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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2PM 박재범 사태로 본 대중문화와 한국사회④
2009년 10월 04일 (일) 17:27:45 김성윤/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자기와는 별 상관도 없는 일에 왜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달라붙어 사이버테러를 일삼은 걸까. 한 인간이 기꺼이 혹은 차라리 청춘을 반납하게 만들 정도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박재범에 대한 대중들의) 테러의 동력이 바로 애국주의라고 말한다. 실제로 ‘테러리스트들’은 박재범이라는 연예인의 한국 비하 발언을 견디지 못했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에 불이라도 붙은 것일까.

그러나 나로서는 이번 테러의 실체를 애국주의라고 판결내리는 게 조금 찜찜하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다.

우선 비평가들이 너무 쉽게 애국주의를 들이미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한국’이라는 소재가 들어가는 이슈에 불이 붙고 거기에 대중들이 신경증적인 과잉 반응을 보일 때면 어김없이 애국주의라는 해석이 뒤따른다. 물론 나는 그들의 진단 대부분이 옳다고 본다. 그러나 진단이 옳다 해도 찜찜함은 여전히 계속된다. 처방이 없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 난치병이라도 된단 말인가.

게다가 이것은 너무 간단하지 않은가. 한국이라는 이슈 → 대중들의 과잉반응 → 비평가들의 애국주의 진단. 그렇다. 애국주의란 의사들이 진단해주는 현대인의 스트레스나 알레르기와도 같은 것이다. 어떤 병증을 안고 병원 문을 두드리더라도 병의 원인은 거의 제한적이다. 스트레스, 알레르기, 과로 등등. 현대의 사회비평가와 문화비평가에게 애국주의란 그런 것이다. 만병의 근원. 그러나 고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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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PM' 멤버 박재범ⓒJYP엔터테인먼트  
 
의사의 처방에 이상한 기분이 들면서도 대부분의 환자는 생각한다. ‘아, 내가 애국주의자구나.’ 사실 의사에게는 애국주의 진단이야말로 만병통치약인 셈인데, 환자는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근원인 것처럼 여기게 된다. ‘그렇지. 난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야.’ 의사는 애국주의가 약간의 자극으로서는 좋을 수도 있지만 과하면 더할 나위 없이 나쁘다고 말한다. 그럴 때 환자들은 종종 자신이 애국심을 잘 컨트롤한다고 과신하곤 한다. ‘애국주의가 나쁠 수 있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이 정도는 괜찮겠지.’ 그리하여 우리 시대의 대중들은 정말로 애국하는 애국주의자가 된다.

그렇게 되면 애초에 애국주의적이지 않던 행동도 애국주의적인 행동이 된다. 심지어 그런 행동의 직접적인 당사자조차도 그렇게 느끼게 된다. 의사도, 환자도. 그리하여, 오늘날 한국의 사회문화비평은 대중들의 이상 징후가 출현할 때면 애국주의 바깥에 대해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대중은 대중대로 자신의 행동을 애국주의 때문인 것으로 파악한다. 요컨대 애국주의 아닌 것이 없다.

그렇지만 바로 그런 까닭에 ‘애국주의에 빠진 대중들’이라는 ‘그림’을 볼 때면, 애국심이라는 징후로는 결코 파악될 수 없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이상 징후가 발견된다. 이쯤에서 되물어보자. 2PM의 박재범이 한국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을 때 불쾌감을 느꼈던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감정에 대해 오로지 애국심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일까. 분명 애국심이라는 여과기를 통해서도 걸러질 수 없는 미묘한 감정 x가 흔적처럼 남는다. 잘 보이진 않지만 아마도 그 흔적은 이런 말인 것 같다. 애국주의만 있는 게 아니라고, 오히려 애국주의보다 강력한 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당장에 <미디어스> 기사(‘박재범 사건, 누가 무엇을 비하하고 있는가?’)에 달린 댓글들을 살펴보자.

(1) ‘한국을 비판할수 있다. 한국 정치 문화 경제 어떤것도 성역일수 없다. 제도나 정책, 부패나 비리 범죄 이런것도 다 비판할수있고 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이땅에 살고있는 평범한 한국인 전체를 싸잡아서 욕하는건 있을수없고 용서받을수 없다.’

(2) ‘방송에서 착한척 순진한척 다 해처먹은게 꼴불견일뿐이다’

(3) ‘박재범이 군대가면 용서해줍니다. 한국에 돈&#46468;문에 왔다는건 그렇다치고 한국에살고 한국에서 돈벌면서 그 인기로 덕을 누리는 사람이 군대를 안간다는게 말이되나 그냥 돈과 인기만 쏙빼먹고 착한척 가식만 떤다는게 네티즌들은 화나는겁니다’

…… 이들 댓글은 해당 기사가 실린지 비교적 얼마 안 된 시점에 달린 글들이었다. 그러니까, 박재범 사태에 대해 사람들이 숙고와 성찰을 덜한 상황에서 나온 표현들인 셈이다.

(1)은 관용의 자세를 보여준다. 한국을 비판하는 것 정도는 들어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도 문제점이 있으니까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1)을 쓴 이는 조야한 수준의 애국심을 훨씬 뛰어넘는 아량 있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3) 역시도 단순하게 애국주의로 축소될 수 없는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그는 재범의 反애국심을 탓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신과 동등한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화를 내고 있다. (2)는 애국심이고 뭐고 상관없이 ‘그냥’ 밉다는 수준의 진술이다.

단순히 이 몇 개만 그런 것이 아니다. 9월 30일 밤 10시 현재, 124개의 의견들을 일독하다보면, 우리는 대중이 과연 애국주의에 빠져 있다고 단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머뭇거리게 된다. 요컨대 그들을 테러리스트로 변신하게 만드는 동력은 애국주의가 아닐 수 있는 것, 애국주의가 전혀 아닌 것, 혹은 애국주의의기도 하지만 애국주의보다 훨씬 큰 어떤 것이라는 점을 감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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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돌 그룹 '2PM'ⓒJYP엔터테인먼트  
 

빗나간 애국주의?

다음의 진술에 대해서 다시 살펴보자. ‘다 해처먹은게 꼴불견일뿐이다.’ 나는 설령 글쓴이가 아무런 생각 없이 키보드를 두드렸을지언정 함축적인 이 한 마디에 모든 진실이 담겨 있다고 본다. (2)의 의견을 쓴 이는 별다른 부연 설명 없이 재범이 그냥 다 해 처먹었다고 말한다. 그 ‘다’에는 어떤 것들이 들어갈까. 상식적으로, 그리고 다른 댓글들을 참고했을 때, 거기에는 아마도 대중적인 인기와 그에 준하는 금전적 수입 등이 들어갈 것이다. 만약 군대에 대한 (3)의 의견까지 종합해본다면 그 목록에는 군 입대 면제까지도 포함될 것이다.

그런 그가 한국과 한국인을 비하했다. 물론 한국을 욕하는 것쯤은 인정해줄 수 있다. 나라 욕하면서 차라리 이민가고 싶어 하거나 정부 탓하면서 대통령 욕하는 것쯤이야 우리 대다수가 이미 하고 있는 일 아닌가. 그러니까 그건 이해해줄 수 있다. 그렇지만 재미교포 출신 연예인이 한국에서 나고 자란 평범한 사람을 비하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 된다. ‘한국에서 돈 벌’고 ‘그 인기로 덕을 누리’면서 ‘다 해 처먹’는(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나를 욕한다. 지는 군대 안 갈 거면서 군대까지 갔다 온 나를 욕한다. 날 보고 역겹다 한다.

물론, 이제부터 재범 자신이 무엇을 의도했는지, 미디어가 어떤 식으로 맥락을 누락시켰고 논란을 증폭시켰는지 등등은 전혀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운 나쁘게 재범이 걸려든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누군가가 비슷한 시늉이라도 한다면 자신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언제든 폭발시킬 준비가 돼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 에너지가 대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단순히 애국주의로 환원되지 않는 그 에너지, 언제든 건드리면 터뜨릴 준비가 되어 있는 그 에너지 말이다. 나는 그것이 애국주의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는 ‘평등에 대한 요구’라고 판단한다. 그렇기에 동질적인 ‘한국인 전체를 싸잡아서 욕하는 건’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이며, 최소한 재범이 ‘군대 가면 용서해’준다는 말도 나오는 것이다.

어떤가. 이제 문제가 좀 정리되지 않는가. 실제로, 그동안 폭력적 대중의 면모를 보여줬던 일련의 사건들도 평등주의적 요구가 애국심 따위로 축소되었던 경우가 다반사이다. <디-워> 논란, 유승준 이중국적 문제, 황우석 사태, 문희준 비판 등등. 대개가 최초의 에너지는 평등에 대한 요구로부터 시작하는 경우들이다. 지배 권력으로부터 핍박 받는 가상적 마이너리티(심형래와 황우석의 경우)에 대한 동일시, ‘다 해 처먹는 꼴불견’(유승준과 문희준의 경우)에 대한 박탈감과 분노 등은 분명 평등주의적 정서와 일맥상통한다(그런데 이런 식의 평등주의적 요구들은 왜 항상 왜곡된 다른 얼굴을 하고서만 등장하는 것일까. 이 글에서 채 다룰 수는 없지만 분명 중요한 질문이다).

요컨대 애국주의에 빠진 대중은 없다. 있더라도 그러한 진단이 한국사회에 도움을 주는 측면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강하고 근본적인 수준에서 진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내가 대중들의 대응 방식을 찬미하거나 간과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강조점은 (앞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이 최초의 에너지를 축소시키는 어떤 사회문화적 관행들에 주목하자는 데 있다.

평등에 대한 우리의 요구는 왜 애국주의적인 배타주의나 폭력주의로 환원되는 것일까. 우리는 그러한 한계를 끊임없이 발견하고 돌파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봐야 할 한계라는 것은 (애국주의 자체의 한계뿐만 아니라) 평등을 애국심으로 왜곡시켜 인식의 확장을 가로막는 어떤 고질적인 습성이 아닐까. 스스로 애국주의라는 한계를 그어놓고 대중을 애국주의에 빠졌다고 비판하는 비평가나, 자신이 정말로 애국주의자인 것으로 상상하는 대중들이나, 모두 애국주의 프레임의 인식적 한계에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달리 말해, 의사도, 환자도.

<글 싣는 순서>

① ‘연예인은 공인이다’의 숨은 논리
② 연예기획사의 생리: SM, YG, JYP의 기업문화
③ 찌라시 언론들의 ‘삼각 동맹’
④ 애국주의에 빠진 '대중들'
⑤ 그래도 팬심은 팬심인가?
⑥ 오역이었다니! … 그러므로 모순은 계속됩니다

  1. [2009/10/14] 오역이었다니 … 고로 모순은 계속 by 김성윤 (4838)
  2. [2010/02/26] 1시 59분, 나머지 1분의 민주주의 *1 by 김성윤 (7746)
  3. [2009/09/24] '연예인은 공인이다'의 숨은 논리 *2 by 김성윤 (4970)
  4. [2009/09/18] 새로운 팬덤 문화를 위하여 / 미디어스 by 권경우 (1723)
  5. [2009/09/28] 연예기획사의 생리: SM, YG, JYP의 기업문화 by 김성윤 (6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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