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삼 ‘오바마’라는 환상을 횡단하기
2008.11.09 20:32
‘오바마’라는 환상을 횡단하기
0.
황제: “황실호위대는 우리 황실을 보호한다. 오늘밤 축제 때 그들을 네가 지휘하게 될 것이다. 알겠느냐?”
황제: “네가 무엇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영화 <황후화>(2006) 중에서

1.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에게 최초의 흑인 대통령은 영화 <딥 임팩트>(1998)에서 연기했던 모건 프리먼이었다(실제로는 1972년작 <더 맨>). 그리고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2003)에서 하느님으로 연기했던 모건 프리먼이었다. ‘과연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세계체계의 헤게모니 국가인 미국에서, 달리 말해 그 자신을 언제나 전지구적인 보편으로 내세우는 미국에서, 지구상의 모든 인민 대중의 운명을 이끌 영도자로 유색인종이 등장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버락 오바마는 그걸 멋지게 증명했다. “나의 존재 자체가 해답이다.”라면서. 그렇다. 바로 그 자신이 해답이다.
2. 그런데 애초에 나는 왜 그런 질문을 던졌던 것일까. 질문의 일차적 의미는 문자 그대로 미국에도 흑인 대통령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 나는 그게 궁금했던 것일까. 여러 교과서에도 나오듯이, 우리가 세상에 어떤 질문을 던진다는 자체는 언제나 이미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애초의 질문은 배제 없는 세상에 대한 정치적 전망 내지는 열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상 어떤 보편주의도 배제 없이 현실화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프랑스 혁명에도, 볼셰비키 혁명에도, 심지어는 문명의 탄생과 함께 시작한 아들들의 부친 살해의 순간에도 말이다. 폭력적인 질서를 뒤집었던 이들은 언제나 대항 폭력으로써 자기 자신을 무장하고 또 다른 이들을 배제하곤 했다. 오바마는 이런 전철에서 과연 예외적인 존재일 수 있을까.
멀리 갈 것도 없이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와 ANC 정부를 상기해보자. 스스로 물어보자. 그들의 성공과 함께 남아공 흑인들의 처지는 개선되었는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명시적이었던 흑백분리의 사회가 암묵적인 것으로 되었다는 것뿐이다. 오히려 문제는 더 복잡해졌다. 공간적으로, 문화적으로, 제도적으로 시각화되었던 차별, 배제, 분리, 폭력 등의 문제들은 이제는 제 자신을 은폐하고 왜곡하면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화해버렸다. 지난 5월에 있었던 사건에서도 보듯이, 신자유주의 체제와 더불어 예전의 피해자들은 이주민들에 대한 또 다른 가해자가 되었다. ‘무지개’빛 희망은 환상 그 자체였음이 증명되었다. 갈등의 구도가 흑백에서 흑흑으로 바뀜에 따라, 백인들은 사회적 초점에서 사라졌다. 그들의 흑인 대통령 음베키는 백인 자본가 계급의 충실한 대리인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3. 오바마의 존재 자체가 바로 해답이다. 그러나 그는 희망이 아니라 절망을 보증할 해답이다. 우리들 중 누군가는 오바마가 당선됨으로써 국제질서가 안정을 되찾고 부의 분배가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특히 온건한 개혁 성향을 가진 이들에게서 그런 기대감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 미국은 단지 착한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인 미국이다.
착한 얼굴. 흔히 다문화주의로 표상되는 미국의 이미지는 저렴한 노동력을 공급해주는 아메리칸 드림의 환상적인 보충물에 불과하다. 그들은 오바마의 출생에서 당선까지를 하나의 신화로 포장함으로써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왕래한다. 우리는 거기에서 한 편의 정치 드라마 혹은 거대한 영웅서사를 보고 있는 듯하다.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모험적인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고, 인도네시아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이 젊은 대통령은 극적인 요건들을 완비하고 있지 않은가.
일각에서는 오바마의 도래와 더불어 ‘희년’이라는 표현도 쓴다. 유태 전통에서 50년마다 한 번씩 찾아온다는 ‘희년’은 독점 소유자들로부터 토지를 회수하여 원래의 소유자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는 의미를 지닌다. 심지어는 ‘혁명’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혁명…. 그런데 정작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혁명이라고 표현하면서 정작 혁명을 소망하지는 않는다. 최초로 유색인이 유리 천장을 뚫고 탑 꼭대기에 자리한 것에 그저 만족할 뿐이다.
좋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나온다. 오바마의 당선으로 현대자본주의의 생산수단(단순히 화폐가 아니라)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될 것인가. 당연히 회의적이다. 두 번째 의문. 50년 전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포함한 유색인들에게 희년이라는 것은 당시의 예속적인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단 말인가. …… 아무도 그런 혁명을, 그런 퇴행을 원하지 않는다. 오바마를 예찬하는 그 누구도 실재와는 조우하려 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4. 오바마는 전혀 위험스럽지 않은 인물이기에 대권 도전에 성공한 셈이다. 일차적으로 그는 미국의 사회적인 생산관계를 절대로 위협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인종 문제에 있어서도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다. 그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경험했던 인종 차별의 문제를 미국이라는 추상을 통해서 화해하는 전략을 취했다. 그는 몇몇 흑인 급진주의자들이 가졌던 아프리카중심주의를 철저하게 배격했다.
이러한 비위협성에는 ‘그 자신의 존재가 증명하는’ 혼성성(hybridity)이 강하게 작용했다. 백인 어머니, 하와이 출생, 아시아에서의 유년시절 등은 그가 온전한 흑인도 아니고 백인도 아닌 위치에 서게 했다. 그의 태생적 조건은 오늘날 미국의 혼합적인 인종 위계의 토크니즘(구색맞추기) 전략에 포섭될 만한 중요한 배경이 된다. 그는 흑인 위에 있으며 백인 아래에 있는 존재이다. 샐로드 보울(salad bowl) 아메리카의 신화는 그렇게 완성되어간다.
이는 흑인 그리고 유색인을 국민으로서 불완전하게 포섭하는 체계의 위력을 보여준다. 실제로 백인중심주의라는 권력은 통제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감안한다면, 혼성성에 대한 어떤 담론이라 할지라도 그 위험성을 얕잡아볼 수가 없다. 토크니즘적 제스처를 통해 평등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헤게모니가 출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체계에서 지배집단은 인종적․문화적인 혼합을 통해 위선적인 통합을 지향하고, 그 이면에서는 모종의 백인성을 추구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외양으로 인종적 위계를 재생산하는 미묘한 헤게모니를 행사한다. 한 마디로 말해, WASP은 붕괴되지 않는다. 그들은 진화할 뿐이다.

5. 실제로 오바마가 진정한 혁명에 착수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이 점에 관해서는 국내 보수 논자들의 말이 옳다. 미국에 좌파란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MB노믹스와 오바마노믹스는 차이점들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의 유사점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이 표출하는 (종종 노무현과 부시로 표상되는) 국가의 무능력이라는 정세 속에서 등장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시장의 퇴행적 확장 과정에서 배제된(혹은 배제의 위험에 처한) 대중들의 불안은 이명박과 오바마 양자 모두에게 포퓰리즘을 강제한 측면이 있다. 국가의 강화라는 제스처가 바로 그것이다. 때때로 이것은 공공요금 인상 억제를 통해 민심을 달래는 제스처로서(이명박), 또 때로는 증세와 규제를 통해 고삐 풀린 시장을 견제하는 제스처로서(오바마) 나타난다. 이들은 각자 사회의 자기 방어 전략을 취하고 있을 따름이다. 혹여 향후에 한미FTA 문제에서 자동차 분야를 중심으로 두 정부가 충돌하더라도 크게 따질 필요는 없다. 그 둘은 다르기보다는 서로 너무 닮았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요는 (클린턴 행정부 당시와 마찬가지로) 오바마의 정책이 세간에서 희망하는 것처럼 급진적이라기보다는, 미국 헤게모니의 유지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는 점이다. 만약 그가 이라크 철군을 결정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우리는 한 가지 해석을 경계하고 두 가지 해석을 취해야 한다. 그가 부시에 비해 도덕적으로 훌륭해서일 것이다? 바로 이것을 경계해야 한다. (군사적 헤게모니는 위협받지 않고 있으므로) 소모적인 전쟁 비용을 줄이고 재정을 안정화하여 경제적 헤게모니를 확충하는 한편, 세계체계에서 상실한 문화적․도덕적 헤게모니를 확보․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을 취해야 한다.
6. 물론 오바마가 당장에 자국 내에서 이명박이나 음베키와 같은 파탄을 유발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행보가 한국적 상황에, 그리고 세계 인민 대중들에게 과연 어떤 영향을 초래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신화적 열광을 넘어서는 급진적이고 정치적인 태도로 임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는 보수나 개혁 세력 할 것 없이 ‘혁명’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을 정도로 오바마를 자기 식으로 전유하려고 안달이 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하지만, 정작 변하는 것은 없다. 사람들은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을 두고 희망을 보지만, 나는 거기서 피할 길 없는 절망을 먼저 본다. 제 논밭을 온전히 태워버린 후에야 비로소 새 싹을 기대할 수 있다는 심정으로 말이다.
<미디어스> 기고/ 200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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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ow_gray
2008.11.14 17:25
환상속의그대; 오바마이야기 얼마전 있었던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가 당선이 되었습니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미국이지만 현지에서 서식하고 있는 여러 블로거들을 통해서 그곳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받고 있습니다. 지나가던 흑인이 만세삼창을 하며 뛰어갔다는 이야기에서부터, 바야흐로 이제 소통의 시대가 열렸다는 이야기에서부터, 몰락의 길을 걷고 있던 아메리카에 변화의 물결이 요동치고 있다는 이야기, 거리에 쏟아져나와서 그의 당선을 축하하는 미국의 분위기는 희망을 꿈꾸는 미국 중산층의 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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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삼의 블로그
2008.11.1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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