이 집약하고 있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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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잡고 따돌리는’ 짝퉁 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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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
2009-11-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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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짝퉁?
세상은 참 재밌다. 돌아가는 꼴도 우습거니와, 세상을 즐겁게 보려면 얼마든지 즐겁고 괴롭게 보려면 얼마든지 괴로우니, 그 이치가 재밌다는 이야기다. 짝퉁문화가 딱 그렇다. 즐겁게 보는 법은 이렇다. 짝퉁문화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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