햅. 장씨 살인 사건을 보며
2009.03.22 18:07
함부로 돌을 집지 마라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서 생각을 정리한다는 것은 항상 조심스럽다. 그를 두번 죽이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되고 어설픈 생각이 또 다른 폭력을 낳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다만 이번일의 경우 그의 죽음보다 그의 죽음에 의해 알려진 일로, 이미 누구나 다 알지만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 같은 것들을, 개인적으로 생각을 정리해 놓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생각한 것들을 정리하다 문득 한 러스브스토리 영화가 생각이 났다.
남자는 돈이 엄청나게 많은 갑부다. 자신의 여자를 쇼핑에 데려가서는 카드를 맡기며 원하는 만큼 사라고 말한다. 여자는 창녀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꿈이 있었지만 잊어버린지 오래된, 먹고 살기 위해 거리에서 자신의 몸을 파는 여자다. 두 사람이 몸을 파는 여성과 손님의 관계로 만나서 사랑에 빠졌다. 만일 이런 일이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이 영화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이다. 게리 마샬 감독에, 리처드 기어와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그 영화이다. 거리에 매춘부 비비안이 백만장자 에드워드 루이스의 차에 오르면서 시작되는 이 러브스토리는 신분을 뛰어넘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우리의 뇌리에 남아 있다. 그러나 만일 이런 일이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어땟을까?

사실 이 영화가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로 우리의 뇌리에 남아 있지만 지금에 와서 우리사회에 대입하여 곰곰히 생각해보면 '어째 좀 거시기한걸' 하는, 씁쓸한 면이 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는 동화속에서나 가능한, 신분의 벽을 뛰어 넘고, 오로지 사랑에 올인한 두 연인이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다는 내러티브를 구성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현실을 잘 살펴보면 우리는 곳곳에서 리처드와 줄리아를 만날 수 있다. 당신은, 돈만 많은 남자(리처드는 영화 속 주인공이니 할 수 없다)와 미모만 출중한 여자의 러브스토리를 어떻게 보는가? 우리의 현실에서 이들의 러브스토리는 극단적 속물주의의 한 예라고 치부된다. 여성이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자신의 몸을 팔았다고 치부받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전제는 매춘이다. 매춘은 불건전한, 불법적 노동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도대체 건전한 노동과 그렇지 못한 노동에 기준이 뭔지에 대한 의심을 해야 한다. 성매매가 아닌, 소위 '건전한 노동'에는 착취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오히려 다른 '건전한 노동'을 하기 위한 조직내에서 일어나는 차별과 착취가 더 위험하지 않은가 말이다. 너무나 관성적이기에 저항하기 힘들지만 너무나 일상적이기에 우리에게 더 위험한 노동들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력은 상품이다. 자신을 팔아서 먹고 살아야 한다. 즉 1)몸을 파는 행위는 성매매 업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2)날이 갈수록 노동력의 가치는 하락하여 구속적이고 착취적이라는 점에서 매춘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
문제는 성산업속에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무조건적 피해자이고 예속적 존재라는 점에 있는 것이다. 즉 그들 스스로 전복적 주체가 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데 있다. <귀여운 여인>의 비비안은 자신의 삶에 대한, 전복의 주체가 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지만 성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다라는 것이다. 소위 '건전한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과 성산업 종사자들의 차이도 이점인데, 둘 다 몸을 팔지만 전복적 주체의 가능성의 소유 유무에 따라서 차이가 날 뿐이다. 이번에 스스로 삶을 마감한 이 연예인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자신의 삶을 전복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 절망감에 좌절했던 것은 아닐까 한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서 생각을 정리한다는 것은 항상 조심스럽다. 그를 두번 죽이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되고 어설픈 생각이 또 다른 폭력을 낳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다만 이번일의 경우 그의 죽음보다 그의 죽음에 의해 알려진 일로, 이미 누구나 다 알지만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 같은 것들을, 개인적으로 생각을 정리해 놓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생각한 것들을 정리하다 문득 한 러스브스토리 영화가 생각이 났다.
남자는 돈이 엄청나게 많은 갑부다. 자신의 여자를 쇼핑에 데려가서는 카드를 맡기며 원하는 만큼 사라고 말한다. 여자는 창녀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꿈이 있었지만 잊어버린지 오래된, 먹고 살기 위해 거리에서 자신의 몸을 파는 여자다. 두 사람이 몸을 파는 여성과 손님의 관계로 만나서 사랑에 빠졌다. 만일 이런 일이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이 영화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이다. 게리 마샬 감독에, 리처드 기어와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그 영화이다. 거리에 매춘부 비비안이 백만장자 에드워드 루이스의 차에 오르면서 시작되는 이 러브스토리는 신분을 뛰어넘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우리의 뇌리에 남아 있다. 그러나 만일 이런 일이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어땟을까?

사실 이 영화가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로 우리의 뇌리에 남아 있지만 지금에 와서 우리사회에 대입하여 곰곰히 생각해보면 '어째 좀 거시기한걸' 하는, 씁쓸한 면이 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는 동화속에서나 가능한, 신분의 벽을 뛰어 넘고, 오로지 사랑에 올인한 두 연인이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다는 내러티브를 구성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현실을 잘 살펴보면 우리는 곳곳에서 리처드와 줄리아를 만날 수 있다. 당신은, 돈만 많은 남자(리처드는 영화 속 주인공이니 할 수 없다)와 미모만 출중한 여자의 러브스토리를 어떻게 보는가? 우리의 현실에서 이들의 러브스토리는 극단적 속물주의의 한 예라고 치부된다. 여성이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자신의 몸을 팔았다고 치부받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전제는 매춘이다. 매춘은 불건전한, 불법적 노동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도대체 건전한 노동과 그렇지 못한 노동에 기준이 뭔지에 대한 의심을 해야 한다. 성매매가 아닌, 소위 '건전한 노동'에는 착취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오히려 다른 '건전한 노동'을 하기 위한 조직내에서 일어나는 차별과 착취가 더 위험하지 않은가 말이다. 너무나 관성적이기에 저항하기 힘들지만 너무나 일상적이기에 우리에게 더 위험한 노동들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력은 상품이다. 자신을 팔아서 먹고 살아야 한다. 즉 1)몸을 파는 행위는 성매매 업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2)날이 갈수록 노동력의 가치는 하락하여 구속적이고 착취적이라는 점에서 매춘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
문제는 성산업속에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무조건적 피해자이고 예속적 존재라는 점에 있는 것이다. 즉 그들 스스로 전복적 주체가 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데 있다. <귀여운 여인>의 비비안은 자신의 삶에 대한, 전복의 주체가 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지만 성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다라는 것이다. 소위 '건전한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과 성산업 종사자들의 차이도 이점인데, 둘 다 몸을 팔지만 전복적 주체의 가능성의 소유 유무에 따라서 차이가 날 뿐이다. 이번에 스스로 삶을 마감한 이 연예인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자신의 삶을 전복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 절망감에 좌절했던 것은 아닐까 한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날이 갈수록 우리 사회의 모든 이들이 전복의 가능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경기침체로 고통을 겪는 시민들을 위한 이벤트로 안내양을 등장시키고 자신의 제자에게 감칠맛이라는 표현을 하는 나라에서 너무 오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에구구
경기침체로 고통을 겪는 시민들을 위한 이벤트로 안내양을 등장시키고 자신의 제자에게 감칠맛이라는 표현을 하는 나라에서 너무 오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에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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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구 팀 블로그
2009.03.23 05:14
'매춘'이라는 말 - 햅.님과 와라님의 대화와 관련해서... 0. 햅.님과 와라님의 대화에 나도 댓글을 보태려다, 얘기가 길어지는 것 같아서 그리고 장자연이란 배우로 인한 사회적 사건이라는 범위로부터 다소 벗어난 듯해서 별도의 포스팅으로 트랙백을...
댓글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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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라
2009.03.22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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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춘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스스로도 조심스러운 면이 있지만, 포주를 생각하다보니 튀어나온 듯 하오.
2. 우리 사회에서 그의 죽음을 성매매로, 건전하지 못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것에 대한 언짢음이 생각의 단초였지요. 서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성의 향상 및 바람직한 노동의 재생산을 위하여 성매매를 불법화하는 과정을 겪었다지만, 또 반면에 같은 논리로 국가적으로 성을 팔았던 나라에서 너무 쉽게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감정적 언짢음 말이오. 너, 나 우리 모두 고립된 개인으로서 또 다시 폭력 앞의 벌거숭이일진데 서로를 향해 비웃지 말자는 생각이었다오.
너무 말을 함부로 하는 이들이 많아서 나도 가끔은 내일이 아닐진대도 기분이 언짢아 지는구랴.... =0=
까칠해도 좋아. 까칠한 것도 치밀하게만 해주면 즐거울 수 있어. 아... 감정적으로 너무 우울한 날이었다. ㅋㅋ
XOXO -
윤삼
2009.03.23 05:20
용어와 관련해서는 별도의 포스팅을 해두었고 ^^;
잠시 씰데없는 소리를 섞자면, 개인적으로 나한테 <귀여운 여인>은 신데렐라 컴플렉스, 성매매 등의 얘깃거리와 더불어서, M&A 사업가와 거리의 여자라는 직업 구도도 좀 신비로웠어요. 둘 다 상품화될 수 없는 것을 상품화하는 사람들이었거든요. 어떤 상품은 신종이고 어떤 것은 전통적으로 구래한 것이기는 했지만. 둘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나봐ㅋ.
물론 요즘 시점에 이 직업군들이 사랑에 빠질 이유는 없겠죠. 물론 둘 다 사회적으로 비난 받기는 하지만, 한쪽 직업이 워낙 요즘엔 대세인 까닭에...
(아, 점점 장자연과는 다른 얘기한다 ㅋ)







1. 매춘이라는 용어 : 매춘, 매음, 윤락 등의 용어는 성매매의 문제를 본질적으로 왜곡시키는 용어라는 점을 잊지 말길. 즐거움 혹은 봄(청춘)을 판다는 그 용어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하나는 성을 쾌락과 젊음이라는 비정치적 언어로 환원 시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파는자를 강조함으로써 성매매 문제에서 주로 문제가 되는 남성의 존재를 은폐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성매매라는 용어도 다른 언어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긴 하다만...
2. 궁금증 : 이글에서 핵심적으로 문제 삼고자 하는 지점은 어떤걸까? 성매매의 문제인가? 작업장에서 발생하는 지배의 문제인가? 아마 둘다인가? 성적 지배의 문제와 작업장에서 발생하는 지배의 문제가 절합되며 발생하는 문제를 지적하고 싶었던가?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하기에는 두 가지 문제 모두 뭔가 뭉뚱그려 넘어가고 있는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성매매의 문제를 다룰 때는 성'노동자'를 이야기 할 것인지, '성'노동자를 이야기 할 것인지에 따라 문제의 초점이 달라질 수 있을듯하다. (특히 전자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해서 노동력의 상품화의 문제를 이야기 했다면, 일반적 노동력의 상품화 과정이 노동자들을 생산수단과 노동도구로부터 분리하는 폭력적 과정이 각인된 역사를 문제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성'노동자'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녀들이 어떤 폭력적 과정을 통해 한 공동체로부터 분리되어 왔는지 설명되어야 할게다. 사실 노동력 일반이 국가의 폭력을 통해 분리된 과정과 그녀들이 공동체로부터 분리되는 과정은 (폭력의 주체이든, 그 방식이든)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듯하다. 그녀들은 폭력적 과정을 통해 분리될 뿐만 아니라 고립된 개인으로서 또 다시 폭력 앞에 노출되는데, 이것이 꼭 노동력 일반의 노출 과정과 동일하지 않으니까.)
뭐 최근 발생한 사건을 가지고 이래저래 연관되는 생각들을 스케치하고 싶었던듯한데, 그래도... 난 오늘 까칠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