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삼 지식인과 대중에 관하여

2009.08.08 09:55

윤삼 조회 수:3566

때때로 사람들은 가르침과 지시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문제는 여기서 비롯된 듯하다.

요즘 어찌하다보니 집안살림을 내가 하고 있는데, 그럴 때면 엄마가 엉덩이를 끌고 부엌으로 와서는 잔소리를 한다. 엄마는 나름대로 우리집 규모와 형태에 맞는 살림을 해왔던 것인데, 갑자기 내가 나서니까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빨래 삶는 방법, 빨래 너는 간격, 김치통 배열, 김치찌개 끓이는 법, 잡곡 섞는 비율... 문제는 잔소리를 들으면 '아, 그렇게 해야 하는구나!'하는 깨달음은 커녕, 모든 일을 일순간 팽개치고 싶어진다는 거다. "관둬, 안 해!" 엄마 입장에선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해댄 셈이다.

이런 이야기를 친구한테 했더니, 그런 식으로 집안일 '가르침'을 받고 익숙해지는 거라고 한다. 일반적으로는 맞는 이야기인데, 내 경우에는 문제에 적어도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내가 집안일 자체를 하기 싫어한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는 수밖에 없는데 자꾸만 짜증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거다. 지금의 나로서는 해결 불가능한 일이니 첫 번째 원인은 그냥 잊어버리자. 관건은 두 번째 원인인데, 내 입장에선 엄마의 잔소리가 결코 '가르침'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엄마는 그저 이런저런 지시를 할 뿐이지, 결코 가르침을 준 적이 없다.

일단 사려깊게 생각해보자. 엄마가 스스로 알게 된 노하우에는 중요한 점이 있다. 그렇다. 중요한 건 그 노하우를 알게 된 과정에 있는 것이지 집안일의 기술 그 자체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난 집안일을 할 때 무얼 배워야 할까. 빨래 삶는 통에 빨래들을 왜 이러저러한 모양으로 놓고 물을 부어야 옳은 건지 그 이유를 좀 알아야 한다. 그저 엄마는 그렇게 안 하면 빨래가 골고루 삶아지지 않거나 탄다고 한다.

지시란 무엇인가. 구상은 엄마가 하고 실행은 내가 한다. 난 그저 엄마의 손발을 대신할 뿐이다. 엄마는 감독자, 나는 일꾼. 노예. 노동자. 나는 하층계급. 나는 프롤레타리아. 그것도 무지랭이 룸펜... 아무튼 이래선 살림을 하고 싶을 래야 하고 싶을 수가 없다. 불신만 생길 따름이지. 그렇다면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스스로 질문하게끔 해준다. 엄마가 실행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내가 구상의 기회를 박탈 당하지는 않는 것. 오히려 내가 실행함으로써 엄마의 오류를 정정해줄 수도 있는 것. 아마도 그런 어떤 것.

물론, 본인은 가르친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는 지시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곡절... 우리 모자만 겪는 건 아닐 거다. 뿐만 아니라 가르침과 지시 사이의 혼동을 엄마만 하는 것도 아닐 거다. 가르침 혹은 지시를 받는 나 역시도 혼동을 겪으니 말이다. 대개의 경우 몇 번의 지시 받은 경험으로 인해 소중한 가르침의 기회를 직접 발로 차버리는 경우도 있을 게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중 대다수는 그런 식의 관행으로부터 자유롭기가 심히 어렵다. 예컨대 어쩌다 정말 갈구하던 가르침의 순간이 오더라도(정말이지 엄마도 평생 엄마를 처음 해보는 지라 그런 가르침의 순간을 아주 가끔만 보여준다), 속된 말로 직접 맛보진 않고선 그게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귀찮아서 아예 듣기조차 싫거나 하는 그런 소치들로 인해서 우리는 가르침 받을 기회를 상실하곤 한다.

그렇지 않은가. 아아, 살림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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