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연예계 PR비 사건이 터졌을 때, 당시 검찰 고발을 주도했던 문화연대로 익명의 제보들이 줄을 이은 적이 있다. 제보 내용들은 일종의 연예계 ‘로비의 정석’과도 같은 것이었다. 로비의 방법은 크게 세 가지였다. 가장 일반적으로 현금을 쇼핑백에 담아 은밀하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관계가 더 돈독해지면 상장된, 혹은 상장할 주식을 건네준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바로 ‘성 상납’이다. 장자연씨의 자살로 다시 도마에 오른 연예계의 성 상납 스캔들은 한국 연예계의 복잡하고도 슬픈 자화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성 상납 스캔들은 스타를 꿈꾸는 연예인, 연예인의 목줄을 잡고 있는 기획사, 그리고 연예인의 몸을 탐하는 상층 자본과 권력계 사이에서 벌어진 ‘도미노 게임’이다. 장자연씨가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도 스스로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성 상납 스캔들은 전적으로 위로부터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불평등한 거래다. 통상 이런 사건이 터지면 연예인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이 유포된다. 몰지각한 연예인들이 스폰서를 찾기 위해 성 상납을 암묵적으로 동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성 상납은 위로부터의 요청에 의해 거래가 시작된다. 왜 상층부 자본-권력계는 연예인을 탐할까? 그것은 우월적 힘을 가진 자들이 권력을 행사하는 독특한 방식 중의 하나다. 방송사 프로듀서, 대기업 광고주, 유력 정치인들이 여성 연예인과 놀아보고 싶어하는 것은 성적인 관심만이 아니다.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높은 지위의 능력을 검증받고 싶은 지배 욕구에서 비롯된다. 연예인과 상층부 권력자를 연결하는 연예기획사 대표는 자신의 사업을 보장받기 위해 소속 연예인을 희생시킨다. 이 과정에서 연예인들은 기획사 대표와의 인간적 관계, 일방적인 연예계약서의 약관, 스타가 되고 싶은 개인적인 번민에 시달리다 ‘검은 수청’의 유혹을 버리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물론 연예 표준 계약서에 성 상납을 수행할 의무가 들어있을 리 없다. 문제는 표준계약서 약관에 ‘갑’인 기획사의 각종 요청을 ‘을’인 연예인이 거부할 예외조항이 거의 없다는 데 있다. 비즈니스를 위해 낯선 술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포괄적으로 ‘을’이 해야 할 일 중 하나로 관행화된다. 연예인들은 이 포괄적 의무이행의 공포에 시달린다. 그런 점에서 연예 계약서는 ‘갑’과 ‘을’의 관계만이 아니라 숨겨진 권력자 ‘병’과의 불평등 관계를 전제로 한다.

    장자연씨의 죽음이 도덕과 윤리 불감증에 시달리는 연예계를 향한 경고의 ‘조종’이 되었으면 한다. 자신의 사회·경제·정치적 능력을 뽐내기 위해 여성 연예인에게 수청을 강요하는 남성 권력자들의 사회가 계속되는 한, 제2의 장자연 비극은 재연될 것이다. 그리고 연예인을 한낱 치부의 도구로 삼는 일부 연예기획사의 도덕불감증이 지속되는 한, 무명 연예인들은 자신의 처지에 통곡을 할 것이다. 성 상납 스캔들은 화려한 연예계를 배경으로 우리 사회의 숨겨진 권력의 실체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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