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일 [세미나 정리] 나의 지적 멘토-알튀세 형님!
2009.06.26 19:09
나의 지적 멘토-알튀세 형님!
청운의 꿈을 품고 대학원에 들어와 적응기라 할 석사 1학기 과정을 술로 보내고 있을 무렵, <사회변동론> 수업을 함께 듣고 있던 박사과정 선배(박사과정 마지막 학기)의 제안은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즉, 직업으로서 공부를 선택하고 연구자로서의 길을 걷게 한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작용했던 것이다. 그 선배의 제안은 알튀세를 함께 세미나 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난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았기에 이를 연구할 수 있는 문화사회학을 전공하겠다고 말했던 터라, 선배는 문화이론의 중요한 이론가인 알튀세의 학습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해 주었다. 학부 때부터 학회활동을 통해 다양한 지적 자원을 축적해온 경험은 선배의 이 같은 제안에 대해 주저함 없이 ‘콜’이라 답하게 했다. 마침 수강과목이었던 <현대사회학이론>의 발표 역시 알튀세였기 때문에 세미나와 수업 발표까지 한꺼번에 해결할 호기이기도 했다. 알튀세 세미나는 주변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선배와 단 둘이 진행되었다.
첫 교재는「루이 알튀세의 이데올로기론의 성립과 발전과정에 대한 일고찰」(김수정, 1991)이라는 석사논문이었다. 이 논문은 지금 다시 읽어봐도 알튀세에 대한 최적의 입문서라 할 정도로 알튀세의 전기와 중기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이 경험은 이후 이론가 중심의 세미나나 공부에 있어 우선적으로 석ㆍ박사 논문을 통해 기초 지식을 쌓은 다음 원전으로 들어가는 공부 방법으로 자리 잡게 했다.
이 논문에 나와 있는 알튀세의 지적 배경이 된 당시 서구 사회(이론 없는 프랑스 공산당과 좌파운동, 스탈린 사후 진행된 후로시초프의 인간주의)에 대한 알튀세의 사상투쟁은 이후 맑스주의자로서의 자세와 인생역정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이는 곧 이론적 입장이란 무엇이며, 현재적 의미에서 맑수주의 및 맑스주의자로서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준거를 형성시켜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세미나를 통한 알튀세와의 조우는 내 삶에 있어 지적 멘토를 만난 소중한 경험이었으며, 여전히 그의 치열했던 삶에 대한 동경은 계속되고 있다.
맑스주의 문화이론 세미나를 통해 알튀세의 원전으로 본 저서는 <맑스를 위하여>였다. 이 책을 통해, 혹은 그의 다는 저서를 통해 알튀세를 평가한다면, 알튀세는 ‘맑스주의 철학’을 통해 현재적 관점에서 맑스와 그의 사상을 새롭게 복원하고자 한 철두철미한 맑스주의자이다. 물론, 맑스주의라는 산맥에 엮여 있는 사상가나 실천가들은 즐비하다. 하지만 맑스주의 철학을 발견하고 재구성해서 맑스를 사고한 그의 지적 모험은 그 어느 봉우리보다 높고 올곧게 해주었다. 왜냐하면 맑스주의 철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그동안 맑스주의와 맑스 연구에 있어 이론적 공백이었기 때문이다. 즉, 속류 맑스주의나 소련이 정치 이데올로기로 악용한 맑스 철학은 알튀세에게 있어 진정한 맑스를 독해하는데 있어 최대 걸림돌이었던 것이다.
알튀세에게 있어 인식론적 단절을 통해 기존의 모든 철학(헤겔보다는 독일 관념론과 포이에르바하의 인간학적 유물론)을 근본적으로 뒤바꾼 맑스의 문제틀이 바로 맑스주의 철학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맑스주의 철학이 맑스에 의해 하나의 독립된 사상이나 방법론으로 집필된 적이 없거니와, 언제나 현실 비판 속에 녹아 있는 ‘실천의 철학’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고정된 세계의 단순한 반영이 아니라, 인식대상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실천의 철학’으로서의 맑스 사유의 특이성은 알튀세에게 있어 맑스의 천재성과 진보성의 핵심을 이룬다. 바로 이러한 맑스주의 철학의 특이성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현재적 문제를 해결할 이론을 정립하려 한 것이 알튀세의 지적 욕망이다.
“맑스로 돌아가라”는 알튀세의 외침은 맑스주의 철학의 발견과 재구성에 있다. 이러한 알튀세의 작업은 ‘이론적 실천’이 갖는 중요성을 재정립하게 만들었다. 즉, 이론적 실천이 현실 운동의 단순한 정당성 부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하나의 독립된 완결성과 자율성을 지닌 중요한 영역이라는 것이다. 사실, 알튀세가 없었다면 나 자신에게 있어 혹은 한국사회의 진보운동에 있어 학술운동의 중요성에 대한 공론화는 훨씬 늦어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알튀세 이론이 수용되는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정치투쟁의 우위성이 강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튀세는 이론적 실천의 물질성을 승인한다는 의미에서 사회를 네 가지 심급(정치, 경제, 이데올로기, 이론)이 중층결정된 하나의 구성체로 설정한다. 알튀세의 심급론과 그에 대한 위상학인 중층결정 개념은 맑스의 이원론, 즉 ‘토대와 상부구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능케 했다. 즉, 맑스의 이원론에 대한 기존의 비판인 계급결정론 혹은 경제환원론을 극복하게 해주었다.
알튀세에게 있어 맑스의 토대/상부구조론은 사회가 토대와 상부구조로 양분화 되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성요소들의 관계가 복잡하고 불균등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사고한 문제틀인 것이다. 따라서 알튀세의 심급론은 맑스의 이원론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이원론을 통해 사회적 관계의 중층성을 사고하고자 한 맑스의 현대판 개념인 것이다. 알튀세는 레닌의 ‘약한 고리’ 개념과 마오의 모순론(주요모순/부차모순, 중층성)을 통해 맑스의 사고가 어떻게 현실적으로 구현되는지를 증명하고자 했다.
알튀세는 맑스에 대한 우파의 악의적 비난과 좌파의 편의적 전유에 대항해 평생을 싸워온 인물이다. 특히 알튀세라는 거봉이 구축된 기반이 비맑스주의 혹은 반맑스주의라 지칭되었던 이론(언어학과 정신분석학의 수용)이라는 점은 더욱 그를 빛나게 한다. 왜냐하면 맑스에 대한 충성도는 그의 원전에 대한 반복학습에 있었지, 완전히 다른 지적 전통에서 그를 보려는 어떠한 시도도 환영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전개된 맑스주의 논쟁은 맑스가 저의 저작을 통해 직접적으로 문제되는 상황을 언급했는가 혹은 하지 않았는가와 같은 문헌고증에 국한되어 있었다. 또한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맑스에 대한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던 당시 한국 좌파에 있어 알튀세의 독특한 이론적 행보는 수정주의의 또 다른 버전에 불과했다. 당시 지적 분위기 속에서 수정주의라는 낙인은 이론적 비판보다 선험적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기존의 논쟁 관행에서 완전히 벗어나면서 맑스에 대한 혐의를 풀 수 있게 해준 지적 흑기사가 바로 알튀세였다. 편협한 이론적 교조주의에서 벗어나 철학이라는 본류를 보게 한 인물, 이론적 실천의 중요성을 일깨워줌으로써 이론 없는 실천(단무지=단순+무식+지랄)의 허상 경고, 논적에 대한 인식론적 단절뿐 아니라 자신의 이론적 궤적 자체를 뒤엎는 치열하면서도 용기 있는 연구 태도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연구자가 그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야 할 이유를 충분히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알튀세의 맑스 독해가 하나의 완결된 이론이 되어서는 안 됨을 주의해야 한다. 알튀세는 현재적 관점에서 맑스의 저작(고전)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전례를 보여 준 것이지, 그의 독해가 맑스 연구의 유일한 혹은 고정된 이론으로서 인식되면 안되는 것이다. 따라서 2009년을 살고 있는 현 시점에서, 맑스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새롭게 진행되어져야 한다. 그것도 다양한 층위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알튀세는 단지 하나의 사례로서 의미가 있을 뿐이다. 알튀세 세미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여전히 맑스의 고전이 갖는 무한한 재해석의 가능성, 즉 현재적 난제를 풀 수 있는 지적 해방의 자원이 충분히 제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이유로, “맑스라는 바다는 무한히 넓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